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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E 포 Jan 23. 2023

스타벅스로 떠나는 미니멀 여행

MZ직장인의 미니멀라이프

여행의 의미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이자, 바깥세상으로의 탐험이라면 나는 단연코 스타벅스에 가는 것이 여행이라 말할 수 있다. 이 여행에는 철칙이 있다. 바깥 풍경이 훤히 보이게 트인 창이 있는 매장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좁은 도로와 도로 사이에 위치한 매장은 이따금 고개를 젖혀 멍을 때릴 만한 파란 하늘을 보기가 힘들다. 통창 앞에 일렬로 위치한 한 명씩 앉는 자리는 파란 하늘과 건물의 조화로움을 만끽할 수 있어 애정하는 자리이다.

나는 원체 여행을 즐기지 않는다. 대학 시절 교내프로그램으로 방문한 미국이 감명 깊어 여행에 안일했던 과거를 반성했으나, 그 뒤로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아마 여행을 즐기지 않는 데에는 내가 여행을 힘들어하는 부류라는 사실이 작용한다. 집 밖을 나가는 순간부터 에너지를 소모하기 시작하는 유형의 사람인 나는 돈이 궁핍하던 대학시절엔 여행을 즐기지 않는 이유가 순전히 가난하기 때문인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을 조정하는 약간의 수고로움을 감수하면 되는 직장인이 되었을 땐, 멀리 떠나는 여행을 귀찮아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더욱이 여행을 즐기지 않게 된 데는, 내가 살고 있는 도시가 이미 여행의 기대감을 물씬 풍기는 관광도시라는 사실도 한몫한다.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아름다운 광안대교를 품은 광안리와, 영화 ‘헤어질 결심’의 주인공 서레가 깊이 잠겨버린 다대포 해수욕장. 꼭 그곳에 가지 않더라도 이 도시를 감도는 공기의 색깔은 분명 여행을 떠날 때의 설렘을 품고 있다.


청소와 같은 집안일을 할 필요도 없고, 정리정돈 된 가구와 인테리어를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스타벅스에서 갖는 시간은 호캉스와 같다. 하루 전체를 빼야 한다는 것과 꽤 부담스러운 호텔숙박료로 묘하게 힐링을 해야 한다는 압박을 가지는 호캉스에 비해, 스타벅스로의 미니멀 여행은 그러한 부담스러운 면모를 배제한다는 면에서 마음의 짐을 덜은 여행이다.


잔잔한 재즈가 흐르는 배경음악, 따뜻한 우드계열의 인테리어, 그리고 내가 제일 사랑하는 커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는 아니지만, 나의 예상치 안에 있는 이 모든 것들은 새로운 매장을 가도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아 묘한 편안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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