ㅊㅅ, 소리 언어의 DNA

엄마,라는 말을 이유식처럼 잘게 부수면...'ㅇㅁ'이 된다.

by 김틈


라디오 방송은 소리가 전부다. 생방송 [On Air] 사인이 켜지면 첫 발음에서부터 독특한 소리의 풍경을 만든다. 청취자 여러분~ 하고 말할 때의 첫 초성 ‘ㅊ’은 내용 없는 전파의 ‘치익!’하는 소리와 닮았고, 어머니 몸속에서 처음 듣는 심장 소리와도 닮았다. 말의 첫소리, 초성은 DNA로 연결돼 있다. 600여 년 전 캄캄한 밤 세종대왕과 집현전의 학자들은 초성들을 활자로 옮길 궁리를 하면서 그 소리의 느낌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ㅂㅂㅂㄱ’

한글의 위대함은 새삼 'ㅂㅂㅂㄱ(반박불가)'의 수준을 갖췄다. 가로로 늘려 쓰는 영어로는 첫 스펠링만 늘어둔다고 소통이 잘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ASAP(As Soon As Possible : 가능한 한 빨리) 같은 상징적 말들 외엔 한글 초성처럼 초성으로 상상하고 퀴즈를 내고 어린 '초'등 학생들이 그들 스스로의 소통의 수단을 만드는 경우가 있을까? 한글이 그런 면에서 최고라는 건 정말 'ㅇㅈ(인정)'!

(출처 : 국가유산청, 훈민정음)


‘ㅇ’, ‘ㅇㅇ’, ‘ㅎ’, ‘ㅋ’

그런데 이 초성 소통은 카카오톡과 같은 전 국민 메시지 플랫폼을 통해 더 흔해졌다. 초성과 모음과 받침을 일일이 넣기 귀찮거나, 빨리 대답해야 하는 상황에서 만들어진 초성은 생각보다 다양한 분위기와 뉘앙스를 품고 있다. 특히 응답할 때 사용되는 ‘ㅇ’ 혹은 ‘ㅇㅇ’은 그 보낼 사람과의 관계까지 상상할 수 있다. 권력관계도 녹아있을 것이다. 나보다 높은 지위 힘을 가진 혹은 어른이 보낸 카톡에 'ㅇ'을 보내거나 'ㅇㅋ(오케이)'를 보내긴 힘드니까...


가장 자주 쓰는 초성중엔 감정표현인 ‘ㅎ’이 있다. 미지근한 농담에 대한 적절한 대응으로는 초성만을 끄집어내어 답장하는 그 적절함이 좋다. 특히 그 숫자에도 미묘한 의미가 있다. 생각해 보니 ‘ㅎ’을 어떻게 발음하고 있나? 하? 흐? 허? 히? 글쎄... '흐'가 가장 가까울 것 같고, 'ㅎㅎ'는 '흐흐'에 가까울 것 같다. 그리고 'ㅎ'는 'ㅋ'의 전단계 정도로 정말 재밌거나 반응(리액션)을 좋게 한다면 'ㅎㅎ'는 충분히 'ㅋㅋ'로 바뀔 여지가 있다. 물론 'ㅋ'역시 '크'로 읽힌다. 물론 정말 재밌으면 '크크크크 크'라고도 보낸다.


‘ㅅㄹㅎ'

말도 물리학의 법칙을 받는다. 더 잘게 쪼개지고 분해되는 말소리는 침묵이 되고, 소통의 블랙홀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때론 모든 문장과 단어와 초성이 '한숨 소리'로 귀결되어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내 쉬는 한숨도 무수한 의미의 단어이거나 문장이라고 생각한다.

초성은 조금은 거리를 두고 소통할 수 있는 좋은 언어이기도 하다. 사춘기를 지나는 자녀나 이제 달콤한 고백은 어색한 중년 부부에게도 초성은 때론 모호함의 방패로 현실을 가려주는 훌륭한 소통의 방식이 된다. 퇴근길 문득 'ㅅㄹㅎ'라고 보내보자. 알면서도 '뭔 뜻?'하고 답이 오거나 아니면 'ㅎㅎ'하고 미소 같은 반응이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설마 '수리해' 라든가 '새로 해'같은 말일 리 없으니까... 넌지시 연꽃을 들어 보이는 부처의 미소처럼 때론 연하게 굳이 말을 다 꺼내어 소리로 만들지 않아도 소통할 수 있는 '초성'의 힘! 세종대왕님 정말... ㅅㄹㅎㄴㄷ(사랑합니다.)


엄마라는 말을 이유식처럼 잘게 부드럽게 부수면 ㅇ과 ㅁ이 된다.


초성은 옹알이를 시작하며 귀를 열고 세상을 듣고 배우려는 어린아이들에 게도 익숙한 언어다. 물을 말하지 못해서 '무... 므...'라고 하는 아이에게 엄마는 물? 하고 다시 언어를 되돌려주고 시원하게 목을 축여준다. 엄마라는 말을 풀고 풀어서 잘게 이유식처럼 만들어보면 'ㅇㅁ'이 남는다. 그 소리는 또 아프거나 힘들 때 나이 들어서 울먹일 때 나오는 초성들이다. 초성은 내 말소리의 처음을 들려주면서, 내 마음의 처음에 닿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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