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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울대학교병원 Mar 07. 2022

팬데믹 시대, 클래식의 위안

이채훈 클래식 칼럼니스트, 한국 PD 연합회 정책위원

당신의 페르마타를 위한 작은 음악회


모차르트는 "쉼표가 음표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한다"라고 했다. 말보다 침묵이 더 많은 뉘앙스를 전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쉼 표는 하나의 악절을 소화하고 다음 악절을 받아들일 여유를 준다. 음악이 격렬한 클라이맥스로 도약하려면 반드시 휴식이 필요하다. 음악 용어 ‘페르마타(Fermata)’는 이탈리아 말로 ‘정류장’ 이란 뜻이다. 쉬어 가는 정류장이 없으면 음악은 소회 불량에 걸릴 것이다. 


18세기 영국에서는 3시간짜리 오페라의 막간에 가벼운 협주곡을 연주하여 휴식을 제공했다. 헨델의 협주곡 〈뻐꾸기와 나이팅게일(The Cuckoo and The Nightingale)>은 그의 오페라보다 더 오랜 세월 사랑받아왔다. 오페라의 본고장 이탈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심각한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의 막간에 짧은 코미디를 공연했는데, 광대극 취급받던 페르골레지(Giovanni Battista Pergolesi)의 〈마님이 된 하녀(La Serva Padrona)〉는 귀족 사회를 풍자하고 비판하는 오페라 부파(Opera Buffa)의 효시가 됐다. 음악의 역사도 휴식의 토대 위에 서 있는 셈이다. 


평생을 폭풍우 몰아치는 하루처럼 치열하게 살다 간 베토벤 역시 휴식 없이 살 수 없었다. 그는 오전에 집중해서 작곡한 뒤 오후에는 산책으로 예술혼을 충전했다. 그리고 말년에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한 줄도 쓰지 않는 날이 없도록! 때때로 내 뮤즈가 잠들도록 내버려 두는 것은 그녀가 잠이 깰 때 더 활발해지지 때문이지. 나는 지금도 몇 곡을 더 쓰고 싶어. 그다음에는 늙은 아이처럼 친절한 사람들 속 어딘가에서 지구 위의 내 여정을 마치고 싶네." 

마찬가지로 , 2022년의 첫 번째 달을 맞이하며 작은 페르마타를 찾는데 도움이 될만한 세 곡을 소개한다. 


#1 차이코프스키의 ‘눈꽃송이의 왈츠’(Waltz of the Snowflakes) 


팬데믹과 맞서느라 눈코 뜰 새 없었던 의료진에게 2021년은 유난히 힘든 한 해였을 것이다. 헌신적으로 일한 의료진에게 차이콥스키의 발레 〈호두까기 인형(Nutcracker)〉 중 ‘눈꽃송이의 왈츠(Waltz of the Snowflakes)'가 잠시나마 위로가 되어주면 좋겠다. 


클라라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은 호두까기 인형을 안고 잠이 든다. 꿈에 생쥐떼가 나타나 집안을 휘저어 놓자 호두까기 인형이 생쥐 왕과 결투를 벌인다. 클라라의 도움으로 생쥐떼를 물리친 호두까기 인형은 멋진 왕자로 변한다. 두 사람은 과자와 요정의 나라로 여행을 떠나는 데, 밤이 깊어갈 때 흰 눈이 내려 쌓인다. 

ⓒTaeheePark - 박태희 사진 작가
ⓒTaeheePark - 박태희 사진 작가


#2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Winter from Four Seasons) 


추위를 견뎌내는 데도 많은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만큼 이 겨울엔 따뜻한 휴식이 절실하다. 비발디의 〈겨울 (Winter from Four Seasons)〉은 잔인한 바람 속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이를 딱딱 부딪치는 풍경을 연상시킨다. 여기저기 불협화음은 괴로운 느낌을 더한다. 대신 2악장에서는 난롯가의 풍경을 그렸다. (3:40부터) 포근한 바이올린의 주제 선율은 휘파람으로 불기 참 좋다.‘뚝뚝 뚝뚝' 피치카토는 창 밖에 떨어지는 빗소리도 되고, 화로에서 나무가 탁탁거리며 불타는 소리도 된다.


#3 모차르트의 ‘마술피리’(Die Zauberflote) 중 2막 피날레 


35년 짧은 생애에 무려 600여 곡의 걸작을 쓰고 떠난 천재 모차르트, 그는 놀라운 집중력으로 머릿속에서 곡을 완성한 뒤 프린터로 출력하듯 악보에 옮겨 적었다. 그는 35년 내내 작곡만 했을까? 천만의 말씀! 그는 틈나는 대로 펀치를 마시고 당구를 치며 친구들과 어울렸고, 아내와 함께 프라터 공원을 산책했고, 심지어 무도회에서 밤새 춤을 추었다. 천하의 모차르트도 휴식 없이는 작곡할 수 없었던 것이다. 1778년, 22살 모차르트는 파리 여행에서 참담한 실패를 맛보았다. 원하던 일자리를 얻지 못했고, 객지에서 어머니를 저 세상으로 보냈고, 사랑하던 알로이지아에게 거절당했다. 그해 12월 31일, 모차르트는 아버지에게 보낸 편지에 썼다. 


"오늘 저는 우는 것 이외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아무것도 쓸 수 없고요... 제 마음은 너무 슬퍼서 그저 눈물만 흘릴 뿐입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참, ‘방탕한 꿈'이라고 하셨나요? 저는 계속해서 꿈을 꿀 겁니다. 이 땅 위에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하필 방탕한 꿈이라니요! 평화로운, 달콤한, 상쾌한 꿈이라고 하셔야지요! 평화롭거나 달콤하지 않은 것들은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많은 슬픔과 약간의 즐거움, 그리고 몇몇 참을 수 없는 일들로 이루어져 제 인생을 만들어 낸 현실 말입니다!" 


모차르트 오페라 〈마술피리(Die Zauberflote)〉의 피날레, 지혜의 정령인 세 소년이 희망을 노래한다. 


"곧 아침이 밝아 오리라. 태양이 떠올라 황금빛 길을 비추면 미신은 사라지고 지혜로운 자가 승리하리라. 달콤한 평화여, 우리에게 돌아와 가슴속에 깃들여 다오.” 


이때 여주인공 파미나 공주가 머리를 풀어헤친 채 칼을 들고 등장한다. 그녀는 어머니 밤의 여왕으로부터 버림받았다. 침묵의 시련을 겪고 있는 타미노 왕자가 더 이상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오해하고 있다. 그녀는 자살을 결심한다.

 

"(칼을 보며) 그대가 나의 신랑이 되겠군요. 그대의 도움으로 내 비탄을 끝내리라. 아, 내 슬픔의 잔은 가득 찼네. 무심한 왕자님, 안녕! 파미나는 당신 때문에 죽습니다!" 


세 소년은 타미노 왕자가 오직 그녀만 사랑하고 있다고 알려주고, 이 소식에 파미나는 금세 희색을 되찾는다. 절망에 빠진 파미나를 세 소년이 위로할 때 ‘‘파미레 도시~"하강하는 다섯 개의 음표 소리가 들린다. 이 다섯 음 표는 파미나의 상처를 어루만져 주는 손동작과 정확히 일치한다. 


새해도 힘겨운 나날이 이어질 것이다. '많은 슬픔과 약간의 즐거움, 그리고 몇몇 참을 수 없는 일들'이 우리를 맞이할 것이다. 음악과 함께하는 잠깐의 휴식이 미소를 되찾게 해 주고, 삶의 에너지가 되어 주기를 바란다.



이채훈클래식 칼럼니스트, 한국PD연합회 정책위원 


중학교 1학년 때 누나가듣던 LP 판에서 흘러나오는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듣고 세상이 뒤집어지는 듯한 충격을 받으며 클래식 음악과 ‘운명적’으로 만났다. 30년 가까이 MBC에서 PD로 일하면서 다큐멘터리 ’이제는 말할수 있다' 시리즈를 통해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추적했다. 방송대상, 통일 언론상, 삼성언론상 등을 수상했다. 펴낸 책으로 『내가 사랑하는 모차르트』(호미, 2006), 『클래식, 마음을 어루만지 다』 (사우, 2014), 『몬테베르디에서 하이든까지』 (호미, 2015), 『이마에의 토닥토닥 클래식』(책읽는곰,2015), 『모자르트와 베토벤』(호미,2017)소설처럼 아름다운 클래식 이야기(혜다,2020)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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