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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틈 Oct 13. 2024

하얀 노을

가을 변심

<하얀 노을>


단단히 들러붙은 겨울을 겨우 뚫고

나온

초록이 반가웠고


열병 앓는 입김보다 더운 날들 사이

갇혀

초록이 버거웠고


잠깐 한숨 자고 한눈 파니

초록이

인사도 없이 떠나가네


좋아했다가 미워했다가

네 탓도 아닌데... 하며 미안하기도 하고

또 보자

아무렇지 않게 이별하는데


자꾸만 붉어지네

잎도, 마음도, 멀고 먼 시간들도

붉어질 때마다

하얗게 노을 지는 늙은 부모와

실과 바늘처럼 그리움을 엮는

내 은빛 머리칼


그땐

내가 초록이었을 땐

몰랐어

엄마 가슴에 바늘 하나씩 꽂아도

아빠 들숨에 실뭉치 하나씩 막아도

봄은 또 오고

겨울은 또 가니까...

했지.


가을 같은 가을을 홀로 가다 보니

마지막 겨울도 있고

마지막 초록도 있어

마중 나와 낙엽으로 사라지는

노부부처럼.


배웅하려 손을 모아

아침 기도를 내게 올린다.

이별이구나

라고 당당히

울어준다.

==================

(사진-김틈 : 2024년 10월 일산 고봉로에서 찍은 노을과 구름)


변덕이고 변심이다.

봄에 초록들을 곱게 쓰다듬으며

고맙다고 이렇게

겨울을 견디고 와주어 정말 반갑다고 창가에 설 때마다 인사를 건네다가... 연둣빛이 진초록이 되고 초록과 잎이 흔해지면 무심해지다, 미워도 한다.

가을에 낙엽 지고 단풍 들면 문득, 우리가 참 그리워하고 반가워했지... 하곤 미안해한다.


연둣빛 어린 날과 초록빛으로 커가던 날들 한 여름처럼 짝짓고 열매 맺고 하던 날들이 가고 초가을 같은 시간에 서니 문득, 혼자가 아니었고... 처음이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된다. 내 이전의 초록과 가을이 있었고. 나는 그 안에 있었다.


저 겨울 안에 봄이며 여름이며 미움이며 그리움이 다 들어있었다.

하나씩 꺼내보던 봄과 반가움과 낙엽과 이별이 영원할 줄 알았는데... 그 무한할 것 같은 계절도 하얗게 수명을 다한다.


뭐 낙엽하나 지는데...라고 무심하면

마음 없이 이별을 겪는다.


아침마다

가을 아침마다

당당히 눈앞이 붉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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