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고나

달콤 바삭 둥글 납작 추억의 간식

by 김생강

A spoonful of Sugar

하굣길 초등학교 교문 앞은 작은 시장통이었다. 삐약거리는 병아리들을 상자에 넣어 파는 아저씨, 학습지를 권유하는 아주머니가 자주 자리를 잡았고, 솜사탕을 풍선처럼 잔뜩 매달아놓은 수레나 콘이 겹겹이 쌓인 아이스크림 마차도 종종 찾아왔다. 드물게는 미니바이킹을 얹은 트럭이 와서 친구들과 함께 줄을 서기도 했다. 다양한 판매상들이 하교하는 어린이들의 시선을 끌었지만 그중에서도 치명적인 단내를 풍기며 수업을 끝낸 초등학생들의 허기를 달래는 간식, 달고나는 단연 인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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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용 버너 위 국자 위에서 수북이 쌓여있던 흰 설탕은 지글지글 끓으며 짙은 갈색으로 변했고, 베이킹소다를 살짝 얹는 순간 연갈색으로 완성되었다. 마치 프림을 탄 블랙커피처럼. 말캉한듯 꾸덕한 연갈색의 덩어리는 설탕을 뿌린 넓은 철판 위에서 느리게 퍼졌다. 살짝 식은 그 위에 모양틀을 대고 누름판을 눌러주면 이른바 '뽑기'라고 하는 달고나가 완성되었다. 별, 우주선, 나무, 칼, 자동차 등 다양한 모양틀이 달고나에 새겨졌고 우리는 취향대로 골라잡아 바늘을 손에 쥔 채 쪼그려앉았다. 얇은 바늘을 이용해 모양대로 파내는 데 성공하면 달고나를 하나 더 주었기 때문. 그러나 나는 대부분 실패해 입 속으로 직행했다...


집에서도 달고나를 만들어본 적이 있다. 거실에 밥상을 펴놓은 채 우리 남매들은 옹기종기 모여 아버지가 만드는 달고나를 초롱초롱한 눈으로 지켜보았다. 집 안 가득히 퍼졌던 설탕의 달달하면서도 씁쓸한 냄새, 질리도록 이로 부숴먹었던 홈메이드 달고나, 그리고 설탕이 진득하게 눌어붙어 결국 버릴 수 밖에 없었던 국자가 아련하게 추억 속에 남아있다.



신통방통 달고나 자판기

언제부턴가 교문 앞 상인들이 자취를 감췄고, 인기 먹거리들은 문방구로 옮겨가 보다 더 다양하게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동전 몇 개로 심심한 입을 달래주던 '가성비 갑' 추억의 간식들은 언제나 용돈을 털어가던 주범이었다. 지금 기억나는 것만 해도 맥주 모양 사탕, 혀가 파랗게 변하는 페인트사탕, 담배피는 어른을 흉내내곤 했던 아폴로, 구워먹으면 2배로 맛있었던 쫀듸기, 가루에 찍어 먹으면 입 안에서 톡톡 튀던 발바닥모양 사탕, 오독오독 씹어먹는 재미가 있었던 밭두렁, 봉 모양의 짭짤한 차카니, 콜라모양 젤리 등등 셀 수 없이 많다. 그 중에는 이미 만들어진 채 포장되어 진열되어있던 달고나도 있었는데, 그것보다는 문방구 바깥에 있던 달고나 자동판매기가 더 호응을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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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고나 자판기 옆에는 달고나용 국자들이 담긴 물통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비위생적인 환경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딱히 신경쓰이는 요소가 아니었다. 동전을 넣고 국자를 설탕배출구 밑에 대면 적당한 양의 설탕이 나왔다. 뱅글뱅글한 열선에 빨갛게 불이 들어오고, 그 위에 국자를 대고 있으면 자글자글하게 설탕이 녹았다. 소다를 넣고 적당히 부푼 내용물을 자판기 위쪽 모양틀에 부은 뒤 나무꼬치를 댄 채 굳히면 끝. 교문 앞에서 마술사처럼 달고나를 만들어내던 아저씨만큼 능숙하지는 못해도, 너무 오래 국자를 올려놓는 바람에 탄내가 나도, 소다를 너무 넣어서 단맛보다 쓴맛이 강해도 '내가 직접 만들어낸 달고나'는 그저 좋기만 했다.


한편 달고나 자판기 때문에 화상을 입는 어린이들도 종종 있었다. 열선 부분의 최고 온도가 360도까지 올라가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데일 수 있었던 것. (KBS NEWS, 《위험한 자판기》, 2000.11.16.) 달고나 자판기 외에도 쫀듸기나 쥐포, 햄이나 소시지류를 즉석에서 납작하게 눌러 구워먹을 수 있는 구이기계 역시 문방구 앞에 있었는데, 어린이들에게는 꽤 위험한 기계였구나싶다.




최근 '달고나 커피'라는 게 SNS에서 유행하고 있어 오랜만에 추억의 달고나를 떠올려보았다. 그때 그시절 만들어먹던 달고나는 비위생적이고 다소 위험한 간식이었지만, 그럼에도 요즘 매장에서 파는 포장된 달고나가 따라하지 못하는 맛이 있는 것 같다. 내 입맛이 변한 건지 미화된 기억 속 추억의 맛인건지...


여담으로, 달고나 커피라기에 달고나를 만들어 커피 위에 뿌려먹는 건가 하고 찾아봤는데 색이나 질감이 달고나와 유사한 것 뿐 실제로 달고나가 들어간 건 아니라더라. 커피가루와 설탕, 뜨거운 물을 같은 비율로 넣고 수천 번 저어 만들어낸 갈색 거품을 우유 위에 올려먹는 거라나. 나무위키에서 본 바로는 모습이 100점 맛이 1000점이지만 팔빠짐이 -1100점이라 총합 0점인 음식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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