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틈 Oct 08. 2024

모르는 사람과 탱고

등대를 습격한 대왕오징어!

‘까베세오’

 [일반적으로 고정 파트너가 없는 게 대부분이며 밀롱가에 앉아 있다가 아는 사람들끼리 추거나,   서로 모르더라도 눈빛을 주고받는 까베세오라는 인사를 나누고 즉석에서 커플이 되어 춤을 춘다. 대개 3~4곡을 한 묶음으로 추며, 그 묶음을 ‘딴다’라고 부른다.]


(사진 - 유니버설스튜디오 유튜브 화면 캡처 - 여인의 향기 중 탱고 Por Una Cabeza (포르 우나 카베사) 장면)


“치-익! 띠릿,  VIP 차량 진출. IR 상황대기... 체크포인트 원! 상황보고! “

“....”

“찬유!! 찬유!! 응답해!! 즉시 카피(Copy)!”

“자자! 거기 학생! 뒤로 더 물러서요! 위험해! 뒤로! 차에 치인다고! ”


 악!!! 나온다! 오빠~! 여기요! 여기 한번만 봐줘요~!! 오빠!!

저요!! 여기 이 카메라로 웃어줘요 오빠!!

어? 창문 열린다! 어디 어디? 저기 검은색 차! 오빠!!!~!


“찬유! 타깃 커버 하라니까. 뭐 하는 거야!! 교통경찰이냐? 

 너 이 새끼 다시 프리팀 가서 뺑이칠래?”


“아...죄송함다. 카피! 갑니다.!! 야야!! 거기 꼬맹이 물러서라고~! 차에 치여!!”


 뭐래~ 좀 비켜 줄래? 카메라 좀 그만 가리고... 아

 오늘 한 장도 못 건졌어... 씨...ㅂ“


 아이돌 행사 경호는 정확히는 경호라기보다는 도 닦는 일에 가깝다. 일부러 아이돌이 탄 차량에 부딪히는 극성팬도 있다. 팬클럽에서 자체적으로 걸러내고, 팬클럽 리더가 통제를 해도... 못 막는다. 평생 싫어하는 일만 하다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좋아하는 일 하는 사람들처럼, 사막에서 오아시스 만난 사람들처럼 이성적인 말로는 설득이 안 되는 상태. 꼭두새벽부터 나와서 기다리는 저 노력과 정성을 보면 정말 저 팬들이 사랑하는 아이돌이나 아티스트들은 살아있는 예수나 부처 같다고 생각될 정도다. 어쨌든 사고가 나면 합의를 해야 하니까.. 문제가 크다. 차와 사람의 사고기 때문에... 상대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연예인에겐 나쁜 뉴스로 둔갑하고. 나는 또 일자리를 잃는다. 


  어떻게든 목적을 달성하려는 저런 극성팬을 막지 못했다는 이유로 지난번 회사의 업체는 일방적으로 계약해지를 했다. 사유는 경호 실패. 그 덕에 나는 잘리고... 그 극성팬의 부모는 안전관리를 어겼다며. 소송도 걸어왔다. 그렇게 많은 룰과 법도 어떨 때 보면 태권도 경기장 위의 심판 규칙보다 훨씬 못한다는 생각이 든다.


 “타깃 오픈! 타깃 오픈! 찬유!! 찬유!!”

 “팀장님. 앞에 몰렸어요! 막혔어. 사고 납니다. 차에 치여요!.”


 “야.. 이 새끼 또 교통정리냐..! 네가 IR(Inner ring :근접경호)이지 OR(Out Ring :외곽경호)이야?  VIP만 신경 쓰라고 좀 제발... VIP 창문에 뭐 하나라도 던지면 X 되는 거야... 빨리 이쪽으로 튀어와! “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다. 어차피 VIP든 일반인이든 극성팬이든 겁쟁이 팀장이든... 멍멍이든 보호한다는 건 숭고하고 좋은 일이니까. 그런데... 저 욕... 저 쌍시옷 들어가는 욕은... 여기가 군대냐. 명령만 하면 따르 게.. 개... 같은 새...끼 


 “예 갑니다... 카피!.... 거기 비키라고 카메라 치워!”


 어?! 내 카메라! 이게 얼마짜린데!

 총구처럼, 대포처럼 사랑과 욕망의 대상을 향해 눈빛을 내뿜는 카메라들... 손에서 놓친 카메라를 가까스로 잡아서 되돌려주며 말한다. 아마 저 아이의 부모님 몇 달치 월급일지도 모를 카메라... 아니지 월급 따윈 걱정 안 하는 부모님일지도...


“그러니까 비싼 카메라 깨지기 전에 뒤로 가라고!! ”


 앳된 아이가 놀라서 카메라를 감싸 안는다... 보호해야 할 VIP와 VIP를 노리는 사람들 사이에서 옆으로 팔을 벌리고 걷다 보면 마치 탱고를 추는 것 같다.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탱고를 처음 본 극성팬들과 추다니... 아무튼 이 이상한 집단 탱고는 끝나가고 있다. 모두들 고함소리와 함성에 맞춰 열정적으로 탱고를 춘다. 


밀롱가(Milonga) : 탱고를 즐기기 위해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 및 시간


 늦은 저녁 퇴근길 파도처럼 회식장소로 집으로 흐르던 사람들조차 사라지고 잔잔한 밤바다 같은 골목길 등대 대신 편의점 불빛이 거리를 밝힌다. 그 불빛 앞에 하나 둘 모여있는 배달기사들, 어둠과 시간을 견디는 사람들 누군가 갑자기 손을 내밀고 탱고를 추자고 하길 기다리는 것 같다. 


<당신을 향한 열정, 태양 같은 마테차도 마시고! 아르헨티나 댄스 페스티벌에도 도전하세요! >


못 보던 이벤트? 오늘도 눈을 마주치지 않는 그녀가 있다. 맑고 투명한 공기 같은 목소리... 내 얼굴과 눈을 안 보니... 나는 편하게 그녀를 볼 수 있다. 조금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그냥 보는 것뿐이니까...


“어서 오세요~ CS24입니다.”

“담배!”

“어떤 담배요?”

“애가 쌔~!!! 딸꾹, 애가 쌘 담배~! 아가씨....”

“...”

제발...무대응, 시비걸리지 말아요...음료코너 쪽으로 갔다가 카운터 가까운 쪽에서 취객을 노려봐준다. 뭐 저 아르바이트생을 지켜야 할 의무는 없지만... 그래도 경호 본능이랄까....

 “에쎄. 5,500원입니다.”


  무대응, CCTV 확인... 응급버튼 위치 확인... 침착하게 무표정, 무대응... 잘하고 있네? 그런 그녀를 보고 있으면 이상할 만큼 안정감을 느낀다. 눈을 마주치지 않고 상대를 대하는 무림 고수 같은 느낌.


  삑! 1+1 이벤트 상품입니다.

  “2,300원입니다.” 

  “페이로 할게요”

  “네 결제되셨습니다... 손님.. 이거 가져가셔야죠!”

  “두 개는 좀 많아서요... 알아서 해주세요”

  “네?... 저기요!!....”


2도 아니고 1+1 결코 합쳐질 수 없는, 둘 중 하나는 덤 같거나 둘 다 덤 같은 지금 내 상황에선 누군가의 삶에도 1로 더해질 수 없고 그냥 덤 같은 +1의 존재 같다. 우연히 저 에너지 음료를 마시는 걸 본 덕분에 그래도 느끼한 작업이 아니라. 쿨한... 아니 쿨한 게 아니라 이상할까?... 모르겠다. 


새벽 4시, 대왕오징어의 공격


  진상은 얼굴에 진상이라고 쓰여 있다. 관상은 과학? 맞아. 과학이야... 처음엔 모르지만 한 번... 두 번... 미친 진상을 만나면 허우대 멀쩡하고, 멀쑥하게 차려입은 놈들도 다 진상이야... 특히 1+1 사서 하나 남겨놓고 가는 저런 부류가... 언젠가 전화번호 알아내려 별 수작을 다 걸지 아니면 퇴근길에 따라와서는 심장이 떨어질 것처럼 놀라게 하던가. 조금이라도 수상하면 확 신고해 버려야지...


“네 고객님 CS24....”

“선우 씨... 힘들죠~... 어? 선우 씨 근무복 이름표에 이름이 바뀌었네? 예은...? 오~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배고플 텐데 뭐 좀 먹었어요? “


진상.

 “...”

 “에이... 지난번 고객센터에  불친절 신고 넣어서 사장님한테 혼났어요  왜 그래... 그거 장난인데... 그거 때문에 나한테 삐쳤구나... 미안해~“


 미친놈은 정말 놀랄 만큼 미친놈처럼 생기지 않았다. 아니 그래서 더 미친놈인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하시죠. 신고하겠습니다...”

 “신고? 뭐로 신고할 거예요? 손님이 점원한테 친절했다고? 웃었다고?   아니면... 고객센터에 불만 넣었다고?.... 아... 알겠다. 이름 불렀다고? 이름표 네가 달고 있잖아...”


  새벽 네 시, 밤새 도박을 했는지 게임을 했는지 충혈된 눈으로 술 한 방울 안 마신 상태로 와서는 전 여자 친구한테 폭군짓하는 놈처럼 온갖 말들을 걸어온다. 신고? 이미 해봤지만... 소용없다. 


 직접적인 위협이나 지속적인 스토킹인지 애매하다며 경찰도 법을 어기는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란다. 정 불안하면 그 시간에 다른 남자 아르바이트생을 배치하라는 하나마나 한 이야길 한다.  저 미친놈을 미리 잡아가두거나 내 근처에 못 오게 할 방법은 없다. 


  새벽 네 시 불나방처럼 편의점으로 몰려드는 사람들, 캄캄한 바다에 환하게 밝힌 집어등 같은 편의점.


 “야... 알바! 사람 무시하니? 내가 만만하냐?”


“저기요 고객님 아니 아저씨 필요한 물건 사셨으면 계산하시고 가시죠. 여자 혼자 새벽에 근무하니까 만만해 보이세요? 반복되면 기록된 CCTV랑 녹음으로 신고할 수도 있으니까... 그만 말 거세요."


“와... 불친절... 뭐 너네 본사에 신고해 봤자 넌 눈하나 깜짝 않는 것 같고... 경찰? 신고해 봐~"

"네"

 강약약강의 비겁한 자들은 조금만 날 선 눈빛과 표현에도 제압된다. 약해 보이면 물어뜯는 것들. 그러느라 눈을 맞추질 때마다 수명이 닳는 느낌... 길고 캄캄한 밤 같은 바다에 징그럽고 썩은 대왕 오징어가 몰려와선

빨판을 붙이고 떨어지지 않는다. 아무리 작살로 밀어내고 몽둥이로 내려쳐도 꿈쩍 않고... 길고 긴 밤이 끝나지 않고 불빛을 보고 달려드는 저 진상들도 끝이 없다... 하.. 집에 가고 싶어...


 "오늘도 경호팀이 제일 고생 많았네요!"

 "아이고 실장님, 우리야 뭐 특전사 정신으로 안되면 되게 하라!... 니까요! 고생들 하셨습니다."

  자자! 근접팀 찬유 고생했어! 오늘은 뭐 댄스팀 끝나고 시청에서 홍보영상 녹화까지 하느라 늦었네... 그래도 뭐 극성팬 없어서 좀 수월했지? “

“수월은 무슨... 저 벨리댄스팀 댄서분 스토커가 한 둘인 줄 아세요? 카메라로 이상한 각도로 특정 부위만 찍는 게... 아 지긋지긋해... “

"그래도 야 인마! 이 특전사 정신으로 어? 사고 없이 잘 끝났으니까 얼른 들어가. 행사경호가 다 그렇지 뭐..."


 지역 문화재 기념행사에 도대체 저렇게 노출이 심한 벨리댄스는 왜 부르는 거지?

벨리댄스는 무슨 중동 춤 같은데. 전통 문화제 전야 공연에 노출 심한 먼 중동의 춤이라니... 하지만 그런 공연마다 꼭 댄스팀 여성의 신체를 촬영하려는 놈들이 진을 치고 있다. 불법이고, 현장에서 카메라 움직임이 이상하면 바로 잡아야 하지만... 찍은 영상이나 사진을 보여달라고 할 근거가 없다. 툭하면... 경찰이야? 영장 내놔...

그냥 경찰 시험 준비나 계속할걸... 

 “팀장님! 차비는요?”

 "안되면 되게 하라! 차비는 없고... 너네 동네 앞까지 태워다 줄게... 산새마을 맞지?"

 "부자 되세요 팀장님 부자 안되면 되게 하세요..."


 오늘도 목적지는 편의점 등대! 우울한 마음에 비추는 간식 등대! 그런데... 그녀 앞에 눈을 부릅뜨고 서 있는 남자 주취도 아니고 노숙자도 아니고... 뭐지? 저 기분 나쁜 웃음은... 그녀 표정은 굳을 대로 굳어있다!!

어떻게 하지? 일단 들어가서 무슨 상황인지 보자...


“어서.. 오세요.. 고객님....”


떨리는 목소리!!! 도와달라는 신호다!!


이전 01화 프롤로그 <등대지기 청개구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