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Podoals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미 Sep 16. 2015

봄과 같아서

우연히 햇살을 등지고 걸었다

우연히 햇살을 등지고 걸었다. 어느덧 공기에서 봄 내음이 나기 시작하던 날, 오후 여섯 시가 훌쩍 지났는데도 

아직 해가 밝았던 날. 나는 해를 등지고 꽤 오랜 길을 걸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던 길이었다. 강의실에서부터 후문 버스정류장까지, 한참을 주욱 걸었다. 그런데 그때의 느낌이 아직까지도 생생하다. 온몸은 힘이 빠진 채 나른한데 어쩐지 참 포근했다. 등 뒤로 내리쬐는 햇살이 참 따뜻했다. 누군가 내 뒤에서 꼭 안아주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느낌이 너무 따뜻하고 좋아서, 뭐랄까 온몸으로 위로받는 느낌이라서 최대한 느릿느릿 걸음을 걸었다. 


사실 그럴 때가 있다. 고개를 돌려 빛을 바라볼 만큼의 힘조차 나지 않을 때. 눈 앞의 그림자는 여전히 서늘하고 캄캄한데 속수무책으로 그것을 바라보아야 할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그냥 햇살을 등지고 걷는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올 때면 일부러 더욱 그렇게 한다. 이렇게 해가 좀 길어진 봄날이면 습관처럼 등을 돌린다. 


등 뒤로 느껴지는 그것이 너무 따뜻하고 좋아서. 뭐랄까, 온몸으로 위로받는 느낌이라서. 삶의 막막함 가운데 찾아오는 그 따뜻함이 내겐, 봄과 같아서. (Apr16, 2015)

매거진의 이전글 매일의 포도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