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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E 포 Jul 01. 2022

첫 취업, 공허한 저녁을 맞이하다

MZ직장인으로 회사에서 살아남기

2019년, 첫 취업 후 길을 잃다

취업이라는 목적지만을 보고 달려왔다. 취업준비를 하는 대학생의 책상 벽에는 공부할 때 고개를 올리면 볼 수 있도록 적당한 높이에 목표를 적은 메모지가 테이프로 붙여져있었다.


'24살에 4천만원 이상 초봉의 공기업에 합격한다.'


글로 적으면 현실이 된다는 숱한 이론들을 믿으며, 원하는 목표를 매일 바라보았다. 100%는 아니지만 어느정도의 목표를 이루고 '최종합격'이라는 페이지를 보았을 때 순간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세상을 다 가진 기분. 벅차오르는 감동. 그러나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여태 성취지향적인 방식으로만 삶을 살아왔다. 성취지향적이라는 것은 결과지향적이라는 뜻이다. 과정은 괴로웠으나, 결과만 옳다면 그 과정들은 추억이 되었다.


고등학생 땐, 원하는 대학을 목표로 살아왔고 대학생 땐 원하는 회사를 목표로 살아왔다. 20대 초반 원했던 회사에 합격하고 나니 '목표'라는 것이 사라졌다.


영화 졸업의 마지막 장면과 비슷한 느낌이다.

원치않은 결혼에서 벗어나 도망치고   자유로움과 통쾌함은 몇분안에 사라지고, 앞으로의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에 낯빛이 어두워진 주인공들처럼 생각한다

이제 졸업도 하고 취업도 했는데, 뭐하지?


6시 퇴근 이후 할게 없어서, 나의 작은 방에서 속으로 포효를 했다. 심심하고, 재미없고, 공허해서.

4년도 넘은 첫 취업을 돌이켜보았을 때 내가 그토록 큰 공허함을 느꼈던 이유는 '성취, 돈, 성장' 과 같은 것 외에는 가치를 평가 절하했기 때문이다. 당시 나는 분명 운동을 해보려고 했다. 그러나 헬스장을 등록할 돈이 아깝고, 더욱이나 PT를 신청할 생각은 못했다. 심지어 요가매트를 살 돈마저 아까웠다. 그래서 그냥 땅바닥에서 유튜브에서 운동영상을 보며 운동을 시작했으나, 하루 이틀만에 운동은 재미가 없다며 그만둬버렸다. 무언가를 해보고자 할 때 내 머릿속에 먼저 떠오르는 것은 '돈'과 '내 취향' 이었다. 돈이 지출된다는 생각에 뭔가를 하지 못했고 '돈'을 버는 행동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 취향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 고집과 아집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해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내가 걷기로 한 길

밀려오는 공허함과 허무함에 무언가 목표를 찾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목표에는 내적 성장, 신체의 성장, 휴식등 다양한 카테고리가 있지만 당시 관심이 가지던 분야는 '돈과 지위의 상승'이었다. 그래서 찾은 선택지는 이직준비였다. 더 큰 규모의 회사에서 더 체계적인 조직의 구성원들과 함께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직장인이 되자고 결심하고 여유시간을 모두 이직준비에 쏟아붓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휴식과 자극이 필요한 시기에 '돈'의 지출보다 무서운 '에너지' 지출을 끝도 없이 했고 나의 에너지통장은 바닥을 보였다. 


무서운 번아웃

무산소 운동을 할때, 쉬어야 찢긴 근육이 회복되며 증량을 할 수 있듯 직장인도 휴식을 취해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에너지 통장이 0원을 넘어 마이너스를 찍고 있던 번아웃 상황은 나에게 생각할 여유를 없애고 충동적인 행동을 하게 만들었다. 당분간 휴식을 가지고 업무를 변경해보라는 상사의 조언도 단단히 번아웃증후군에 걸린 사람 귀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안가던 길을 가보다

새로운 직장에서 이직준비를 그만둔 뒤 예전처럼 휴식시간이 남았다. 어렴풋이 과거의 공허함과 외로웠떤 시간들이 떠올랐다.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시간, 나만의 갭 이어기간동안 나는 도전을 해볼 용기를 얻었다. 매번 길을 걸어가며 왼쪽 길과 오른쪽 길이 있다면 왼쪽 길만 걸어가던 내가 안하던 일을 해보았다. 오른쪽 길로 한번 가보았다. 영화 '트루먼 쇼'의 트루먼이 모두의 예상을 깨는 경우에 없는 수의 행동을 하는 것처럼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다. 

언젠가 뜬금없이 동료에게 말했다.

" 나 소개팅 시켜주세요! "

평소라면 공부에 방해된다고, 소개팅은 8할이 실패라고 여기며 남이 시켜준다고 해도 고민했다. 그러나 이번엔 스스로 주변 사람들에게 요청했다. 그리고 나의 이상형을 자세히 말했다. 

예상치 못한 행동으로 만들어진 소개팅 자리에서 나는 지금의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또 미래는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우리는 새로운 미래 계획을 세우고 있다.


정신과를 다시 다니게됐을무렵, 나는 눈을 질끈감고 헬스장을 향했다. 한번에 큰 돈이 들어가는 것이 매번 고민이었던 PT를 결제했다. PT를 시작하자 나도 몰랐던 새로운 취향을 발견했다. 헬스기구의 무게를 점점 늘려가는 재미를 알게되었고, 단백질을 챙겨먹는 식단을 고민하게 되었고, 몸의 균형에 대해서 신경쓰게 되었다. 신체는 정신에 영향을 주고 정신은 또 신체에 영향을 준다고 하던가. 운동은 정신건강에도 선순환을 일으켜 일상의 활기를 일으켰다.


이제는 충만한 저녁

나는 지금 이직 준비를 하지 않지만 퇴근 후 시간이 남아돈다기보다 오히려 부족하게 느낀다. 퇴근 후 1시간 30분 운동을 하고, 상쾌하게 샤워를 하고 간단하고 건강하게 저녁을 챙겨먹는다. 원하는 분야의 책을 읽거나 정보를 찾아본다. 글이나 일기를 쓰며 나의 감정상태를 확인한다. 언뜻 4년 전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 저녁의 모습. 하지만 마음 속 충만함은 120%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어서 취업을 하라고 재촉을 한다. 그러나 정작 취업 후 적절한 휴식과 소소한 도전들이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서 알려주지 않는다. 지속가능한 생활을 하기 위한 소소한 행복이 버팀목이다. 예상했던 것보다 '돈' 이나 '시간'이 들어도 내 취향이 아니라도 한번 쯤 시도해보길 바란다. 생각치도 못한 새롭고 재밌는 상황이 펼쳐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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