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달걀 속 나의 첫 동물친구
90년대 초등학교를 다닌 친구들은 교실에서 삐빅- 삐빅- 하고 시끄럽게 울리던 작은 기계를 기억할 것이다. 한 손에 쥘 수 있을 정도로 작고, 달걀처럼 둥그런 생김새를 가진 디지털 장난감. 고무질감의 버튼 3개로 간단하게 조작할 수 있었던 휴대용 게임기. 바로 다마고치다.
도트로 이루어져 단순한 움직임을 보이는 다마고치 속 동물 -동물보다 몬스터에 가깝긴 하지만- 이 얼마나 좋았던지. 알에서 갓 태어난 동물은 동그란 몸에 눈과 입만 빼꼼히 보였을 뿐이지만, 조금씩 성장하는 모습이 무척 귀여워 꽤나 애지중지했었다. 하지만 귀여움과는 별개로 손이 많이 가던 것도 사실. 잠시만 눈을 떼면 조그만 화면에 배설물이 가득 찼고, 동물은 자신의 배설물 사이에서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서둘러 목욕을 시키고 주사까지 놓아주어야 다시 깨끗해진 환경에서 건강하게 뛰노는(?) 동물을 볼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수시로 상태를 확인해 먹이를 주고, 심심하지 않게 놀아주고, 동물이 잠을 자기 시작하면 불까지 꺼주어야 했다. 조금 오래 방치하면 동물이 죽기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돌보았다.
한창 강아지나 고양이를 키우고싶다고 부모님을 조르고 교문 앞 병아리들에 시선을 빼앗길 나이에, 다마고치는 비교적 손쉽게 얻을 수 있었던 가상의 동물친구였다.
주인의 성실한 양육이 필요한 게임특성과 더불어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크기였기에 많은 학생들이 가지고 다녔지만, 미처 소리를 끄는 걸 잊어버린 친구들은 교실에서 선생님께 압수당하곤 했다. 이러한 다마고치 열풍에 1997년 교육부에서는 초.중.고교생들의 다마고치 휴대를 금지하도록 지시했다. (연합뉴스, 《교육부, `다마고치' 휴대 금지》, 1997.05.30.) 게임기 신호음 때문에 면학분위기를 해칠 뿐 아니라 '보살핌'을 제때 하지 않으면 쉽게 죽어버리는 게임기의 성격이 어린 학생들에게 생명경시 풍조를 심어주지 않을까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학교수업에 지장을 줄 수 있었다는 건 인정하지만, 사실 학생들의 인성발달에 대한 걱정은 너무 과한 우려가 아니었나 싶다.
어쨌든 교육부마저 나설 정도로 뜨거웠던 다마고치 열풍은 생각보다 빠르게 식었다. 96년 11월 첫 제품이 나온 후 전 세계에서 약 4000만개가 판매된 -2019년 11월 기준 누적 판매량 8200만개- 희대의 히트상품이었던 다마고치는 1년 반만에 퇴물이 되어 60억엔의 재고물량을 남기고 실적악화의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매경이코노미, 《[글로벌 비즈니스 / 제휴사 칼럼] 다마고치 부활하나》, 2004.03.04.) 반다이 사의 부정확한 시장예측, 저렴한 모조품의 양산, 외부 충격에 따른 잦은 고장, 2000년대 중·후반 PC와 스마트폰 보급의 영향 등이 외적인 원인으로 꼽히고 있지만 게임 자체만 봐도 가상동물과 나의 1:1 관계에서 오는 단조로움과 지루함, 비트맵 그래픽 모션의 한계 등으로 오래도록 즐길만한 콘텐츠는 아니었다고 본다.
이후 계속해서 다마고치 시리즈를 갱신하던 반다이 사는 지난 10월 신작 '다마고치 썸'을 출시했다. 적외선 통신과 스마트폰 연동 기능을 통해 다른 다마고치 캐릭터와 결혼이 가능하며 부모의 유전자를 랜덤으로 이어받아 다양한 외관을 지닌 자녀 캐릭터가 탄생한다고 한다. 한글화 지원, 화려한 컬러액정, 확장된 게임 세계관 등을 통해 90년대 당시 다마고치에 열광했던 세대의 향수를 자극하며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는 기사를 보았다. (이코노미 조선, 《다마고치가 돌아왔다... 2030에 복고게임 붐》, 2019.11.16) 유행은 돌고도는 법이라더니. 나 역시 추억 속 게임기가 반가워 검색해봤다. 기능이 업그레이드되었다고는 하지만, 복고의 향수를 느끼기 위해 구매하기에 5만원대의 가격은 솔직히 좀 부담스럽더라.
초기 버전이나 최신 버전이나 다마고치의 시스템 구성은 단순한 편이다. 배고프면 밥을 먹이고, 배설물이 나오면 치우고, 심심해하면 놀아주고, 아프면 치료하고, 밤에는 재우면 된다. 단순노동에 가까우면서도 행동양식 자체는 실제의 양육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세로 길이 약 5cm의 둥글납작한 달걀 모양. 위쪽 고리에 구슬줄을 매달아 가방에 달고 다니기도 했다. 제조사에 따라 미묘하게 다르긴 하지만 내가 어릴적 가지고 놀았던 다마고치는 앞면 중앙에 네모난 액정이 있고 그 아래로 버튼이 3개가 있었으며, 기기 뒷면에는 건전지를 넣을 수 있는 뒤판과 아주 작은 구멍이 있었다. 이쑤시개나 볼펜 등을 이용해 그 구멍을 쿡 찌르면 게임이 리셋되어 알을 부화시키는 것에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었다.
앞면 세 개의 버튼은 정확히 그 기능이 기억나지 않아 검색해본 결과, 맨 왼쪽 버튼이 메뉴/이동이며 가운데 버튼이 선택, 맨 오른쪽 버튼이 취소 기능이라고 한다. 왼쪽과 오른쪽 버튼을 동시에 누르면 '소리'옵션이 켜지며 여기에서 Off를 눌러야 신호음이 꺼진다. 학교에 다마고치를 가지고 가려면 반드시 음소거를 해야했지만, 배고프고 아프고 심심해서 주인을 애타게 부르는 다마고치 속 동물의 부르짖음을 듣지 못하게 되므로 자주 확인을 해줘야했다.
액정만 봤을 때 중앙은 동물이 자유롭게 뛰노는 공간이었고, 그 위아래로 각 4개의 아이콘이 있었다. 위에서부터 차례대로 [ 먹이주기 / 불끄기(수면) / 놀아주기 / 치료하기 ] 기능, 아래쪽은 [ 목욕 및 청소 / 상태창(나이, 허기 등) / 말하기 및 혼내기 / 호출 ] 기능이라고 한다. 초기버전 뒤에 출시된 다마고치는 외출이나 소통, 친구목록 등의 아이콘이 더 추가된 것 같다.
다마고치 열풍 이후, 학생들이 핸드폰을 가지게 되면서 은근하게 인기를 끌었던 게임이 있다. 삼성전자 애니콜의 기본 게임이었던 '마이펫과 놀기'가 바로 그것. 국내 최초의 휴대전화용 인공지능 강아지 게임으로, 강아지를 실제로 기르는 듯한 그래픽과 다양한 게임기능이 특징이다. 진돗개, 빠삐용, 코커스파니엘, 비글 중 마음에 드는 강아지를 선택해 일종의 분양을 받고 거실과 주방, 침실, 마당 등의 배경 속에서 순종 및 친밀수치를 높여가며 키우는 게임이다. (서울신문, 《인공지능 강아지게임 대박》, 2006.03.29) 성인이 되어서야 핸드폰을 가질 수 있었던 나는,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의 핸드폰을 잠시 빌려 마이펫 삼매경에 빠져있었다. 식사, 휴식, 목욕, 산책, 운동 등 사실상 다마고치의 업그레이드형이었을 뿐이었는데 다시금 그렇게 빠져있었던 걸 보면 육성게임 자체가 내 취향인 것 같다.
학업분위기 조성 및 학생들의 게임중독 우려, 사치풍조 방지 등의 이유로 교내반입 규제까지 받았던 추억의 다마고치. 지금의 스마트폰이나 닌텐도와 비교해보면 조잡하고 단순할 뿐이지만 90년대 그 시절, 내 손 안의 작은 동물친구라는 감성을 충족시켜주었던 고마운 게임기다.
생각해보면 내게 의지하는 어떤 존재를 책임지고 기르는 것에 대한 욕구를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다른 존재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알고싶어서일까. 혹은 나 자신이 다른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인정받고 싶은걸까. 사랑을 나눠주며 가끔은 스스로를 그 대상에 이입해 위로받는 것일지도 모른다. 깊게 들어갈 필요 없이 어쩌면, 그냥 귀엽고 예뻐서라는 이유일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