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이프에 감겨진 그리운 소리들
많은 사람들이 거의 자기 몸처럼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니는 세상이 되었다. 전화와 문자라는 통신의 기능을 뛰어넘어 그야말로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기계. 나 역시 너무나 일상적으로 편리하게 쓰고있지만, 가끔은 어릴적 사용하던 것들이 떠오르곤 한다. 음악을 듣고 녹음을 하고, 심지어 악기 튜닝까지 가능한, 손바닥보다 작은 기계를 보면서도 문득 카세트 테이프와 CD, MP3플레이어가 생각나는 건 왜일까.
스마트폰 이전에 사용하던 핸드폰-일명 피처폰-으로도 음악을 들을 수는 있었지만, 그보다 흔하게 쓰던 건 MP3 플레이어였다. 학창시절 조그만 MP3 플레이어를 목에 걸고 다니며 등하굣길과 쉬는 시간 틈틈이 노래를 듣곤했다. 그 당시 가장 인기있었던 모델은 아이리버와 아이팟. 브랜드에 따라 가격대와 모양, 크기가 천차만별이긴 했지만 보급형 제품들도 많아 MP3 플레이어 자체는 많이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유용한 필수템 중 하나였다. 내가 썼던 건 손가락 두 개만한 크기의 흰색 MP3로, 작고 검은 액정에 파란 글씨가 뜨는 제품이었는데 목걸이형 이어폰과 상시 연결해 매일같이 듣고 다녔다.
취향의 음악과 최신가요들을 잔뜩 넣어두고 주기적으로 바꿔주었는데, 그 주기란 대체로 시험이 끝나고 친구들과 노래방을 다녀온 직후였다. 공부한다고 영어듣기파일도 다운받아 넣어두긴 했으나... 과연 몇 번이나 재생했을런지. 하하.
MP3 플레이어 이전에는 CD(콤팩트 디스크)가 있었다. 지름 12cm의 얇고 둥근 도넛의 형태. 위쪽은 해당 CD의 정보를 알려주는 라벨인쇄가 되어있고, 아래는 홀로그램 박막으로 반질반질하게 빛이 난다. 지금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디지털 음원 스트리밍 서비스를 통해 듣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때는 노래를 듣기 위해 CD음반을 샀었다. -물론, 지금도 서점이나 마트 등에서 CD음반을 팔고있지만 사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CD를 읽을 수 있는 매체가 많이 사라졌기 때문이겠지. CD를 넣을 수 있는 컴퓨터도 이제는 찾기 어렵다.- CD음반은 한 가수의 노래만을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공CD에 다양한 곡들을 다운받아 넣어 '나만의 음악CD'를 만들기도 했다. 일명 'CD를 굽는' 작업이라고나할까.
하지만 휴대가 간편한 MP3 플레이어에 비해 CD플레이어를 가지고 다니는 사람은 많이 못 봤다. 보통 집에 CD와 카세트 테이프를 모두 재생할 수 있는 오디오 혹은 라디오가 있었다. 사실 CD는 음악을 듣기위한 용도보다는 프로그램이나 게임 등의 데이터를 저장하는 보조기억장치로 더 많이 사용되었다.
CD 이전부터 있었고 CD가 나온 뒤에도 한동안 사용했던 카세트 테이프는 음악감상용 외에도 어학용으로 많이 쓰였다.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한 상자 가득 들어있었던 능*영어학습 테이프들을... 카세트 라디오를 옆에 낀 채 되감기와 재생을 번갈아 누르며 셀프 반복했던 고난의 시간들을... 그런데 왜 나는 아직도 영어를 못할까..... (말잇못)
너비 10cm, 길이 6.3cm, 높이 1.3cm의 플라스틱 케이스 안에 두 개의 원통 릴로 감겨있는 소형 자기테이프 저장매체, 카세트 테이프. 호기심에 테이프를 당겨봤다가 잔뜩 빠져나오는 바람에 새끼손가락이며 볼펜을 구동용 릴 구멍에 끼워넣고 돌리던 기억이 난다. 가족들과 함께 간 노래방에서 동생들과 함께 '우주소년아톰'을 부르짖던 어린 목소리가 녹음 테이프에 남아있고, 나들이 가던 자동차 안에서 틀어주시던 캐롤테이프를 따라 흥얼거렸던 추억이 일기장 안에 고스란히 적혀있다.
카세트 플레이어마다 투입구가 미묘하게 달라서 어느 방향으로 테이프를 끼워넣어야 하는지 언제나 헷갈렸다. 녹음방지탭이 있는 윗부분을 아래로 가게 해야하는건지, 아니면 테이프가 읽히는 부분을 먼저 넣어야하는지 고민하다가 무작정 쑤셔넣기도했다. 테이프의 앞뒷면은 A면/B면으로 나뉘어 각각 기록된 음향데이터가 달랐는데, A면을 듣고자 할 때 A면이 앞을 보게 해야하는지 뒤를 보게 해야하는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몇 번씩 틀어봐야했다.
영어학습 테이프를 들을 때면 항상 오른손을 일시정지와 되감기, 재생 버튼 위에 올려두었다. 무엇인들 안 그러겠냐마는 영어회화는 특히나 반복해서 듣고 되뇌이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특정 구간을 설정하면 기계가 알아서 구간반복을 해주지만, 카세트 라디오로는 내 손의 타이밍 감각을 한껏 끌어올려 수동 반복을 해야했다.
이렇게나 번거롭고 복잡한, 다소 성가시기까지 한 카세트 라디오의 소리를 나는 무척 좋아했었다. 카세트 테이프를 라디오에 넣고 문을 닫을 때 나는 철컥 소리, 버튼을 꾹 눌러 툭 하고 들어가는 소리, 테이프가 돌아가며 옅게 찰카닥찰카닥하고 구동하는 소리, 되감기를 하거나 빨리감기를 할 때 들리는 스르르르르릉 소리, 테이프에 기록된 음악이나 노래 외에 미세하게 지지직하고 들리는 기계잡음까지도 귀엽고 정감있게 들렸다.
카세트를 듣다가 지겨우면 가끔은 라디오를 들었다. AM방송이나 FM방송을 선택해 다이얼을 돌려가며 미세하게 주파수를 맞추다보면 신기하게도 치이이이익거리는 소리 사이사이에 선명한 음성방송이 들려왔다. 손가락을 살살 돌려가며 주파수를 찾아가는 과정은 마치 미지의 존재와 컨택을 시도하는 것처럼 느껴져 비밀스러운 재미를 느꼈다. 카세트 라디오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며 다양한 소리를 느끼는 건 어린 시절 나의 낭만이었다.
노래방에서 공테이프를 노래방 기기에 꽂아 실시간으로 녹음하고, 나들이를 갈 때면 자동차 카세트 플레이어에 만화노래 테이프를 밀어넣던 때가 있었다. 저녁에는 라디오 음악방송을 선명하게 듣기위해 안테나를 길게 늘여 이리저리 돌려보고, 어학용 테이프 녹음방지탭의 구멍을 스카치 테이프로 막아 새롭게 녹음도 했었다.
발전에 발전을 거친 지금의 기기들은 클릭 한 번으로 트랙을 넘기거나 셔플재생, 구간반복까지 가능한 편리함과 함께 잡음 없이 깔끔한 음질을 자랑한다. 이 엄청난 현대의 편리성을 누리면서도 과거의 불편한 향수를 떠올리는 것은, 내가 좋아했던 것들에 대한 자연스러운 이끌림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