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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미 Sep 20. 2015

나의 목소리가 들려

내 안의 소리

올 여름, 나는 한 가지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내 방 옆에는 바로 찻길이 있어서 차들이 쌩쌩 지나가는 소리가 다 들린다. 하지만 창문을 닫고 자자니 너무 더운 것이 문제. 


열면 시끄럽고, 닫으면 더운 이 상황 앞에서 나는 한껏 분노했다. 자는 행위가 얼마나 신성한 의식인데!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향 좋은 바디로션을 바르고 푹신한 침대에 눕는 시간을 하루 내내 얼마나 기다리는데! 나는 왜 머리맡에서 버스가 끼익 브레이크 밟는 소리와 트럭이 빵빵거리는 소리를 3D로 체험해야 하는 거냐는 말이다. 그것도 자기 전에! 그것도 제일 좋아하는 시간에!


그래서 내가 선택한 최후의 수단은 이어 플러그. 말랑말랑한 스펀지를 꾸욱 눌러 귀에 꽂으니 신기하게도 소음이 많이 줄었다. 그날, 나는 천군만마라도 얻은 것마냥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러자 빗길에 차 바퀴가 끼익 거리는 소리도, 부와아아아아앙 하는 오토바이 소리도, 화가 난 버스 기사 아저씨의 클랙슨 소리도 아주아주 작아졌다. 나는 매우 만족했고 그렇게 잠을 청했다. 


그런데 모든 것이 조용해진 그때, 
굉장히 낯선 소리가 귀를 간지럽히기 시작했다. 1초보다는 조금 느리고 0.5초보다는 조금 빠른 소리. 콩 콩 콩 콩, 내 안에서 나는 소리. 바로 심장 소리였다. 세상에. 내가 내 심장 소리를 듣게 되다니! 500원짜리 이어 플러그의 성능은 굉장했다. 누군가는 무엇이 당신의 심장을 뛰게 하느냐고 그렇게 외쳤었는데, 나에게 그것은 아무래도 이어 플러그였나 보다. 


심장 소리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저 심장 근처에 무언가 툭 툭, 떨어지는 것을 느끼는 것이 다였는데. 손목 안쪽 푹 들어간 곳에 손가락을 대고 무언가 통 통 뛰는 것을 '듣는다'기 보다는 '느끼는' 것이 다였는데. 말 그대로 그 소리를 듣는 것은 처음이었다. 


내 안의 소리를 듣는 것 자체가 참 오랜만이기도 했다. 

그냥 순수하게 내 안에서 떠오르는 생각, 

나로부터 비롯되는 어떤 마음, 

내 소리,

나. 


언제나 외부의 소리에 익숙했다. 다른 것 따라가기에 바빠서 나를 듣는 일에는 소홀했다. 듣는다기보다는 나 아직 살아있긴 하구나, 하고 그 존재를 느끼는 것 정도에 만족했다. 정직하게 또 생각해보면, 제대로 된 방법을 몰랐던 것 같기도 하고. 


별 것 없었다. 외부의 소리를 잠시 밀어내면 되는 거였다. 듣고 싶지 않은 소리가 있다면 잠시 물리적으로라도 차단하면 되는 거였다. 그럼 내 안의 소리가 들린다. 명상을 하거나, 단식원에 가서 생각을 다 비우거나, 나에게만 오롯이 집중하고 집중하는 과정을 굳이 거치지 않아도 되는 거였다. 이 단순한 것을 왜 그리도 거창하게 생각했을까.


나의 목소리가 들리니.

더 늦기 전에 나목들 한 편 찍어야겠다. (Sep2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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