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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틈 Sep 06. 2024

동해선

모순이니까


- 동해선 -


불에서 태어난

쇠는

부드럽게

눈을 밀어내고


물에서 태어난

눈은

온몸을 던져

쇠를 껴안는다.


1월

하얀 물과

하얀 불이

멈추지 못하는


동해선


이럴 때

모든 것은

느리다


눈에서

까지


쇠에서

까지


길은 얇게

흩날려


허공에 오르고


이럴 때


시간이

느려지는 것은

축복


아이의 웃음처럼

오랜밤의 칭얼거림처럼

시간이 느리고

더딘


이 축복


맨눈으로 이글거리는 삶을 보게 해주는

물과 불의

시작과 끝의

개기일식


=========================


태어난 곳으로 삶을 이름 붙인 시대가 있었다. 아니 있다.

불에서 퇴어난 쇠는 자주 차갑다. 쉽게 뜨겁다.

너의 고향은 불이냐 물이냐

쇠는 쉽게 운다. 얇아지면 더 크게 울고 가벼워지면 더 시끄럽게 운다.


죽어갈 곳으로 삶을 이름 붙인 시대가 있다. 아니 있었다.

물에서 태어난 비와 눈은 차갑다. 고맙게 뜨거워진다.

밥을 짓고, 국을 끓일 때 마다 물의 고향을 묻는다.

물은 쉽게 웃는다. 얕아지면 더 크게 웃고 가벼워지면 눈이 되어 깔깔거린다.


평행선은 항상 가까운데 방향도 같고 운명도 같은데

손 한 번 잡아볼 수 없다.

같이 살아가는 운명이 그런 사랑들이다.

태어나는 고향과

죽어가는 고향이

그런 모양새다.


오늘도 누군가의 부고를 듣고

누군가의 결혼이야기를 듣고

누군가의 출생과

누군가의 고생과

그런 그런 평행선들을 본다.

기차가 오면 왁자지껄 나를 사달라고

통로를 오가는 이야기들


나란히 창 밖으로 달리는 바다만 옅게 웃는다.

꿀꺽 뜨거운 태양을 소주처럼 삼키고도

바닥에 남은 소주 한 방울 촤악 하고 거품치듯 내려치고

아들!

너는 너의 역에 내리렴

나는 나의 역에 내리마

하고는 또 울리고 무심하다.


울고 싶은데

울지 못하는 아이 하나

고개를 돌려 누워

선로 위에 귀를 대고 듣는다.


어느 역에서 먼저 내려 숨기고 있는

한 남자의

울음 소리를.


(사진-김틈 : 2020년 1월 11일 망상역, 이 역은 간이역이다. 예전엔 손을 흔들러 기차를 세웠다. 망상바다는 생각이 모레알로 바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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