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고, Vertigo, 버티는 봄

Vertigo : 버티는 삶의 비행착각

by 김틈

<버티고, Vertigo, 버티는 봄>


어릴 적,

늘 그렇듯 한 잔 드신 아버지는...

늘 그렇듯 ‘이 나라의 기둥이 돼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무언가 대단한 일을 하라는 뜻인 줄 알았지만. 어쩌면 내 눈에는... 그때 가족의 삶을 지탱하고 있는 기둥 같은 당신의 모습이 힘들다는 말이었던 것 같다. 자꾸만 어린 나에게 자신의 삶을 설명하고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한 건지도 모르겠다.


기둥의 음성은 침묵이다.


흔하게 우린 공간에 집중하고, 공간의 크기와 생김새에 열광하면서

그 공간을 만들고 지탱하는 '기둥'은 못 보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가 많다.

삶의 소중한 것들이 그렇게 안 보이고 안 들리는 특징을 갖고 있다.

그래서 기둥의 음성을 들어보면 그 음성은 '침묵'이라고 부를 만한다.

침묵은 버틴다는 것의 '음가'이며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큰 에너지가 집약된 소리가 '침묵'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삶을 둘러싼 곳곳의 사람들 중 큰 목소리 없이 침묵으로 일하는 분들의 역할이 그렇다. 묵묵히 일하는 것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것도 침묵의 가치와 무게.



(사진 : 2024년 봄, 김틈 집 마당에서)

버팀은 홀로 설 수 있음이고, 비로소 기둥이 되어 침묵을 품게 된다는 것.


기둥은 돌과 쇠로 지어진 건물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한 가족의 생계와 일상을 지탱하는 어머니, 아버지도 기둥이고 그 두 기둥의 삶의 희망과 행복이 외어주는 여린 자식들도 기둥이다. 제각각 높이가 다르지만 그렇게 서로의 공간을 만들어 웃음과 눈물을 울려 퍼지게 하는 것. 눈물겨운 기둥들의 삶이고

그 기둥들은 사실 서로의 시간과 공간을 지켜내려 애써 버티고 있는 것이다. 기둥의 음성이 '침묵'이라면 기둥의 모습은 '버팀'이게다. 버팀은 수평이 아닌 수직일 때 이해가 된다. 사물이나 사람이나 동물이 가만히 홀로 설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온전한 존재의 첫 시작으로 받아들인다. 태어나자마자 일어서는 소와 말이 그렇고, 처음 부모 앞에서 아장아장 서는 아가가 그렇고, 봄이면 천지에 홀로 서는 여린 싹들이 그렇다.


땅에서 흙에서 새로이 올라오는 작고 위대한 초록 기둥은 하늘을 떠받치고 땅을 딛고 있다. '생명'의 조건인 버팀이 시작되는 것. 그렇게... 생명은, 산다는 것은 버티는 것이란 말을 생각해 본다.

하지만 자연은 하늘에서 땅으로 끝없이 소멸을 속삭인다. 사람도, 동물도, 초록잎도 결국 죽어 눕는 것.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흙으로 되돌아가는 것. 그래서 버틴다는 것은 어쩌면 생명이 붙어있는 동안의 삶의 크나큰 착시, 착각과도 같다. 삶의 한 부분인 죽음을 포함해서 생명을 바라보면... Vertigo처럼 죽음을 향해 맹렬히 조종간을 당기면서도 그게 삶을 향한 것이라 강렬하게 믿듯이...


아침 바다 풍경을 보내준 지인이 말을 건넨다 창작을 위한 일상을 견뎌낸다는 그 무언가를 뭐라 표현할까 묻는다. 고민 없이 '버티고 버티는 것'이라고 답을 보낸다. 예술도, 글지음도, 돈을 버는 것도 삶이고, 삶의 기본은 수직으로 홀로 서서 버티는 것이며. 이 세계의 한 기둥이 되어 공간을 만드는 것이니까.


어쩌면 그 무수한 티도 안나는 자주 우울하기까지 한 그 버티고 버티는 일은 Vertigo처럼 희망을 상상하게 하고 기쁨을 내 것이라고 착각하게 도와줄 수도 있겠다.


기둥처럼 버티고, 버티며 하루를 보내다가 어릴 절 백열전구 아래로 돌아가...

지금은

폐허로 누운 기둥처럼,

절간의 거대한 와불처럼,

예수가 지쳐 내려놓은 십자가처럼 누운

아버지를 생각한다.

그 아버지라는 십자가를 짊어지다가

성경책을 베개 삼아 누운 어머니를 생각한다.


그들처럼

무수하게 일어섰다가.

버티었다가

다시 쓰러지고 또 일어서는 초록의

봄의 기둥들을 생각한다.


버틴다는 것.

버티고 버틴다는 것.

이 봄에.


그렇게

이 삶에.


침묵이 단단하게 채워진 방안에 시간은 바람으로 불고

기둥에게 말을 건넨다.

무거운 침묵이 부서지며 긴 한숨이 휴... 하고 나오면

눈물 몇 방울이 배웅을 떠난다.



* Vertigo : 조종사들이 겪는 비행착각은 특히 바다 위를 야간 비행할 때 많이 발생한다. 고강도 훈련을 통해서 단련되었지만 배면비행(뒤집힌 채 날아가는) 중 하늘과 바다를 착각하게 되면 계기를 믿지 못하고 하강을 상승이라 믿으며 바다에 추락하기도 한다.

(사진 : 제주공항 근처 2024년 7월, 김틈)


** 기둥 : 어떤 기둥은 벽이 그 기능을 대신한다. '내력벽'... 지탱하고 외부로부터 보호하는 일과 더불어 바깥의 풍경을 전하는 일까지 해야 한다. 어쩌면 요즘의 기둥은 아버지의 기둥과 달리 '내력벽'같은 삶인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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