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서쪽나라
<이륙>
죽는 것
말고
이 땅을 뜨는 방법은 비싸다.
평생 가난하게 살다가
중환자실에서 비싸게 죽는
그것 말고
한숨과 통증의
마일리지가
뼈와 가죽으로 만든 꼬리날개로
에휴~ 하고 바람이 분다.
해 질 녘 어머니의 베개에서
하얀 비행기 한대가 떠오르고
디스 이즈 캡틴 스피킹. 파마머리 꼬부랑글씨가 엉키고 기내식으로 나온 갓김치에 막걸리가 성령을 부르짖어도 늙은 소녀는 마냥 신기해 후회의 눈물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그림자 색만 남아 둥근 몸, 허리 어디쯤 짚으면 한숨 놓는 해가 눕고 반짝이던 비행기 창문으로
차암 신기하네~ 눈을 크게 뜬 엄마의 얼굴이 비행운을 그린다. 내게 손을 흔든다. 지긋지긋 관절에 묶여있던 중력을 거스르며 옴마야 옴마야 출세했네 비쌀 텐데 하며 날아가는 저 작은 빛.
주무세요?
어머니?
... 으은하수 하아얀 쪼옥배에에엔 계에수나아무....
대기권과 성층권을 지나 깨 같은 별과 떡 같은 달을 지나 엄마의 비행기는 작은 창문의 눈꺼풀을 아래로 감는다. 드디어 땅을 잊고 검게 빛나는 하늘로만 반짝이며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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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틈 : 신사임당 초충도의 나비, 소장-석파정 서울미술관)
팔순의 어머니가 처음 비행기를 타보던 날을 생각해 본다. 출세한 듯 놀랍고 신기하고, 그 뒤로는 공항에서 비행기를 볼 때마다 저걸 타고 우리 아들에게 갔는데...라고 말씀하신다. 늙은 소녀는 여전히 신기하고 설레는 게 많아서 그 소녀의 늙어가는 아들은 늘 새롭게 슬펐다.
높고 하늘에 있는 많은 것들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 지상에서 허리를 펴 하늘을 보는 것조차 사치이거나, 아파트에서 사는 아이들에겐 수직의 하늘을 손 뻗어 바라볼 기회가 없다. 창문과 베란다에서는 모든 하늘이 수평의 풍경으로 프레임에 갇혀 있을 뿐.
그래서 하늘을 날아갈 땐 새로운 차원(실제로 2차원에서 3차원으로 큰 폭의 경험을 한다.)의 느낌과 마음이 열린다. 코로나19 유행 때 선보였던 이륙 후 기내식 후 착륙 서비스상품처럼 차라리 가끔씩은 그냥 우리 동네를 한 바퀴씩 비행기 태워주는 서비스가 있다면 좋겠다. 젊고 어린 친구들도 수시로 답답한 현실을 벗어나는 꿈을 경험하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하지만 비싸다.
요양병원에 중환자실에 누워 몸이 가벼워진 어른들을 볼 때마다 이륙 준비를 하시는 건가. 부쩍 무게를 줄이셨네... 하고 혼잣말을 한다. 줄이고 줄여서 가벼워진 몸은 땅과 물과 풀과 나무와 나비들에게 나눠주고 더 가볍게 남겨진 마음과 기억과 영혼은 이 밤 이륙을 한다. 세상 다정한 기장은 이번 비행에 모시게 되어 정말 영광이라며 한 분 한 분을 안아준다. 간혹 좌석 사이사이 빡빡머리의 환자복을 입은 어린아이도, 청년도, 군복을 입은 군인도 껴 있다.
비행기는 이륙해서 서쪽 하늘로 날아갈 예정입니다. 가시는 동안 지상의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봐주시고, 반가운 얼굴이 있으면 창문을 통해 손을 흔들어주시면 되겠습니다. 이 비행기는 따뜻한 햇빛이 지지 않는 서쪽 하늘로 계속 비행할 예정이고, 한숨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별과 친구들과 몸으로 환승하실 예정입니다.
가끔 내가 살고 있는 일산의 서쪽 하늘을 바라보면 많은 비행기들이 뜨고 내린다. 저 비행기 중 하나는 지상의 가장 큰 그리움을 내려두고 멀리 서쪽하늘로 영혼을 데리고 뜨는 비행기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나도 모르게 가끔은 휴대전화의 플래시를 켜서 비행기를 향해 손을 흔든다. 마음속으로 이렇게 인사를 한다.
"정말 고마웠어요~ 기억을 다 잊고 새로운 마음이 되면
우리 어디선가 또 만나요.
그땐 서로를 알아볼 수 없으니
누굴 만나더라도 친절하기로 해요. 그냥 좋아하기로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