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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틈 Oct 10. 2024

반대편의 첫사랑

7월의 추위! 첫사랑.. 첫 경험.. 첫 죽음

 

 지구 반대편에 있다더니.

 삶의 반대편에 있는 거니?

예찬... 넌 어디에 있을까?

====

 Dear. 선우


 그리운 선우야. 잘 지내고 있지? 이렇게 메일을 보내려고 하니문득 쑥스럽기도 하고 그런데 보고 싶은 마음도 크네...

 아버지 선교사업 때문에 갑자기 지구반대편 아르헨티나에 와서 나도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어.

 여긴 대부분 교회가 아니라 성당엘 다녀 얼마 전에 호기심에 몰래 성당에 갔다가 아버지한테 엄청나게 혼났다.

 아무튼 성당에 들어가니 분위기가 달라 조용하더라고

 가만히 앉아서 성당 앞에 성모상을 보는데 네가 성당에 다닌다는 게 기억나더라고... 문득 성모상 얼굴이 너랑 닮았다는 생각도 들더라

 (그렇게 말하면 불경스러운 건가?ㅎㅎ)

 여하튼 너와 나 세상의 모든 처음은 둘이서 해보자던 약속 지금 이 지구 반대편에 온 약속은 아직 미완성이네

 네가 여길 와야 그다음엔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잘 만나면 지구 반대편이 아니라 우주라도 갈 수 있을 것 같아.  사랑 빼곤, 진심 어린 사랑 빼곤 모든 처음이 너여서 늘 행복했다.

 아 여긴 이제 슬슬 쌀쌀해져. 계절이 정 반대인 건 알지? 정말 제대로 지구 반대편인 것 같아.


 꼭 여기 아르헨티나에 활기차고 조금 세련되고 조금 정신없기도 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네가 오길 기다리고 있을게.


 2017년 추워지는 7월.

 너와 나의 모든 처음 예찬이가.


======


 아직 폰 메일함을 열면 지우지 못한 편지가

 광고들 사이에 떠 있다.


 윤예찬.

 눈이 맑고 호기심이 넘치고 착한 녀석 남사친.

 남사친이라곤 하지만. 온통 못 믿을 무서운 놈들의 세상에서 유일하게 내가 전적으로 믿는 녀석

연애를 너무 해보고 싶다고 투덜거렸더니

일단 자기랑 처음만 연습하고 자신감이 생기면 다른 녀석과 사귀라고 그놈이 돌변하면 자기가 지켜준다던...

살짝 미친놈 같지만 멋진 놈.


“말이 되냐?”


“세상에 말이 되는 게 어딨 냐?”


“말이 되네... 키키키..”


“아 유치해~ 그렇게 웃지 말라고 어처구니없네”


“너야 말로 어설픈 유행어 쫌 쓰지 마... 키키”


“하하~~! 요거!! 요 이쁜데 이상하게 내 거 하고픈 마음은 안 생기는... 새끼...”


“야... 나 같은 미모의 여고생에게 새끼? 이 새끼가... “


“그럼 네가 새끼지. 자기냐? 우웩”


“우웩... 크크“


닮았다.

징그러운데... 자꾸 볼 수록 귀엽다.

아니... 좋다.


“근데.. 너 정말 아빠 따라서 가야 해? 대학도 가야 하고... 뭐 군대도 가야 하고... 갑자기 아르헨티나 사람이 될 순 없잖아? 말도.. 거긴 무슨 말 쓰냐? 암튼... “


“가족 전부가 간데. 아버지가 목사고 선교사이신데 어떻게 하겠어... 온통 가톨릭을 믿는 나라인데... 그래서 더 가능성이 크다나... 다행인 건 좀 선진국에 속하는 나라라서... 그리 위험하진 않데...”


“언제 가는데?”


“몰라. 빠르면... 겨울에 갈 거래...”


처음 선물을 주고받을 때도

처음 단 둘이 영화를 볼 때도

일부러 우리는 두 번째 이후 다음을 위한 연습이라며

우린 정말 사랑하는 사이는 아니지만

정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 바보 같은 실수는 하지 말자며 이게 진정한 우정이라며...

첫 키스도.. 했는데

신기하게도 연인이라는 느낌은 더더욱 안 들고

오히려 이혼 후 재결합한 가족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예찬이가 다른 반 여자애들하고 어깨동무를 하고

단 둘이 영화를 보러 간다고 할 때에도 전혀 화가 나거나 신경 쓰이지도 않았다. 어차피 처음은 나였으니까... 나일 거니까...라는 이상한 안도감도 들었다.


마치 안전벨트 같은, 구명조끼 같은 느낌. 아무리 거친 바다라도 아무리 무서운 놀이기구라도 일단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은 안전장치... 내 첫 남사친... 예찬이.


“이제 곧 고3인데... 그럼 대학은 안 가는 거? 아님 아르헨티나 대학에 가나? “


“글세... 뭐 꼭.. 고3에 무조건 대학가라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거기서도 가고 싶음 가겠지... “


“법이야... 남들 다 할 때 해라... 이게 대한민국 고등학생 국룰! 국법 아니냐? “”


“대부분 그렇긴 하지... 그런데...”


“그런데 뭐?”


“나... 도.... 대학 안 갈까 싶어. 특히 한국에선 더 안 가려고 학교 점퍼 입고 우울한 표정으로 다니는 형, 누나들 보면... 저렇게 고등학교 4학년 6학년처럼 20대를 보내고 싶진 않았거든.. “


“그럼... 어떤 20대를 보내시고 싶으신데요?


“자유...”


“자유?”


“응. 자유... 시선, 기대, 법칙, 규칙... 다 적응하라고만 하잖아... 그런 거 없이

 고삐도 안장도 없이 그냥 원래 들판을 뛰는 게 일인 야생마처럼... “


“오... 뭔 말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멋져 보이는 소리긴 하다.”


“스무 살이랑 안 어울리는 일만 하는 스무 살 같아. 대학에 가면... 뭐 내가 다 아는 것도 아니지만... 일단 하라는 공부만 하면. 하라는 일만 하고 살아야 할 것 같잖아...”


“학생이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라고들 하지 늘”


“그래서... 난 글을 쓸 거야. 여행을 하고 글을 쓰는 작가... 대학 졸업장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


“그래도 전문적으로 글 쓰고... 그러려면.. 뭐 국문과나 문창과 들어가서 좀 배워야 하는 거 아니냐?”


“그러니까 네가 늘 나의 보살핌아래 있는 거야 이 불쌍한 새끼야.”


“나 니 새끼 아니라고 이 새끼야”


“흐흐 요놈 새끼 귀연 놈 새끼... 세상이 흰 종이 같아. 줄도 없고 마침표를 어디 찍어야 할지도 모를 하얀 들판... 뭘 배우긴 배우냐... 그냥 달리면 길이 되는 거지...”


“뭔 말인지 어렵지만 멋져 보이긴 한다. 암튼 응원한다!... 근데 씨... 대학도 너랑 처음 가야 내가 적응이 되는데....”


“사실... 고백할 게 있어... 나... 너랑 세상에서 처음 아닌 것들도 많아...”


“그럴 줄 알았다. 이 배신자 새끼... 희진이지? 첫 키스... 딱 그래 보이 더라 둘이.. 스스럼없이 팔짱도 끼고... 너 그럼 내가 그 프렌치 키스 해보고 싶다고 할 때도... 이미 유경험자였던 거?”


“아? 아.. 아냐!!! 그건 프렌치! 그건 진심 세상 처음이었어!!!”


“그럼 됐어. 뭐.. 나만 유일한 처음이라고 생각하면 된 거지...”


“첫사랑...인 거야?”


“뭐래냐~. 너  내 첫사랑 아냐. 일종의 첫 예행연습사랑유사품.. 같은 거지”


“풉. 우리 되게 웃긴다.”


“그래 웃겨”


“근데 고백할 처음... 뭐 그거 뭔데?"


"비밀... "


"야...!"


그리고 그 해 겨울 예찬은 한 여름으로,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로 떠났다. 떠나기 일주일 전 우린 처음으로 어른의 사랑을 흉내 내봤다. 어색했고. 아무런 감흥도 없었고... 이상하게 슬픈 마음이 들었다.

 세상 모든 처음을 함께 해준다는 그 녀석 덕분에 나는 세상 처음으로 아픈 이별도... 할 수 있었다.



첫사랑의 반대는 끝사랑이 아니라 첫 이별...이었을까?


"어이! 야!!! 아르바이트생! 이 새끼가 혼이 나갔나... 내 눈 똑바로 보라고!!! 어이!"


"새끼라고 하지 말라고 이 새끼야!!”


새끼라는 말은 너 따위 진상 고객이 쓸 말이 아니야! 그런 무책임하고 더러운 주둥이에서 나에게로 튀어나올

말이 아니라고...


“뭐? 새끼? 이 미친년이 돌았네!!! 너 내가 본사에 신고해서 당장 잘라버릴 테니까 각오해!!! “


“잘라? 어디서 지질한 새끼가 여기 와서 갑질 행패야! 당장 신고하기 전에 나가!”


“야! 점장 나오라고 해!!!! 씨바 당장 전화해!!!!”


땡그랑 땡땡...

다행이다! 또 다른 손님... 어?.... 그 똘아이 정장이네 젠장...!


“어서.. 오세요.. 고객님....”


“저기요!”


“네?”


“아뇨 알바분 말고... 그 계산대 앞에 계신 남성분”


“나? 넌 또 뭔데? 경찰이야?”


“경찰은 아닌데 사람들은 좀 지켜주는 사람이에요... 암튼 밖에서 보니까 이 밤에 혼자 계신 여성 알바분께 위협적으로 욕설도 하시던데... 그럼 안 돼요."


“되고 안되고 네가 뭔데... 야! 살 꺼나 사서 계산 찍고 꺼져...”


 정장 재킷을 벗으면 가죽으로 된 가스총 가죽 홀스터가 나온다.  때마침 행사 끝나고 급히 오느라 차고 온 가스총도 있다. 경호팀에겐 실제 권총 같은 모습의 총기를 지급해 준다. 그래야 위협의 효과가 있다. 꺼내는 경우는 없지만 열린 재킷 사이로 홀스터와 권총만 보여도 가끔은 기선제압. 의도적 노출.


“자. 두 번 기회 안 드립니다.  살 거 없음 나가시고...  살 거 샀음 나가세요”


“뭐야... 어? 권총차고 민간인한테 어? 너 새끼야  소속이 어디야... 어? 뭐야.. 이거..!

 너 뭐.. 어 국정원이야?  민간인한테 어 총... 막... 어?”


 역시 기선제압.


 겁이 많은 동물들이 큰 소리로 짖는다.  자신보다 약한 동물들에겐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조금만 강한 자가 나타나면  비굴하게 꼬리를 말고 눈을 깔고 엎드린다.


“아 놔 재수가 없으려니까... 별 쌍으로  암튼 야! 너 알바!! CCTV지우마! 내가 어? 집에 가서 인터넷으로 신고를... “


“네~ CCTV 안 지울게요! 고객님 진상도 다 찍혀있거든요?”


 저렇게 똑 부러지게 말하지만 손이 떨리고 있는 그녀... 시선은 여전히 아래를 향한다. 


“이봐요 아저씨! 빨리 가세요! 예?”


 문을 부서져라 던지듯 닫고 나가는 저 진상


“많이 놀라셨죠...? 저런 사람들 한 번에 포기하고 그만두지 않아요... 저거 다 계획적이고 사람 봐가면서 하는 짓거리예요. 이번에 점장님이랑 이야기해서 시간을 바꾸시던가...(아... 그럼 나는 이제 못 만나네...)  주변에 많이 알리세요... 집에 가실 땐 같은 길로 가지 마시고  계속 동선을 바꾸면서 주변을 잘 살피셔야 해요. 전화기는 흔들면 119로 신고되도록 햅틱설정 해 두시고요... “


“아... 네.. 예...? 왜 119를...”


“119가 나아요. 말 없어도 일단 구급차가 정확한  위치를 파악해서 출동해요.

 낌새가 이상하면 경찰과도 공조하고요... 112는 구체적인 신고가 아니면  출동이 어려울 수도 있어요 

 입이 막혀서 말씀을 하시기 힘든 상황이 이거나... 아... 죄송해요... 암튼 겁주려는 의도는 아니었는데...”


“아.. 예... 아무튼. 감사합니다.  아. 오늘 그 1+1 에너지 음료는...  재고가 다 떨어져서 없어요...”


 “아... 네... 그럼 맥주 한 캔만 사죠 뭐...”


 “네 개 사시면.. 할인 행사예요...”


 “네... 어? 맥주도 드세요?”


“네??”


 “아.. 아니에요!!! 그냥 이거 하나만 계산해 주세요!”


손에 쥔 차가운 맥주를 뜨거워진 얼굴에 가져간다. 바보, 머저리 미친놈... 놀라는 그녀의 표정, 처음으로 정면으로 날 보는 얼굴과 눈빛과 바보 같은 내 말과 마음이 들킨 순간이 무한 반복된다. 차가운 맥주캔 표면이 자꾸만 그녀의 눈빛 같다. 시원한 것 같기도 하고... 자꾸만 웃음이 나온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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