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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대학교병원 Aug 05. 2022

성실함으로 탐험하는 미스터리의 세계

곽재식 작가 인터뷰

writer. 최주연   photo. 황필주(Studio79)


국어사전에서는 진단을 ‘의사가 환자의 병 상태를 판단하는 일’이라고 정의하지만, 이 짧은 문장은 무수한 절차를 함축한다. 특히 위중한 환자들을 주로 만나는 서울대학교병원 의료진들에게 진단은 ‘미스터리’를 규명해가는 과정일 수 있다. 그렇다면 미스터리란 무엇이며, 미스터리를 잘 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과학과 이야기의 세계를 넘나드는 곽재식 작가를 만나 삶과 미스터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변변치 않은 그러나 자랑스러운 ‘작가’라는 정체성

작가로만 16년차에 접어들었지만, 곽재식 작가의 작품 세계를 어느 한 쪽으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최근 출간한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 등을 비롯한 SF부터 그를 ‘괴물 전문가’로 알린 『괴물, 조선의 또 다른 풍경』 등의 역사서 그리고 『휴가 갈땐, 주기율표』같은 과학서까지 다양한 작품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직업 역시 마찬가지다. 작가생활을 하는 사이 한 때는 회사원이었고 얼마 전부터는 환경안전공학과 교수가 되었으며 TV와 라디오의 패널로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그렇다면 곽재식 작가는 어떤 사람, 어떤 작가일까? 정체성을 묻는 질문에 그는 자주 다시 질문을 던졌다.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6년이지만 이전에도 집필 활동을 하셨을 것 같은데, 소설은 언제부터 쓰셨나요? 혹시 ‘문학청년’ 쪽에 속하셨나요?


문학청년이 어떤 청년일까요? 문학청년이라는 단어는 좀 낯서네요. 한 번도 그런 생각은 안 해봤지만, 소설은 고등학생 때부터 취미삼아 써왔습니다. 이후 대학시절을 거쳐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틈틈이 글을 썼는데, 2006년에 MBC 베스트극장에서 제 단편소설 『토끼의 아리아』를 단막극으로 만들었어요. 그걸 계기로 열심히 써야겠다고 생각했고, 열심히 쓰고 있습니다.



작가로 활동하시는 내내 직장생활을 하셨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대학 강의도 맡으셨고요. 이렇게 직장생활과 작가생활을 병행하면서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겉으로는 전업작가인 듯 보이는 사람들도 잘 살펴보면 각자 다양한 일들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제가 특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신 16년 동안 꾸준히, 열심히 써온 것은 ‘그렇군’이라고 인정할 만한 것 같아요.


사실 2010년대 초반 2년 정도 일거리가 없었어요. 작가로서의 생명이 끝날 만한 상황이었죠. ‘이렇게 아무 것도 안 하고 있는데 작가라고 할 수 있을까?’, ‘한때 글을 써본 사람일 뿐,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삶인가?’같은 고민을 했지만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궁리 끝에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없더라도 부지런히는 쓰자고 마음 먹었어요. 어떻게 보면 아직도 변변치 않고 딱히 잘한 것도 없는 듯하지만, 좋게 보면 16년 동안 버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자랑스럽습니다.



SF, 역사소설, 추리물 등은 물론이고 과학 저술도 활발히 하고 계시지만 SF 를 특히 많이 쓰셨습니다. 호기심이 많아서 SF에 특히 끌리시는 건가요?


어릴 때부터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보는 걸 좋아했어요. 지금도 그렇고요. 딱히 SF만 쓰겠다고 결심한 것은 아닌데 좋아하는 걸 하다 보니 그런 작품을 주로 쓰게 됐죠. 호기심은… 원래부터 호기심이 많았을 수도 있지만 소설을 쓰면서 더 많아진 것 같아요. 계속 해서 글을 쓰고 싶으니 항상 재미있는 이야기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그러다 보니 호기심이 쌓이게 된 것에 가깝죠. ‘직업적인 이유’라고 할 수도 있겠네요.



소설의 몫, 과학의 몫

소설가로서 곽재식 작가는 ‘비밀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굳이 SF만이 아니더라도 모든 소설에서 비밀 혹은 수수께끼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드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소설’이라는 장르의 특성상, 작가는 얼마든지 자유롭게 자신의 상상을 펼칠 수 있고 펼쳐야 한다. 반면 과학자로서 그는 미스터리한 현상이나 존재를 두고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고 단정지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기존의 통념이나 편견을 최대한 경계하면서, 관련된 지식을 찾고 가능한 여러 가지 가설을 세워 끊임 없이 탐구하는 것이 공부하는 사람의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생기는 엉뚱한 상상은 소설 속으로 옮겨 가기도 한다.



작가님의 작품을 읽으면서 ‘SF작가는 스스로 미스터리를 만들고 다시 풀어내는 사람’이라 느끼게 됐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SF나 제 작품에 한정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본 영화에서 ‘서양 문학의 근원은 비밀에 뿌리를 두고 있다’라는 대사가 나왔어요. 흘러가는 부분이었지만 그럴싸해서 급히 메모해 두었죠. 제 식으로 말하자면 ‘이야기 속 인물에게는 비밀이 있어야 한다’가 될 텐데요. 비밀 혹은 미스터리한 상황을 던져서 ‘어떻게 된 영문일까?’라는 궁금증을 품게 하고 풀어헤치는 과정을 통해서 ‘아, 알고 보니 이랬구나’하게 만들면 글이 더 재미있어지죠. 미스터리 소설이나 SF만이 아니라 수필 등을 비롯한 대부분의 글쓰기 장르에서 이런 방식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SF작가이자 과학자로서 ‘알 수 없는’ 다시 말해 미스터리한 현상이나 존재를 믿으시나요? 믿지 않으시는 경우라면,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를 마주했을 때 작가님께서는 어떻게 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미스터리한 현상이나 존재는 있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알 수 없는 현상이나 존재를 이야기할 때 마음 속으로 미리 각자의 전제를 세우는 태도는 따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모르는 현상이다’에서 끝나지 않고 ‘귀신일 거야’ 혹은 ‘귀신을 없애려면 이렇게 해야 해’까지 나가는 태도 등이죠. 문제는 자신의 상상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적 통념이나 주변의 분위기 등에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옛날 사람들은 핏빛으로 물든 바다에 죽은 물고기떼가 둥둥 떠다니는 걸 보고 ‘원한을 품고 죽은 귀신이 나타난 거다’라고 말했거든요. 그런데 현대 과학에 비추면 적조현상을 고려해볼 수 있어요. 바다에 빨간색 미생물이 대량 발생해서 적조현상이 일어나고 그 결과로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할 수도 있거든요. 실제로 저는 이런 사례들이 괴물이야기나 귀신이야기로 발전하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그렇다면 현재의 미스터리들은 어떻게 할 것인가. 과학적으로 증명이 안 되면 그 정도로 생각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과학적으로 규명이 안 되는데 제사를 지낸다고 달라질까요?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된다면 어쩔 수 없지만,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라는 태도는 위험하죠.


과학자로서는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가 생기면 차근차근 풀어나갈 수밖에 없어요. 과학만이 아니라 역사, 인문학 등의 분야에서 공부하는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일 거예요.



소설 집필이나 연구 분야 혹은 개인적으로 꼭 풀고 싶은 미스터리가 있으신가요?

엄청나게 많습니다. 예를 들어서, 제비가 겨울에 따뜻한 남쪽나라를 향해 가려면 망망한 서해를 건너야 하는데, 어떻게 방향을 잡을까요? 다양한 학설이 있지만 뚜렷하게 밝혀진 것은 없어요. 또, 가을이 되면 단풍이 드는데 왜 그럴까요? 과정은 어느 정도 알려졌지만 ‘왜?’인지는 아직 몰라요. 오징어나 고등어는 왜 큰 불빛 쪽으로 모여들까요? 오래 전부터 집어등을 이용해 어류를 잡았으니 ‘원래 그렇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죠. 하지만 이유를 찾으면 다른 길이 열리게 될 겁니다. 집어등을 밝히는 데 드는 엄청난 전기를 쓰지 않고 오징어나 고등어를 잡을 수 있다면 환경에도 도움이 될 테니까요.


작가로서는 이런 미스터리를 소설의 소재로 활용할 수 있어요. 만일 하늘에서 갑자기 엄청난 불빛 덩어리, 그러니까 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완전히 다른 형태의 불빛 덩어리가 도심 한 복판으로 쑥 내려온다면 사람들이 다가오지 않을까요? ‘외계인이 보낸 거다, 자연현상이다’ 등 사람들이 설왕설래하는 사이에 큰 그물이 내려온다면? 이렇게 미스터리에 대해 자유롭게 상상하며 이야기를 만드는 게 소설가의 몫이라면, 현상 자체를 두고 끊임 없이 이유를 찾는 것이 과학자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곽재식 작가의 이미지는 “이게 안 궁금해요?”라는 말로 요약된다. 그러나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는 “이게 안 궁금해요?”만큼이나 “열심히 해야죠”라는 말을 많이 했다. 동시에, “고만고만하니까 부지런히 썼다”라는 자조적인 말 너머 16년 동안 꿋꿋이 버티며 작가의 정체성을 지킨 것에 대한 자부심도 엿보였다. 상상의 세계를 주로 다루는 그의 작품에서 진득함 생활감이 묻어나는 이유는 이런 자세에서 비롯할 것이다. 덕분에 인터뷰 후 강의실을 향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기는 곽재식 작가의 뒷모습을 보며, 그의 책들을 다시 읽어봐야겠다고 결심하게 됐다.


곽재식 소설가이자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

2006년 단편소설 『토끼의 아리아』가 MBC 『베스트극장』에서 영상화되면서 본격적인 집필 활동을 시작했다. 『빵 좋아하는 악당들의 행성』, 『가장 무서운 예언 사건』, 『신라 공주 해적전』, 『지상 최대의 내기』 등 다수의 소설을 발표했다. 또한 SF적 상상력이 결합된 논픽션 『한국 괴물 백과』, 『지구는 괜찮아, 우리가 문제지』, 『휴가 갈 땐, 주기율표』 등을 썼다. 2000년대 초반부터 영화에 관한 글을 공개해 왔다. 그중에서 SF 영화와 특이한 옛 영화, 한국 영화의 고전과 TV 시리즈에 관한 글이 널리 알려지면서 한국영상자료원 유튜브 채널과 정기 간행물 기고를 통해서도 대중과 만나 왔다. 신문과 방송에서 과학 지식으로 사회 현상을 해석하는 필진과 패널로도 활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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