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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대학교병원 Dec 16. 2022

중환자실에서 치료와 돌봄

정윤선 서울대학교병원 중환자의학과 임상 부교수


중환자실에는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위중한 환자들이 주로 입원한다. 중환자실 의사인 내게 있어, 언제나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사명은 최선을 다해 적극적으로 환자를 치료하는 일이다. 그러나 중환자실도 다른 병실과 마찬가지로 누군가의 사랑하는 가족이자 소중한 인생을 살아온 환자를 치료하는 곳이기에 치료 속에 돌봄이 함께 해야 한다. 작년에 응급실을 통해 내원했던 60대 여성 환자 사례는 특히, 치료 속 돌봄 나아가 ‘연명치료’에 대한 생각을 하게 했다.


그 환자는 췌장암이 십이지장을 침범해 음식물이 내려가지 못한 탓에, 구토가 지속되어 응급실을 찾게 됐다. 패혈증성 쇼크까지 동반되어 중환자실에서 수액과 승압제, 항생체 치료를 받은 결과, 환자의 쇼크 증상은 며칠 후 호전되었다. 하지만 암으로 인한 십이지장 막힘은 시술이나 수술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입을 통한 음식물 섭취가 불가능해 정맥 영양주사에 의존해야 하기에 향후 항암치료 역시 불가능했다. 결국 나는 의식이 호전된 환자에게 앞으로의 과정을 설명했다. 향후 항암치료가 어렵고, 이번에는 다행히 호전되었지만 다시 악화될 가능성도 있으며 그 경우에는 중환자실 치료가 연명치료가 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연명치료는 원하지 않아요.”


나의 예상과 달리, 그분은 미소를 띤 얼굴로 연명치료 대신 미리 임종 준비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완화의료팀에 의뢰해 상담을 진행하고, 주보호자 역할을 해온 남동생과의 면회를 거쳐 임종에 대비한 주변 정리를 부탁했다. 이후 환자가 며칠동안 안정된 상태를 유지했기에 소화기내과 병실에 자리가 나기를 기다렸지만 이내 상태가 악화되었다. 혈압저하가 시작된 것이다. 결국 환자는 그날 오후 중환자실에서 임종방으로 옮기게 됐다. 이후 완화의료팀 선생님은 환자가 저녁 동안 병실에서 남동생, 조카들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었고 그 다음날 새벽에 잠을 자듯 편안하게 임종했다는 사실을 전해왔다.


사실 이 환자처럼 중환자실에서 스스로 연명치료에 대한 결정을 내린 후 주변 정리를 마치고 가족에게 둘러싸여 편안한 임종을 맞는 경우는 드물다. 또, 만성 중증 질환을 가진 환자라 하더라도 중환자실 치료가 곧 연명치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 힘든 치료를 잘 이겨내고 일반 병실로 전동해 며칠간 치료를 더 받은 후 퇴원하는 사례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상태 악화로 중환자실에 입원한 환자 중 많은 수는 집중 치료에도 불구하고 중환자실에서 임종하는 일이 많다.


중환자실이라는 제한된 공간과 시간에서 환자들에게 돌봄을 제공하기 위해 의료 인력은 물론, 돌봄과 관련한 지원, 나아가 완화의료팀의 도움이 필요한 이유다. 하지만 아직 이런 부분들은 중환자실 평가 항목이 아니기에 현재로서는 의료진의 가치관이나 노력에 기대어 이루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환자실 의사로서 나는 돌봄을 외면하지 않을 때 치료가 완성된다는 것을 매일의 진료 속에서 잊지 않기 위해 노력 중이다. 나의 이런 노력이 ‘치료 속의 돌봄’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데 조금이나마 기여해서 언젠가는 현실적인 문제들이 해결되기를 바라본다.




정윤선 서울대학교병원 중환자의학과 임상 부교수

응급실을 통해 입원하는 중증 환자를 주로 진료하는 응급중환자 전담 전문의. 2022년 완화의료임상윤리센터에서 주최한 심포지엄 ‘중환자실 환자 돌봄의 확장’을 통해 ‘만성 중증 질환을 가진 중환자실 환자의 돌봄’이라는 주제를 준비하면서 늘 마음속에만 있던 고민을 꺼내 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진정한 돌봄은 마치 비 오는 날의 우산처럼 만성 질환의 모든 치료 과정에 함께해야 한다는 것, 중환자실도 예외가 아니기에 힘든 치료를 견뎌내고 계신 환자들과 가족들에게도 그러한 돌봄이 자연스러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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