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컴투 코리아 1

: 갱춘기 7화

by 롤빵

하준이 유튜브를 찍기 시작한 건 정확히 7살부터였다.

아빠가 틈만 나면 하준 형제의 일상을 영상일기처럼 올리기 시작했던 게 화근이었다. 아시아인 남동생과 미국인 형이 다정하게 노는 모습이 뿌듯해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러면서 어느새 하준도 카메라를 드는 일상이 당연해졌다.


미국에 사는 동양남자아이의 브이로그는 한국인들 눈에 희귀했던지, 하준 TV를 응원하고 구독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런 하준은 학교생활에 자신감도 넘치고, 학생회장도 해보고, 프롬 퀸과 데이트도 하면서 나름 즐겁게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하준과 카메라는 한 몸이었다. 스마트 폰이 보급되면서 더욱 일상을 밀착했고, 그럴수록 하준에 대한 팬덤도 거대해졌다. 아침에 눈을 뜨며 시작되는 브이로그는 욕실을 제외하곤 모두 공유됐다. 그야말로 살아있는 트루먼쇼였다. 자신의 민낯이 공개될수록 오히려 구독률은 올라갔다.


또렷한 이목구비도 한몫했다. 1955년에 개봉한 이유 없는 반항의 ‘제임스 딘’을 연상시키는 외모로 미국에서도 나름 인기를 끌었다. 게다가 학과 점수도 좋아서 영화 관련 학과가 있는 뉴욕대학교에 붙었지만, 하준은 뻔한 코스대로 가는 삶에 잠시 쉼표를 찍고 싶었다. 미국에 유행하는 케이팝, 한류열풍 덕에 미국에 사는 한국인 남자애의 생활은 더 유연했지만, 어딘지... 계속해서 자신을 증명해야만 했던 삶을 살았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만 2세에 미국으로 입양된 하준에게 엄마의 존재란 푸른 눈의 금발머리였지만, 본인은 언제나 미운오리새끼처럼 남과 ‘다름’이 궁금했다. 한국에 계신 엄마 소식을 알고 싶어 입양전문 업체에 연락해 보았지만 엄마 소식은 알 수 없었다. 그렇다고 어떤 그리움이나 향수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다만, 호기심이 생겼을 때 즉흥적으로 해결해 버리는 버릇 덕분에 유명 유튜버가 된 것처럼 한국이란 나라가 점점 궁금해졌다.


200만 유튜브 구독자들 덕분에 독립할 준비가 충분했던 하준은, 정들었던 미국의 보금자리를 떠나 한국에 유명 영상예술대학으로 입학을 신청했다. 작은 나라 대한민국, 그것도 서울은 ‘강남스타일’의 노래처럼 세련된 동양인들이 가득했고, 그들 속에 자연스레 섞이는 느낌이 꽤나 신선했다. 어디든 하준에게 다정했고, 호기심보단 편안함의 눈빛을 보냈다. 한국어를 잘하진 않았지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한국속담처럼 한국영화 드라마를 보며 금방 언어를 습득했다. 사람들은 친절했고 무엇보다 ‘정’스러웠다.


한국인들과 접점을 많이 만들고 싶어 학교 기숙사를 신청해 그곳에 짐을 풀고, 본격적으로 한국을 관광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유명한 박물관부터, 고궁, 한복을 입어보기도 하고, 투어버스를 타고 서울 중심지란 곳은 대부분 다녔던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한국 지하철 타는 것도 익숙해지고, 적어도 유명한 전철역 정도 외울 수 있게 되었다.


한국에 온 한국산 미국인에 대한 관심에, 유명 유튜버라는 시너지 효과가 붙어 영상을 올릴 때마다 조회수가 폭발적이었다. 해외팬이었던 한국팬들을 직접 만나기도 하면서 미국에 살때보다 더 셀럽이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젊은이들이 즐비한다는 성수동 팝업존을 거쳐, 서촌카페거리를 찍고, 청계산, 관악산, 도봉산도 등반하면서 마치 어느새 진짜 한국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도 일었다.


하지만 인기 때문일지, 오히려 한국에서의 유튜버 생활은 미국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안정적인 유튜버 생활을 위해 소속사에 들어갔지만, 이것도 해보세요. 저기도 가보세요.라는 스케줄과 댓글에 시달리다 보니 졸업도 하도 전에 모든 에너지를 소비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한국을 제대로 느끼고 호흡하고 싶었던 고유의 색이 흐려지고 있었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

brunch membership
롤빵작가님의 멤버십을 시작해 보세요!

그림과 글의 굴레에서..

220 구독자

오직 멤버십 구독자만 볼 수 있는,
이 작가의 특별 연재 콘텐츠

  • 총 17개의 혜택 콘텐츠
최신 발행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