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순간을 영원한 당신처럼 들을 수 있다면.
< 0120124861004>
하얀 밤의 지면 위
삐삐 삐삐
점들이 찍히면
표정이 들린다.
음성사서함으로 연결합니다.
전화기 속 편지지에 적힌
목소리
목소리 너머의
바람소리
바람소리 너머의
공중전화 앞을 서성인 마음소리
다시듣기는 1번
삭제는 2번
0에서 9까지
우물정과 별표까지
그 어디에도
이 목소리를 영원히 남겨두고 싶으시면
눌러줘야 할 번호가 없다.
이젠 그 목소리
어느 우주를 떠다닐까?
마지막까지 지우지 못한
사서함 속의 그 목소리는
012...
영원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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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사진을 찍을 때 사진작가는 피사체의 좋은 표정, 진실된 얼굴과 미소를 얻기 위해 많은 이야기 건넨다. 손주들의 재롱도 요청한다. 그 모습에 미소를 짓지 않을 노인이 있을까... 환한 미소의 순간을 영원으로 저장하는 가족사진 속의 미소는 언제든 같은 웃음을 불러낸다.
하지만 작가가 원한 그 순간, 셔터를 누르는 순간은 소리가 삭제된다. 그렇게 찍힌 사진도 소리가 없다. 찰나의 순간에 포착한 미소는 가장 밝은데 찰나의 소리는 셔터음 뒤로 컴컴한 어둠 속에 있는 듯 적막하다. 마음속 기억이 들려주는 소리가 뇌리에 머물 뿐.
동영상이 있지 않느냐 반문할 수도 있지만 영원히 남길 순간을 포착한 사진과는 다르다. 길고 긴 설명문으로 어머니를 설명하는 것과, 단 한 줄의 시로 어머니의 낡은 신발을 표현하는 것의 차이와도 같겠다.
사진은 그래서 영원이라는 기억과 회상으로 들어갈 순간이라는 열쇠를 남기는 것과 같다. 그런데 그런 의미의 소리를 남길 순 없을까? 인간의 능력 중에서 가장 변화무쌍하지만 가장 오래까지 젊음을 유지하는 목소리를 사진처럼 남겨주는 목소리 사진관을 상상해 본다.
디지털 액자나 아이폰의 ‘라이브 포토’ 기능에도 소리를 저장하는 기능이 있지만. 사진을 찍히는 순간이 아니라 마음이 가장 오래 기억하는 가장 아름다운 웃음소리 하나를 서로 남겨주면 어떨까?
사진 속 사랑하는 이의 얼굴을 만지면 가장 따뜻한 웃음소리가 잘 녹음된 웃음소리가 들리면 좋겠다.
때론 그게 다시는 못 볼 그리운 할아버지, 할머니의 영정사진 속의 얼굴이어도 사진을 쓰다듬으면...
“괜찮다... 우리 똥강아지... 오냐~... 에구구구”
“하하하~! , 큭큭, 히히, 깔깔....”
마음의 길을 잃지 않게 카메라 플래시보다 밝게 빛나는 소리가 남아있도록
생각보다 사진은 동영상은 남기지만 좋은 목소리를, 웃음소리를 일부러 남기는 경우는 없다. 아이들의 어릴 적 목소리와 노랫소리, 몰래 녹음한 혼잣말과 흥얼거리는 소리를 핸드폰 음성저장 앱에 보물처럼 간직하는 나는 늘 그 소리로 길을 찾는다.
이제 일부러 사진관에 앉아 사진을 찍듯이, 좋은 장소에서 기념사진을 찍듯이, 신부신랑의 웨딩사진을 찍듯이 소리를 남기자, 마음속 액자에 가장 빛나고 그립고 좋은 모습의 목소리, 웃음소리를 남겨두고
가끔 마음의 길이 희미하고 방향을 모를 것 같을 때마다 그 소리를 꺼내어 밝히자.
누군가 나에게 그럼 당신은 무엇을 남길 거냐고 묻는다면... 평범한 날의 저녁에 한 잔의 술과 함께 늘 기타를 치는 그 목소리로, 늘 부르던 노래 한곡을 남겨두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