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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틈 Oct 14. 2024

비정규직 고양이

꼬리의 비밀

<꼬리는 상상력>


창 밖을 내다보며

날렵하게 몸을 날려 새를 쫓고

나무를 건너뛰며 날아오르지

벽과 벽 사이를 곡예하듯 넘기도 하고

그림자보다 어둡게 틈과 틈 사이를 흐르지.


꼬리는

앉은자리에서 

그 모든걸 다 해내지.


부자가 되어야겠어

일을 안 해도 굶지 않게 된다면

모두들 노동하느라 한적한 평일을

소란스럽게 질주하고도 싶을 거야

시간을 이쑤시개로 하나씩 찍어서

지금을 나중으로 옮겨놓을 거야.

지겨워지면 그러면 종이를 펴고

아무 단어나 하나 그려 넣고

주문을 외워봐야지

꼬리가 되어라!


그 꼬리를 엉덩이에 붙이고 

조용히 흔들면 마법이 시작되지

돈이 떨어지면

꼬리를 감추고 사람들 사이에 섞여서

창가 자리는 사양할게요

꼬리가 가만두질 않거든요.

궁금하지 않을 만큼 조용히 지낼게요.

관심을 두지 마세요.

정규직도 아닌데요 뭐.

당신들의 서열 싸움에 낄 생각도 없습니다.

전 꼬리를 잘린 채 살고 싶진 않아서요.

아직은 벽과 나무를 타고 올라

그림자로도 변신하고 싶어서요.

세전? 주휴수당? 뭐 상관없어요.

배가 부르면 떠날 겁니다.


배가 부르면 잠을 잡니다.

사실은 꿈을 꾸는 겁니다.

잠은

일종의 흰 종이고

꿈은

일종의 꼬리입니다.

꼬리라고 믿는 글자이기도 하고

그래서 가끔

번역이 안됩니다.

사용 설명서는 없어요.

이제

자러 가야 하니까요.


배가 고파지면 말을 걸 겁니다.

제가 아니라 꼬리가 말을 걸 겁니다.

꿈이냐고요?

배가 고프면 당신을 흰 종이에 그려 넣고

까칠한 혓바닥으로 맛을 볼 겁니다.

잡아먹을지 말지는

꼬리가 결정하겠죠.


(사진-김틈 : 배란다 앞의 유기묘 출신 고양이 “버미” 주특기는 꿈꾸기)


  고양이를 키울수록 인간과 고양이의 닮은 점을 자주 발견한다. 아니. 인간과 고양이가 다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고양이의 꼬리는 많은 것을 갖고 있다. 예민하고 유연한 척추의 많은 신경도 연결되어 있어 함부로 잡아서도 안되지만... 그 움직임은 의심의 여지없이 “언어”다.


   맹수나 멍멍이가 가진 꼬리 언어보다 구사할 수 있는

말과 생각과 감정이 몇 백배는 많아 보인다. 다만 인간이 굳이 그 언어까지 번역하지 않으려 할 뿐. 당신이

나를 그가 그녀를 우리가 저들을 이해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꼬리는 상상한다. 상상을 현실 감각으로 번역해 준다. 잘린 꼬리가 가려우면 일상에서 도망쳐 흰 종이를 펼쳐라. 크고 큰 종이 위로 온몸을 굴리며 꼬리를 그려놓고 주문을 외라. 당신은 아직 기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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