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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틈 Sep 07. 2024

고양이

죽지도 살지도 않네...


<슈뢰딩거>


사실. 사실이라는 말도 사실 어쨌든 사실.

아니 다시. 지금 이 순간의 활자가 눈을 통해

망막과 시신경과 전두엽을 돌아오는 동안의 사실.

지구는

상자입니다.

우리가 관찰하면

둥근 구가되지만

사실은 그 구도... 여기서 사실은 우리가 관찰할 때의 그 시간에서의 사실은. 구도 상잡니다.

다락에 숨겨둔 상자에서 모든 게 시작됩니다.

그 상자에 들어간 고양이의 생사를

궁금해한 게 문제였어요.

고양이가 죽든 말든 왜 우린 고양이의 안부를

묻게 되었을까...

그때부터 모든 사실.. 지금 우리가 시신경으로 이 이야기와 상자인 지구와 구의 착각과 고양이의

생사를 말하는 순간의 사실에서의 사실

사실 이 상자 안의 지구인이라 그르렁 거리는 당신과 나 우리 모두가

사실은 고양이라는 걸

모르고 있습니다.



고양이는 어쩌면 지구인 사이에 섞인 아주 고독한

외계인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고도의 능력과 지능은 잠시 숨겨두고 아니 일부러 퇴화시키고 그저 이 별에서 저 사랑스럽고 밉고 무섭고 안쓰럽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못하고 사랑에 빠진 지구인이라는 모자란 동물.


너를 사랑해서 기꺼이 바보가 되겠다.

너를 사랑해서 일부러 네발로 걷겠다.

너를 사랑해서 어쨌든 네 곁에 살겠다.

너를, 너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말과 글을 버리고 책과 힘을 놓치고

너를 사랑한다는

내색도 없이

밤이면

몰래 네 손과 발을 핥으며

운명의 눈물을 삼키겠다.

너를 사랑할 수만 있다면


어쩌면 저 고양이는 부처인지도 모른다.

관뚜껑은 무겁고 유치하니

얇은 요를 덮고 잠시 죽음을 수행하다.

빼꼼 관 밖으로 발을 내어 놓지.

제자인 줄도 모르는 중생아... 하며.


모른다.

고양이가 고양이인건 그렇다고 해서 그런 줄 아는 것.


모른다.

고양이가 부처가 아니라는 말은 없었으므로...


매일 내게 탁발하며 발우공양하며

번뇌에 번뇌만 번뜩이는 나의 뇌를 비웃으며

간밤에 보드라운 털 죽비를 내려친 건지도.


나에게 자선을 보여다오

자비를 베풀어다오

부처여

발소리도 없이

돈오점수 하는 너의 광채.


열두 시간을 일하다 퇴근하는 전철 안에서

너를

부처라 의심하는

나는


자꾸만 내 상처와 부끄러움을 혀로 핥으며

야옹. 야옹... 야아옹...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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