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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대학교병원 Dec 07. 2022

순후의 심장이 스스로 뛰기까지

조성규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 소아흉부외과 교수


온몸으로 힘들다고 말하던 생후 100일의 순후

엄마 배 속에서부터 심근증·심부전을 진단받은 순후는 38주, 3.5kg의 체중으로 태어났다. 출생 주수나 체중만 두고 보면 정상 범주에 속했지만 심장 기능은 17%에 불과했다. 게다가 약물 치료를 받고도 심부전 증상이 지속됐다. 생후 3개월경에 처음 만난 순후는 약이 들어가는 주사선을 주렁주렁 달고, 코에는 자기 얼굴만 한 호흡보조 장치를 달고도 숨을 헐떡거렸다. 지금 너무 힘들다고 온몸으로 말하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심장이식’이 유일한 치료법이었지만, 이토록 작은 아기를 위해 적절한 기증 심장을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의료진들 사이에서 ‘체외형 심실보조장치(인공심장)*’ 수술 이야기가 나왔다. 하지만 이 수술을 순후에게 적용하려니 두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첫째 해당 수술 경험치가 많지 않다는 것, 둘째 몸무게가 5kg에 불과한 작은 아이를 대상으로 한 수술의 성공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이 두 가지를 두고 고민하는 동안 순후의 상태가 악화됐다. 수차례의 회의 끝에 순후가 생후 4개월이 되는 시점에 체외형 심실보조장치를 삽입하기로 했다. 최종 결정을 위해 순후 부모님과 면담을 했다. 순후는 늦둥이였다. 나도 최근 늦둥이를 맞이한 상황이라 남 일 같지 않았다. 순후 부모님은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아기의 심장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도 출산을 결심했다고 했다. 담담한 표정 너머 비장한 마음이 전해졌다. 다행히 성공적인 수술 끝에 순후는 4주간 중환자실에 있다가 일반 병실로 전동되었다. 펌프의 크기는 겨우 10cc인데, 심장이 한 번 짤 때 이 10cc가 부족해서 그렇게 힘들어했던 거라고 생각하니 ‘심장아, 10cc만 더 짜줄 수는 없었니?’ 하고 속으로 되뇌게 됐다.


수술 후 순후는 배 아래로 나와 있는 굵은 관과 인공심장 역할을 하는 펌프를 제외하면, 아픈 적 없는 아이처럼 건강해졌다. 주사선들이나 호흡보조 장치도 필요 없게 되었고, 성장이나 발달도 제자리를 찾아갔다. 하지만 기다림이 생각보다 길어졌다. 몇 차례 심장이식 기회가 있었지만, 순후에게 이식하기에는 기증 심장이 너무 컸다. 순후가 합병증 없이 잘 지내고 있으니 급하게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순후에게 ‘100점 만점에 100점짜리’ 새 심장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생후 400일, 마침내 찾아온 기적

그렇게 6개월 정도 지나자 순후의 심장 기능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 ‘설마, 심실보조장치를 뗄 수 있는 것 아닐까?’ 하는 기대가 생겼다. 확신은 없었지만 시도해 보기로 했다. 자기 심장으로 살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이를 위해서는 일주일의 과정이 필요했는데, 그 사이 순후의 심장이 다시 안 좋아졌다. 실망감을 뒤로하고 역시 심장이식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다. 다시 시작된 기다림 속에, 언제나 순후 옆에 있는 엄마를 보면 괜히 미안했다. 오랜 시간 순후 곁을 지키느라 힘들겠지만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말씀드렸다. 그 와중에 코로나19 바이러스까지 감염되어 병실 밖에 나오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미안한 마음이 더 커졌다. ‘기증 심장이 좀 컸어도 이식을 진행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병실에 갈 때마다 두 손을 머리 위로 올리며 “사랑해요”라고 답해주는 순후를 보며, 중요한 순간에 정말 최선의 결정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았다.


다시 6개월을 더 기다리던 중 ‘기적’이 찾아왔다. 순후의 심장 기능이 기대 이상으로 좋아졌다. ‘심실보조장치 떼는 걸 다시 시도해 보자!’ 이번에는 확신이 들었다. 심실보조장치를 유지한 지 400일째 되는 날, 순후의 가슴을 열어 인공심장 펌프를 끄고 마지막으로 심장초음파를 보았다. 너무 잘 뛰고 있는 심장을 보며 울컥 눈물이 올라왔다. ‘안돼, 아직 끝난 게 아냐’ 하며 최대한 감정을 억눌렀다. 심실보조장치를 떼고 이 수술을 잘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수술하는 내내 제발 심장이 잘 버티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수술이 잘 끝난 후 순후의 엄마, 아빠를 만나 설명하는 순간 다시 눈물이 올라왔다. 얼싸안고 기뻐하고 싶었지만 순후가 건강한 모습으로 퇴원할 때까지는 계속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또 한 번 감정을 억눌렀다.



순후의 회복이 선물한 ‘의사로서의 보람’

중환자실과 일반 병실을 거치며 회복한 순후는 생후 544일이 되는 날, 드디어 집으로 가게 되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집에 가보지 못한 순후가 드디어 집으로 가게 된 것이다. 의사이자 과학자에게 어울리는 말이 아닐지 모르겠지만, 이것이야말로 ‘기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저절로 이루어진 기적은 아니다. 4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합병증 없이 심실보조장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진료과 전문의들과 병동 간호사들이 만들어낸 기적이다. 무엇보다 포기하지 않고 순후 곁을 오롯이 지킨 엄마, 아빠가 만들어낸 기적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인공심장을 떼어 낸 후 너무나 잘 뛰고 있었던 순후의 심장이 눈앞에 선하다. 바로 그 순간, 바로 그 순후의 심장이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되고 싶어 흉부외과를 선택해 나름으로 노력하며 살아온 것에 대한 가장 큰 상이 아닐까. 그러니 순후를 치료하고 돌보는 것은 의료진들의 몫이었지만, 순후의 회복으로 의료진들도 돌봄과 치료를 받은 것일 테다. 의학이 많이 발전했지만 실제로 인간이 정복할 수 있는 질병은 얼마나 될까? 계속적인 연구와 노력 그리고 환자에 대한 열심이 더 많은 ‘기적’을 만들어내기를 소망해 본다.



*체외형 심실보조장치는 튜브로 펌프와 좌심실을 연결하고 펌프 운동을 통해 혈액 공급 기능을 돕는 의료기기다. 적절한 기증 심장을 구하지 못한 채 이식을 기다리는 환아에게 삽입하는 것으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많이 시행하고 있는 수술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불과 3년 전부터 할 수 있게 됐다. 그때부터 보험이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조성규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 소아흉부외과 교수

‘사람을 살리는 의사’가 되고 싶어 흉부외과를 전공했다. 선천성 심장병과 소아심부전을 주로 다루고 있으며, 순후에게 체외형 심실보조 장치를 삽입한 후 400여 일이 넘게 진료했다. 이식 대기 중 장치를 삽입해 이렇게 장기간 유지 후 심장 기능까지 회복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찾아보기 힘든 사례로 국내에서는 최장기간이다. 심장 이식을 대기하며 힘들어하는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희망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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