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변심
<하얀 노을>
단단히 들러붙은 겨울을 겨우 뚫고
나온
초록이 반가웠고
열병 앓는 입김보다 더운 날들 사이
갇혀
초록이 버거웠고
잠깐 한숨 자고 한눈 파니
초록이
인사도 없이 떠나가네
좋아했다가 미워했다가
네 탓도 아닌데... 하며 미안하기도 하고
또 보자
아무렇지 않게 이별하는데
자꾸만 붉어지네
잎도, 마음도, 멀고 먼 시간들도
붉어질 때마다
하얗게 노을 지는 늙은 부모와
실과 바늘처럼 그리움을 엮는
내 은빛 머리칼
그땐
내가 초록이었을 땐
몰랐어
엄마 가슴에 바늘 하나씩 꽂아도
아빠 들숨에 실뭉치 하나씩 막아도
봄은 또 오고
겨울은 또 가니까...
했지.
가을 같은 가을을 홀로 가다 보니
마지막 겨울도 있고
마지막 초록도 있어
마중 나와 낙엽으로 사라지는
노부부처럼.
배웅하려 손을 모아
아침 기도를 내게 올린다.
이별이구나
라고 당당히
울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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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덕이고 변심이다.
봄에 초록들을 곱게 쓰다듬으며
고맙다고 이렇게
겨울을 견디고 와주어 정말 반갑다고 창가에 설 때마다 인사를 건네다가... 연둣빛이 진초록이 되고 초록과 잎이 흔해지면 무심해지다, 미워도 한다.
가을에 낙엽 지고 단풍 들면 문득, 우리가 참 그리워하고 반가워했지... 하곤 미안해한다.
연둣빛 어린 날과 초록빛으로 커가던 날들 한 여름처럼 짝짓고 열매 맺고 하던 날들이 가고 초가을 같은 시간에 서니 문득, 혼자가 아니었고... 처음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다. 내 이전의 초록과 가을이 있었고. 나는 그 안에 있었다.
저 겨울 안에 봄이며 여름이며 미움이며 그리움이 다 들어있었다.
하나씩 꺼내보던 봄과 반가움과 낙엽과 이별이 영원할 줄 알았는데... 그 무한할 것 같은 계절도 하얗게 수명을 다한다.
뭐 낙엽하나 지는데...라고 무심하면
마음 없이 이별을 겪는다.
아침마다
가을 아침마다
당당히 눈앞이 붉어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