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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E 포 Feb 01. 2023

직장인에게 배달앱 자유이용권이 생긴다면?

MZ직장인의 미니멀라이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COVID-19)이 창궐하고 몇 개월 지나지 않아, 회사에서 지역화폐의 형태로 복지비가 지급되었다. 영업시간제한 등으로 매출에 큰 타격을 받은 소상공인을 보호하기 위한 명목이었다. 배달의 민족의 앱에서 지역화폐로 결제가 가능하다는 것을 확인하자, 내 안에 깊은 곳에서 음식에 대한 욕망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지금까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참아왔던 욕망이 본격적으로 삐져나오기 시작했다. 이 경험을 감히 'K-직장인버전 마약경험'이었다 말할 수 있겠다. 그만큼 한번 맛을 들이자 끊기 어려웠다. 모든 저녁식사를 배달음식으로 해결했다. 배달비가 아까워서 시키지 못했던 디저트도 편한 마음으로 주문했다. 특히 맛있었던 명란유부초밥은 3일 연속으로 주문했다. 어찌나 자주 시켰던 건지, 사장님은 나를 기억하고 서비스를 더 챙겨주셨다. 밤 10시에는 크림이 잔뜩 들어간 와플두 개를 시켜 와구와구 먹거나 아이스크림을 주문해 허기진 배를 달래주었다.


그러나 배달의 민족 자유이용권의 행복은 길지 않았다. 나의 혀는 배달음식에 완전히 절여졌다. 이제 어떤 종류의 음식을 먹든, 끝맛은 같게 느껴지는 경지에 올랐다. 배달봉지를 뜯고 허겁지겁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맛을 느끼고, 축제가 끝나고 나면 플라스틱 쓰레기 더미를 정리하는 일련의 과정은 배부른 배와 대조적으로 참을 수 없는 공허감을 만들었다.약 2-3달 만에 100만 원에 가까운 복지비를 탕진했다.


단발적인 쾌락이 주는 맛에 길들여져, 돈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즐기는 것이 진정 자유인가 곱씹어 보았을 때, 나의 대답은 '아니요'였다. SNS를 끊었을 때 사용한 방법을 배달음식을 줄이는데 그대로 적용했다. 아예 배달 앱 자체를 핸드폰에서 지워버렸다. 지금은 혼자 식사를 할 때 거의 배달앱을 사용하지 않는다. 가끔 이벤트성으로 사용한다. 작년엔 1년 동안 배달음식을 3번 시켜 먹었다. 다이어트 중 입이 터지자 정신줄을 붙잡고 타협을 해서 주문시켰던 보쌈 2번과, 재택근무 중 시킨 샌드위치 1번이 다다.


지금 주문할 수 있는 돈은 늘었지만 조절하며 얻는 행복이 더욱 크다. 저녁에는 삶은 고구마 본연의 달달함과 계란의 고소함을 느낀다. 숨이 찰 정도로의 배부름이 아니라 적당한 포만감을 느끼는 정도에서 식사를 멈춘다. 그런 의미에서 미니멀라이프는 진정한 쾌락을 추구하는 삶이다. 나는 지금 배달음식을 시킬 돈과 시간이 없는 것이 아니다. 배달음식을 조절하지 않았을 때 무서운 것은 돈도 시간도 아닌, ’ 무기력하고 공허한 나‘의 모습이다.  헤르만 헤세는 에세이집 '삶을 견디는 기쁨'에서 절제로 얻는 행복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말한다.

별로 현대적인 모습으로 살고 있지 않는 내가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어왔던 생각 하나를 말하고 싶다. 적당한 쾌락을 즐기는 것이야말로 삶이 주는 맛을 이중으로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과 더불어 일상에서 느끼는 사소한 기쁨을 간과하지 말라는 조언도 꼭 하고 싶다.
결국 내 말의 핵심은 '절제'이다.
/ 삶의 견디는 기쁨. 헤르만 헤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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