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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천

얼마입니까

by 김틈

귀한 자리에 있다고 귀한 사람 아니고

험한 자리에 있다고 험한 사람 아니다

악마는 천국에도 있고

천사는 지옥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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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동 찻집 귀천에서 커피를 마시던 천상병은

뭐가 귀하고 뭐가 천하냐며

하늘을 가리키던 손가락들을

별똥별처럼 뚝뚝 잘라 던졌다.

던질 때 마다 빛나는 별들은 난로에 추락해 온기가 되었다.


추락할 때 빛이 나고 열이 나는 건

지상이 너무나도 춥기 때문

지상의 사람들이 너무나도 차갑기 때문

시인들은 몸을 잘라

사람들을 데우면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술타령이나 사랑타령을 한다.


뜨끈한 대포 한 잔 마시면

그거면 된거지 뭐

라고 한다.


그렇지 않은 세상에 대해 손가락질을 할 때 마다

별 떨어진다고 그만두라 한다.

그럴 수록 별이 숨고

지상은 추워지니

하늘로 갈 때 까지만

그놈의 성질 좀 죽여 이놈아... 한다.


내 눈물 때문에

지상은 한 방울 더 추워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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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살 무렵 적 한 택시기사 아저씨와의 3분 대화가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자신이 다니던 택시회사 사장 아들은 '푸조'를 타고 다닌다며 그 도시에 한 대 뿐이라고 했다.

'푸조'가 뭔지 모르는 가난한 가족은 푸념에 가까운 감탄사만 뱉었다.

어린 내겐 근사한 서울 말투와 음성, 힘있는 눈빛과 웃음의 택시기사가 특이해보였다.

그냥 그 순간 그 택시 기사의 입에서 나오는 외제차의 주인은 지금 그 기사일 것 같다는 느낌.


인생은 흐르거나 구르거나 제 자리를 벗어나 늘 움직인다.

좋은 자리를 찾아 애써 움직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쁜 자리를 피하려 애써 움직이는 사람들도 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를 모르거나

어디로 가야할 지를 모르거나

누군지를 생각해본 적 없는 사람일 수록

더 그렇다.


탈무드의 이야기처럼

정신과 치료를 받은 나는 더이상 쥐가 아니지만

고양이쪽에서는 그 사실을 모르고 있지 않냐 항변하는

그 마음으로


귀천을 논하고 있다.

인생 소풍을 끝나고

귀천하는 날도

특실과 우등석과 스위트룸 찾으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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