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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틈 Oct 09. 2024

도용

가진 것, 빌린 것, 훔친 것...

<도용>


아버지가 갑자기 죽자

아들은 응급실 대신

법원으로 달려갔다.

아버지 이름을 달라고 했다.

아버지가 다 못 산 삶을

그 이름으로 살겠다고 했다.

판사는

그러면 네 이름과 삶은 더 단명하는 것이냐 묻고

아들은

내 이름이 아버지의 이름 안에 있다 답했다.


임종은 왜 지키지 않느냐 묻자

죽음도 삶 안에 있다 답했다.


이름과 삶 밖엔 뭐가 있냐 묻자

그것 밖엔 없다 답했다.


이름을 바꾸고

아버지의 이름으로 달려가는 길에

아버지가 부활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의 이름과 죽음을 가진 아들은

너무 놀라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다.


아버지는 슬피 울며

이름을 되찾아 오고, 삶을 되찾아 왔다.


판사가 찾아와 아들의 이름을 가질 생각이 없냐 묻자

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이 판사를 내쫓았다.

죽은 아들의 심장을 꺼내 물끄러미 바라보며 쓰다듬다

신생아가 어머니의 자궁에서 떨어져 나올 때처럼

울었다.


동네에서는 오랜만에 너무나도 오랜만에

아이가 태어났다며

잔치를 열었고

죽은 아들이 살아온 거라며

아버지의 방에 몰려갔다.


그곳엔

낡은 의자가 막 숨을 거둔 채

임종을 맞이했다.


=================


(사진-김틈 : 평창동 김종영 미술관, 자각상(1971년, 나무)

 

  우리는 거울이나 미디어, 맑은 물, “말끔한 표면” 없이는 절대로 자신을 볼 수가 없다.

  

  우리는 기록되는 무언가 혹은 이중 반사로 무한의 공간을 비트는 미디어가 없이는 자신의 뒤통수를 맨 눈으로는 볼 수가 없다.


  종교에서 성공의 신념까지, 믿는 것과 믿지 못하는 것들이 그 어느 때보다 무섭게 “내 의사와는 무관하게 밀고 들어오는” 이 시대를 살아가면서 내 것과 내가 가지기로 한 것을 구분하는 법을 잃었다.


  100년이 안 되는 시간을 지구를 도용해 살아가는 점들일 뿐인 인간은 이제 그 고유한 이야기, 고유한 명사인 이름도 잃어가고 있다. 누군가의 누군가가 되어갈 뿐이다. 슬픈데... 누굴 위해 울어줘야 할지 모르겠다.


(사진 - 김틈 : 평창동 김종영 미술관 - 자화상(19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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