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지도 살지도 않네...
<슈뢰딩거>
사실. 사실이라는 말도 사실 어쨌든 사실.
아니 다시. 지금 이 순간의 활자가 눈을 통해
망막과 시신경과 전두엽을 돌아오는 동안의 사실.
지구는
상자입니다.
우리가 관찰하면
둥근 구가되지만
사실은 그 구도... 여기서 사실은 우리가 관찰할 때의 그 시간에서의 사실은. 구도 상잡니다.
다락에 숨겨둔 상자에서 모든 게 시작됩니다.
그 상자에 들어간 고양이의 생사를
궁금해한 게 문제였어요.
고양이가 죽든 말든 왜 우린 고양이의 안부를
묻게 되었을까...
그때부터 모든 사실.. 지금 우리가 시신경으로 이 이야기와 상자인 지구와 구의 착각과 고양이의
생사를 말하는 순간의 사실에서의 사실
사실 이 상자 안의 지구인이라 그르렁 거리는 당신과 나 우리 모두가
사실은 고양이라는 걸
모르고 있습니다.
고양이는 어쩌면 지구인 사이에 섞인 아주 고독한
외계인들이 아닐까 생각했다.
고도의 능력과 지능은 잠시 숨겨두고 아니 일부러 퇴화시키고 그저 이 별에서 저 사랑스럽고 밉고 무섭고 안쓰럽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못하고 사랑에 빠진 지구인이라는 모자란 동물.
너를 사랑해서 기꺼이 바보가 되겠다.
너를 사랑해서 일부러 네발로 걷겠다.
너를 사랑해서 어쨌든 네 곁에 살겠다.
너를, 너를 너무나도 사랑해서
말과 글을 버리고 책과 힘을 놓치고
너를 사랑한다는
내색도 없이
밤이면
몰래 네 손과 발을 핥으며
운명의 눈물을 삼키겠다.
너를 사랑할 수만 있다면
어쩌면 저 고양이는 부처인지도 모른다.
관뚜껑은 무겁고 유치하니
얇은 요를 덮고 잠시 죽음을 수행하다.
빼꼼 관 밖으로 발을 내어 놓지.
제자인 줄도 모르는 중생아... 하며.
모른다.
고양이가 고양이인건 그렇다고 해서 그런 줄 아는 것.
모른다.
고양이가 부처가 아니라는 말은 없었으므로...
매일 내게 탁발하며 발우공양하며
번뇌에 번뇌만 번뜩이는 나의 뇌를 비웃으며
간밤에 보드라운 털 죽비를 내려친 건지도.
나에게 자선을 보여다오
자비를 베풀어다오
부처여
발소리도 없이
돈오점수 하는 너의 광채.
열두 시간을 일하다 퇴근하는 전철 안에서
너를
부처라 의심하는
나는
자꾸만 내 상처와 부끄러움을 혀로 핥으며
야옹. 야옹... 야아옹...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