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의 불화통
<불화>
몇 주 동안 머릿속을 떠다니는 단어 중에 하나는
'불화'
어릴 적부터 지금까지 '불화'를 겪는다.
마음이 불편한 건 그 '불화'에서 나의 위치를 설득하지 못한 탓
불화할 것인가 말 것 인가도 정하지 않은 탓.
나는 불화했고, 불화한다. 불화할 것이고.
어릴 적
아버지와의 불화는
나 다운 모습으로 독립하기 위한 것.
커 가며 겪은
세상 모든 힘과의 불화는
그 힘으로부터 독립적이기 위한 것.
감히 불화하려는 겁 없는 것들에게
아버지의 비판이나
세상 모든 힘의 비판은
필연적인 것.
그 비판을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성장하는 것.
성장하지 못한다면 독립할 수 없는 것.
성장과 독립을 위한 기본 태도는 '불화'
그 뒤에 찾아오는 평화로운 '유화'에서
제대로 된 이해와 긍정이 찾아온다.
미워하던 아버지의 독단이 이해가 되고
이해는 되지만 다른 대안으로 살아가게 되고
멸망을 기원하던 권력의 복잡함을 읽게 되고
대안을 찾기 위해 양시론과 양비론의 위험한 종횡단으로
대안의 몽타주를 그려보기도 한다.
불화의 끝에서 별처럼 빛나는 혁명가들도 있고
불화의 한가운데를 떠나지 않는 비판자들도 있고
불화가 뭔지도 모르고 불화를 인용하는 기회주의자들도 있다.
기회는 출발선일 뿐
결과는 기회가 아닌데.
그 기회의 지분으로 모든 결과를 집어삼키려는 기회주의자는
모든 언어를 인용해 자기 것으로 '불하'받는다.
가장 경계해야 할 부류.
집요하게 비판하고 근거를 찾고, 나를 향한 비판을 수용하고 수정하고 성장해 가면서 더 비판의 칼날이 벼려진
좋은 '독립자'를 동시대 근거리에서 자주 발견하고 싶다.
문득 성장통의 '불화'에서 아버지가 자주 해주시던 비판의 관용구
"안에서 새는 쪽박 밖에서도 샌다"...라는 비판에 불끈 대들며
"이 쪽박의 용도는 안에서 가득 담는 게 아니라.
밖에서 돌들을 잘 걸러지도록 새는 겁니다!"...라고 궤변하던
철없던 고등학생이 기억나네
그냥 집에서도 공부도 하고 좀 일찍 일어나란 소린데
휴일 집에선 잠 좀 잡시다를... 저렇게... 떠들었지...
변명과 궤변과 불화를 핀셋으로 다시 꺼내보고 있다.
<without fear or favor> by NYTim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