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딩거와 고양이와 나의 중첩
<슈뢰딩거>
사실. 사실이라는 말도 사실 어쨌든 사실.
아니 다시. 지금 이 순간의 활자가 눈을 통해
망막과 시신경과 전두엽을 돌아오는 동안의 사실.
지구는
상자입니다.
우리가 관찰하면
둥근 구가되지만
사실은 그 구도... 여기서 사실은 우리가 관찰할 때의 그 시간에서의 사실은. 구도 상잡니다.
다락에 숨겨둔 상자에서 모든 게 시작됩니다.
그 상자에 들어간 고양이의 생사를
궁금해한 게 문제였어요.
고양이가 죽든 말든 왜 우린 고양이의 안부를
묻게 되었을까...
그때부터 모든 사실.. 지금 우리가 시신경으로 이 이야기와 상자인 지구와 구의 착각과 고양이의
생사를 말하는 순간의 사실에서의 사실
사실 이 상자 안의 지구인이라 그르렁 거리는 당신과 나 우리 모두가
사실은 고양이라는 걸
모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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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첩. 양자(퀀텀)는 물리학의 울타리 안에만 있는
건 아니다. 나이면서 당신인 것들은 이를테면 폭삭 늙어버린 아버지와 나 사이에도 존재한다.
내가 무언가를 생각하는 것과 생각하지 않는 것을 두고도 양자를 말할 수 있다. 마치... 이 이른 토요일 아침에 고양이가 깬 커피 서버를 보면서 깨진 저 유리그릇이 이제는 유리그릇인지 아닌지를 생각하는 것처럼.
떠올리는 것과 망각하는 것을 서로 대치되는 반대의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 아주 오래전 가슴을 얼렸던 슬픈 이별과 그 이별 전의 벅찬 만남도 기억의 한 점으로 수렴된다. 평행한 철길처럼 사실은 닿을 수 없지만 소실점에서 하나가 되는... 오로지 내 시선의 착각일 뿐이라고 하기엔... 우리의 시간과 공간 그걸 바라보는 나의 수명과 안구와 시신경의 한계이고 모든 것일 뿐이라는 사실.
그래서...
당신에게 이 늦은 잡시와 마음을 이제야 보냅니다.
소실점으로 전송된 이 글들은 영원히 도착하지 않을 수도 있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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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실점>
다시는 닿을 수 없고
영원히 안아줄 수 없는 우리는
철길처럼 평행하다가 저 끝 어딘가
내가 달려간 만큼
달려도 달려도
또 그만큼 멀어지는
소실점에서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있지만 없는 소실점.
그게 우리의 사랑이었고, 운명이었으며
지구라는 소실점의
모든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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