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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크라노스 Apr 22. 2020

천미지의 첫 번째 앨범

Mother and Lover



"자전적인 얘기를 담은 앨범이다 보니까, 항상 저를 알아 왔고 그 연장선상에 함께하는 이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친구든, 연인이든, 누구든 간에 상대방에 대한 애정도 계속 갖고 싶고요. 되게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얘기지만 그런 걸 믿고 싶은 요즘인 것 같아요." 첫 앨범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가 담긴다 말했다. 그 과정을 지켜봐 온 이들과 함께, 과거의 상처를 딛고 미래를 향해 이상과 낭만을 펼치려 한다. 2019년 6월 발매된 '천미지'의 첫 번째 앨범 [Mother And Lover]의 이야기다.




Q. 얼마 전 발매한 EP “몸”은 어떤 앨범인가요?


어떤 몸, 신체를 갖고 살면서 능동적인 주체보다는 대상화되는 객체라는 걸 많이 느끼던 때가 있었어요. 20대 초중반은 방황하면서 사랑을 찾고, 뭔가 결핍되어 있는 상태였어요. 그 상황을 바꾸려 했다기 보다는, 서글프고 불편하지만 그냥 지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작년 8월에 어떤 일을 겪고, 그런 상태로 지내왔던 것에 대한 분노와 불만이 터져 나왔어요. 더 고민을 하게 되고 누군가를 원망하기도 하고, 그런 생각이 담겨있는 앨범이에요.


Q. "Mother And Lover"에서 가져온 곡들도 이어지는 결이 있다고 생각해서 수록한 건가요?


네, 저는 그렇다고 생각해요. "Mother And Lover"가 나와 상대와의 관계에서 느끼는 것을 얘기했다면, "몸"은 내가 사회와의 관계에서 느낀 것을 얘기하고 싶었어요. "Mother And Lover"는 내 사랑 방식에 대해 얘기했고, "몸"은 그 방식에 대해 진절머리가 난 거죠. 사랑을 하는 과정에서의 혼란과 불편, 그런 것들이 어떤 연장선이라고 생각했어요.




Q. 첫 앨범 "Mother And Lover"도 소개해주세요.


Mother와 Lover잖아요. 저는 어머니한테서 많은 영향을 받으면서 자랐어요. 어렸을 때 집이 되게 시끄러웠어요. 그 과정에서 어머니가 저를 대했던 사랑방식이, 성인이 된 후 연인과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쳤어요. 어머니가 불가피하게 집에 안 계실 때가 있었어요. 어느 날 집에 오면 어머니를 볼 수 없는 거예요. 제가 예측할 수 없는 형태였어요. 성인이 되어서 이 사람이 언젠가 나를 떠나겠지 하는 불신과 동시에, 이 사람 너무 잡고 싶어 하는 양가감정으로 이어졌어요. ‘어머니를 너무 사랑하지만 나를 떠나서 미워’ 그런 것들이 사랑방식이 되었고, 제 첫 앨범에서 가장 내보이고 싶은 주제였어요. 지금까지의 삶 중에 가장 핵심이라고 생각해서, 그런 내용을 담게 됐어요.


Q. 연인과의 관계에 어머니의 영향이 미친다는 걸 언제 깨달았어요?


사실 어렸을 때부터 느꼈어요. 어머니의 상황에 엄청 공감하며 자랐거든요. 오빠가 한 명 있는데, 그보다도 딸인 저에게 더 많은 얘기를 하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본인의 불만, 고충 같은 것들을 저한테 말씀하셨어요. 저는 되게 어렸지만, 내가 힘든 것보다는 어머니를 이해해줘야 돼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그게 제 삶에서 너무 중요해진 거예요. 한 번은 함께 상담을 받으러 갔어요. 상담사분이 저는 마음의 창에 어머니랑 저, 이렇게 두 사람이 있대요. 어떻게 보면 어머니와 저를 혼동하고 있다는 거예요. 제가 엄청나게 이입을 한 거겠죠. 그런 것들이 성인이 된 후에도 이어졌어요. 연결 고리가 지속되어왔던 것 같아요.



발매 전 써본 수신자 없는 편지글.




Q. 앨범의 주제로 이 이야기를 다뤄야겠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됐어요?


사월이가 제 오랜 친구예요. 눈빛만 봐도 알 만큼 가깝게 지내고, 서로의 성장환경이나 현재의 감정 상태에 대해 많은 공유를 하는 사이였어요. 그런 사이였기 때문에 앨범을 본격적으로 제작하기 전부터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어요. 다 정리하고 보니 결국에는 엄마라는 키워드와, 사랑을 갈구하던 시절의 내가 중요한 이야기로 남았어요.


Q. 중학교 친구와 함께 작업한 소감은 어땠어요?


되게 재미있었어요. 앨범에 대한 저의 감수성을 가장 잘 아는 친구였기 때문에, 곡마다의 감정을 끌어내는 데에 집중해서 앨범을 만들 수 있었어요. 작업실 침대에 누워서 ‘이 곡을 만들 때는 어떤 감정이었어’ 편하게 얘기들을 주고받았어요. 그러다가 뒤적뒤적하더니 분홍색 선글라스를 꺼내면서 ‘이거 써봐 귀여우면서도 못된 감정이 일어나지 않아?’ 하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요. 곡마다 이해가 없었다면 아마 누구하고도 그런 작업을 못 했을 거예요.



감정에 압도되기보다 스스로 풀어내고 싶어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해두었던 '감정바퀴(Feeling Wheel)' 표.




Q. 라이너노트를 작성해준 ‘틸트’는 어떤 공간이에요?


7~8년째 단골인 바예요. 서울 올라온 이후 가장 오래 다니고 있는 곳이에요. 그 당시 집과 되게 가까운 곳에 있었어요. 마스터분도 그렇고, 공간도 그렇고 편하고 재미있어서 자주 갔어요. 술 마시고 집에 걸어가면서 쓴 곡도 되게 많았어요. 그 시절의 저부터 지금의 저까지 잘 알고 있는 공간이어서 애정이 많아요.



바 틸트, '빗방울처럼 많은 밤'을 함께해준 공간.



Q. 마스터 분과도 친하시겠어요.


친하죠. 딱 보면 제 기분이 어떻구나, 아시더라고요. 어쩌다 우울한 날에 가잖아요? 그러면 미지씨 14년도 때 모습 보는 거 같다고 얘기하세요. 예전에는 제가 슬플 때 자주 갔거든요. 자전적인 얘기를 담은 앨범이다 보니까, 항상 저를 알아 왔고 그 연장선상에 함께하는 이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Q. 바에 다녀왔다가 쓴 곡들은 어떤 게 있어요?


‘I Want To Be Your Mother’ 그 곡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술 마시고 새벽에 들어와서, 막 소리 지르고 기타 치면서 불렀던 곡인데 타이틀이 됐어요. 이 곡이 제일 기억에 남아요.



'I Want To Be Your Mother' 뮤직비디오 촬영을 끝낸 후.



Q. 한 곡을 제외하고 모두 영어 가사예요. 그 이유는 뭐예요?


대학에 가기 위해서 일 년 정도 영어만 공부하던 시기가 있었어요. 그게 생각보다 재미있었나 봐요. 제대로 된 문장은 아니지만, 영어로 뭔가를 막 쓰니까 속이 시원하더라고요. 외국어라는 게 하나의 감정 분출구가 되었던 것 같아요. 몰랐던 진심이나 깊게 고였던 감정이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는 게 재미있었어요. 당시의 저는 제 이야기를 풀어내기가 어려웠던 것 같은데, 외국어가 하나의 분출구가 되어서 처음 곡을 만들 수 있었어요.


Q. 앞으로도 그런 방식을 택할까요?


안 하고 싶어요. 한 번 영어 가사로 확 표출하고 나니까, 이제 한글 가사에 미련이 생기더라고요. 한글 가사는 내가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가 즉각 전해지잖아요. 공연에서 노래할 때도 바로 주고받을 수 있잖아요. 그래서 앞으로는 한글 가사를 더 많이 쓰고 싶고, 이전에 써둔 한글 가사들을 정리해서 앨범을 내고 싶어요.




Q. 첫 앨범 발매되고 기분이 어땠어요?


솔직히 제 앨범에 실린 곡들이 누구한테 위로를 주는 곡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물론 누군가에게 공감대를 형성해서 그게 위로라는 감정으로 전달될 순 있겠지만, 저는 그 곡들을 들으면 불행했던 시기가 떠올라요. 10대 때 고여있던 상처들이 20대 때 자기 파괴적인 행동들로 나오는 순간까지 모든 게 한 선상에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앨범을 통해서 상처를 털어내고 극복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또 그 시절을 좋은 방향으로 발산하고 싶었고요. 그때의 나를 이대로 남기면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너무 노골적으로 남긴 것 같아서 부끄럽기도 했지만, 드디어 미래를 생각할 수 있을 거야 하는 기쁨이 컸어요. 되게 다양한 감정들이 있었어요.


프로필 촬영 당시, 꼭 집에서 촬영하고 싶었다. 옆엔 잡동사니와 CD들.



Q. 발매 후에 후련해지셨어요?


되게 밝아졌어요. 자주 보는 사람들은 뭔가 좋아졌다는 걸 느끼더라고요. 그 전엔 되게 우울하고 사람을 대하는 것도 어려웠던 것 같아요. 제 얘기를 하는 것도 어려웠고요. 앨범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표현하고, 털어내다 보니까 제 생활을 많이 찾을 수 있었어요. 한 번 표출하고 나니까 이전의 어떤 노력보다도 좋은 영향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걸 소중히 간직하고 싶어요.


Q. 좀 더 빨리 털어내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요?


곡을 만들어서 남겨놓는 게 그때의 털어내는 방식이었던 것 같아요. 불안정한 시기였기 때문에 작업에 몰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좀 더 좋아지고 나아가고 싶은 욕심은 있었기 때문에, 그때는 순간순간을 열심히 지내고 곡으로 많이 남겨두자는 생각이 더 강했어요. 되게 긴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앨범을 준비하던 어느 겨울날, 연남동 거리에서.



Q. 앨범이 발매되고 1년 가까이 지났어요. 지금 들어보면 어떻게 느껴져요?


오랜만에 앨범을 다시 들어봤어요. 곡마다 여러 글을 써봤던 게 떠올랐어요. 영어로 된 가사는 그에 얽힌 스토리를 한글로 쭉 풀어 써보기도 했고요. 감정적인 부분에 집중했다 보니까, 지금 들으면 아득하기도 하고 예전 생각도 많이 나고 그래요.


Q. “Mother And Lover”가 어떤 앨범으로 남길 바라요?


앨범 발매기념 쇼케이스를 했을 때, 한 분이 ‘Girl’이라는 곡을 뜻깊게 들었다고 해주셨어요. ‘영어 가사에 한 줄 한 줄 설명을 덧붙이면서 어머니와 함께 들었다, 울기도 하고 되게 좋았다.’ 그 얘기를 듣고 분명히 누군가에겐 공감이 가고 의미가 있는 앨범이 되겠구나 자신감을 가지려 했던 기억이 나요. 엄마에 대한 양가감정은 대한민국 딸들이라면 누구나 가질 것 같았어요. 엄마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하지만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아 이런 마음들이 보편적일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런 딸이라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면 좋겠어요.


또 다른 하나는, 여성 화자가 남성을 대상으로 전하는 이야기가 앨범에 담겨있다고 생각해요. 그 여성 화자는 남성의 시선으로 비춰진 대상이고요. 왜곡된 시선인데, 정확한 실체는 모르겠지만 여성의 성이 이분법으로 해석된다는 걸 예전부터 느꼈어요. 그거에 대한 혼란과 분노가 담겨있어요. 이런 얘기를 노래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면 좋겠어요.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와 여성으로써 느끼는 분노, 그 두 개가 가장 중요한 메시지고 잘 전달되었으면 하죠.



합정의 어느 LP 바에서 열린 앨범 발매 기념 음감회.



Q. 마지막으로 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해주세요.


음악에서의 메시지든, 연대를 위한 작은 발언이든 계속해서 용기를 내고 싶어요. 그리고 저의 순간순간을 최대한 많이 남기고 싶어요. 친구든, 연인이든, 누구든 간에 상대방에 대한 애정도 계속 갖고 싶고요. 사랑도 나눠주고 싶고 재미있게 살고 싶네요. 되게 이상적이고 낭만적인 얘기지만 그런 걸 믿고 싶은 요즘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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