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담으려면

고요의 바다

by 김틈

달 항아리는

달을 담아야 한다.


달을 담으려면

물을 담아야 한다.


물을 담으려면

고요를 담아야 한다.


고요를 담으려면

텅 비워야 한다.


물 없는 고요한 바다를 품고

항아리 속 바다에서

억 광년의 진동으로 출렁이는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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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미루에게 달항아리를 그려달라 했다.

리움박물관 그림을 보고 10여분의 고요를 웅크리고

연필로 그려 놓았다. (물론 소정의 용돈을 지불했다.)


액자에 넣어 세워두고 낡은 스탠드로 빛을 줬다.

다이O에서 최고가(5천 원)로 달항아리를 팔길래

사 와서 나란히 비춰두니...

고요만 가득 담아두기 좋은

아들 미루의 달항아리가

훨씬 더 고요해서 좋다.


오늘은 고요가 절실하다.

저 항아리에 어릴 적 뒷마당 장독에 하듯 머리를 넣고

쑤욱 들어가면 고요의 바다 위를 헤엄치고 싶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날.

아무것도 내 것이 내가 아닌 것 같은 날들.

고요해지면

내가 들리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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