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의학과 김재원 교수
체코 출신의 소설가인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에게 큰 죄가 두 가지 있는데 다른 모든 죄도 모두 여기에서 나온다: 성급함과 게으름이다.”
(There are two main human sins from which all the others derive: impatience and indolence.)
정신의 휴식을 위한 마음 사용법에서 게으름을 말하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가? 결론부터 말하면 게으름과 성급함에서 벗어나야 진정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역설적이기는 하지만 ‘잘 일해야 잘 쉴 수’ 있음을 강조하고 싶다. 게으름과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말은 꾸물거림’이다. 영어로는 ‘procrastination’인데 어원인 라틴어 'procrastinatus’를 분석하면 ‘pro(forward) + crastinatus(tomorrow)’이다. 말 그대로 ‘ 내 일로 미룬다’는 뜻이다. 구체적으로는 부정적인 결과나 후유증을 초래할 것이 예상됨에도 과제를 시작하거나 끝내는 것을 습관적으로나 의도적으로 지연하는 것을 말한다.
꾸물거림은 우울증이나 죄책감, 자존감 저하, 무능함 등과 관련이 있다. 꾸물거리는 사람의 내면에는 작은 실패나 실수로 자신이 부족하거나 무능한 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을지 두려워하는 마음이 숨어 있기도 하다. 그래서 최대한 일을 미루고 보는 것이다. 일종의 회피와 부정 반응이다.
게으름을 피우다가 제때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성급하게 끝내는 바람에 결국 일을 그르치는 유형의 사람들을 많이 보았을 것이다. 주로 게으름을 느긋함으로 착각하는 사람들로, 이런 사람들과는 같이 일을 하기가 정말 힘들다. 프란츠 카프카가 성급함과 게으름을 동시에 거론한 이유를 알 것 같지 않은가?
실제로 ‘느긋한의 사전적 정의는‘ 마음에 흡족하여 여유가 있고 넉넉하다’이다. 이것은 앞으로의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자신감에서 비롯되는 감정으로, 행동이 굼뜬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반면 게으름’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행동이 느리고 움직이거나 일하기를 싫어하는 성미나 버릇이 있다’라고 나와 있다. 얼핏 보기에도 게으름은 부정적, 느긋함은 긍정적인 뜻인데도 불구하고 게으름과 느긋함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왜 그렇게도 많은지 모르겠다.
문제는 게으름과 성급함은 고치기 어려운 습관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하지만 바쁨과 바쁨 사이 또는 바쁜 일이 지나 간 후에 찾아오는 여유와 느긋함을 한 번이라도 맛본다면 게으름과 성급함이 반복되는 삶에서 하루속히 탈출하고 싶은 욕구가 생길 것이다.
사진 박태희 사진가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 들어갔지만 불현듯 사진에 빠져들어 미국으로 사진 공부하러 떠났다. 프랫예술대학에서 필립 퍼키스에게 사진을 배우고 그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사진강의노트』를 번역했고 안목출판사를 설립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서로 다른 두 매체를 연결하는 콜라보레이션 작업에 많은 애착을 갖고 있으며 그 첫 번째 결과물로 사막의 꽃을 만들었다. 현재 사진 작업과 생계의 조화를 위해 부산에서 안목 갤러리 북카페를 준비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몇 가지 원칙과 방법을 소개해 본다.
첫째, 일정표에 구체적이고 세분화된 계획을 세우는 습관을 들인다. 나는 구글 캘린더를 애용하는데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나의 일정표를 공유한다. 일에 대한 계획이 구체적이려면 최대한 수치화하는 것이 좋다. 의뢰받은 주제에 대한 강의를 준비하는 경우를 예로 들어 보자. 1 자료조사는 주요 참고문헌 20개까지만 찾는 것으로 정하고 2 참고문헌을 검토하면서 인용할 자료나 표, 그림을 10개 이내로 정리하고 3 강의에서 전달할 핵심 메시지를 5개로 추리면서 강의 목차를 만들고, 4강의 시간 1분당 파워포인트(PPT) 1개 기준으로 강의 자료를 만든다. 이렇게 일련의 과정을 세분화하고 수치화하면서 단계별로 마감을 정해 놓으면 일을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둘째, 어떻게 보면 가장 중요한 원칙인데 일정표를 만들 때는 80%만 해야 할 일로 채우고 20%는 숨 쉴 수 있는 공간, 즉 버퍼(buffer)를 남겨놓는다. 일정표를 꽉꽉 채워놓으면 일을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일에 치여 허둥지둥하다 보면 오히려 일을 미루게 되고 결과적으로 꾸물거리게 될 수밖에 없다. 나의 일정표에는 언제나 버퍼가 들어 있다. 나는 이 버퍼를 느긋함을 보장하는 장치로 쓴다. ‘완충제’라는 말뜻처럼 버퍼는 주위의 사람과 일이 나의 심리적, 체력적 한계를 넘어서지 않도록 나를 보호하고 삶의 여유와 느긋함을 지켜 주는 보루 (堡壘)다. 나는 이 20%의 버퍼를 확보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쓴다. 하지만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은 일과 약속으로 빼곡하게 채워진 일정표를 훈장처럼 여기면서 살아간다.
셋째, 일의 성격을 잘 구분해야 한다. 나는 세 가지 기준을 갖고 일을 구분한다. 1 혼자 할 수 있는 일인가, 같이 해야 하는 일인가 2 하고 싶은 일인가, 하기는 싫지만 해야 하는 일인가(대부분 후자가 많기는 하다) 3 내가 해 야만 하는 일인가,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해도 되는 일인가. 혼자가 아닌 같이 해야 하는 일이면 버퍼를 더 만들어 놓는다. 돌발 변수가 발생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당연하겠지만 해야 하는 일보다는 하고 싶은 일에 시간을 더 투자한다. 마지막으로 이 일을 꼭 내가 해야만 하는가를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나는 내가 필요한 자리에서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해도 되는 일이면 정중하게 거절한다. 의뢰받는 자리 나 일은, 많은 경우 꼭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것들이다.
넷째, 일에 집중하기 위해 주의를 분산시키는 것들을 치워 놓는다. 이 글을 쓰면서도 중간중간 이메일과 페이스북을 확인하고 있지만 마감이 있는 중요한 일을 할 때에는 인터넷 창을 닫고 휴대폰은 비행기 모드로 바꿔놓는다. 그런 상태에서 2시간 정도 집중하면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물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일정표에는 이 타임 블록(time block)을 공지해야 한다. 호텔 방문에 걸어 두는 ‘방해하지 마세요(Do not disturb)'처럼 말이다.
어떤가? 이제는 게으름이나 꾸물거림 또는 성급함에서 벗어나 느긋함을 즐길 준비가 되었는가? 그런데 나 혼자서만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고 게으름을 느긋함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을 잘 감별하여 차단할 수 있어야 한다. 언제나 바쁜 티를 내는 사람, ‘시간이 없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면서 바쁘다는 것을 자랑처럼 여기는 사람이 제때 해야 할 일의 마감을 지키지 못하기 일쑤라면 그 사람은 카프카가 말하는 원죄를 지닌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처음부터 이런 사람을 감별해낼 수는 없겠지만 한 두 번 같이 일을 하며 손발을 맞춰보면 어떤 사람인지 금세 파악할 수 있다. 고민이 될 것이다. 이런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이들이 나의 여유롭고 느긋한 생활을 침해하지 않게 할 방법이 있을까. 이들이 일의 마감을 지키면서 성급하게 일을 그르치지 않도록 내가 도울 방법은 없을까. 미안하지만 뾰족한 수는 없다.
게으르고 성급한 사람을 바꾸려고 너무 애쓰지 말자. 내 경험상 그들은 잘 바뀌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자신이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임을 자각하지 못한다. 이들을 배려하다가는 나만 힘들고 피곤해진다. 페이스북의 친구나 휴대폰의 송신자를 차단하듯이 이런 사람들과는 같이 일할 기회를 만들지 않는 것이 나의 정신건강과 정신의 휴식에 좋음을 명심하자.
김재원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서울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와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정신과 교수로 진료하면서, 소아청소년정신의학을 연구하고 가르친다. 2014년 10월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에 국내 최초의 어린이·청소년 우울증 전문 클리닉 MAY(Mood and Anxiety clinic of Youth)를 개설해 우울증과 불안증, 자해·자살 위험, 기분조절 문제로 힘들어하는 아동·청소년들을 돌보고 있다. 저서로는 『아이를 외국에 보내기로 했다면』, 『팩트체크 아이 정신건강』 등이 있으며 최근작으로 『밥보다 진심』이라는 52개 진짜 마음 사용 설명서를 지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