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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틈 Oct 08. 2024

프롤로그 <등대지기 청개구리>

내가 바라는 건 다 반대로만 되는 이유? 세상 반대편의 너 때문.

  혹시 말이야....

  지금 살고 있는 인생의 이 시간,

  그 반대편에선 우리 제대로 사랑할 수 있을까?



 “뭐든... 내가 원하는 건... 항상 그 반대로만 되네... 진짜 돌겠다...”


  02-2100-8***

<서류전형 결과 안내 >


  귀하의 뛰어난 역량과 실력에도 불구하고

  아쉽게 이번엔 함께 하지 못한 점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


 “또... 안된 거?  언냐 힘내라~

  인생은 실패의 겨울에서 잠시 만나는 36.5도의 온기라잖아...

  뭐 원래 춥잖아 뭐~! 이렇게 생각해~근데 참 신기해...

  하고 많은 직장 놔두고 왠 '항로표지관리원' 이야? 여자가...”


 "어이 고딩, 고등인지 아닌지... 암튼 시비 털지 말고 학원 끝났으면 집에 가봐라~

  언제 봤다고 언냐 언냐 거리면서 신상명세를 읊냐..."


  저 고딩 녀석 머리통 어디 폴더에 저런 말이 들어있는 건지...

  애 늙은이... 보자마자 언냐~ 하고 붙임 성은 좋은데

  정체는 알 수 없는... 그나저나 아 이런 개나리~! 쌍나팔... 하....

  욕이 나오지만. 참는다.


 “아 뭐든 반대로 나온다며! 그럼 탈락을 희망하는 곳에 내봐!! 붙을지 알아?”

 “뭔...? 하긴 원하는 거는 딱 정반대로 이뤄지니... 그래 너한테 환불을 해버리면 돈이 나한테 오나?”

 “헐... 언냐님... 저는 이만 사라지겠습니다. ”


 5분 친구.

 수상한 고딩... 아니 고등학생인지 아닌지도 몰라...

 서로 이름도 안 묻는다. 무언의 약속.

 편의점 근무 중 계산대 앞에서

 하루에 딱 5분만 이야길 나누는 친구


 분명 나보다 어려 보이는 것 말고는

 고등학생이나 멜법한 백팩을 배고

 하는 말은 어른인 척한다.  

 무엇보다... 늘 바쁘다. 5분만 떠들고 사라지는...


 “아 언냐! 니 인생이... 찐 청개구리인 건 인정!”

 "야... 안 가냐?"


  하긴 공부든, 일이든, 사랑이든... 난 인간이 아니라 청개구리지...

  하필 개구리... 게다가 멸종 위기... 우울하지만 딱 어울리네.

 

 “이럴 바엔 그냥 지구 반대편에 가서 사는 게 낫겠다. 지구 반대편이... 어디지?”

 “지구 반대편? 거긴 왜? 아마... 대충 남미 어디 아닐까?”

 “어! 점장님~ 오셨어요?”

 “무섭게 근무하면서 혼잣말하냐... 손님들 무서워서 도망간다. 나중에 등대지기 아니 뭐 항로표지관리원? 그거 되면 실컷 혼잣말해...”


  항로표지관리원... 사실 '등대지기'로 알고 있는 직업

  사람을 만날 필요도 없고, 캄캄한 밤에 홀로 빛나면 되는 직업

  의외로 정년이 보장된 공무원... 태양을 싫어하고 사람을 싫어하는 내게 딱 맞는 직업

  그 직업을 얻기 위해 최소한의 연습으로 편의점 심야 전담 아르바이트를 한다.

  가끔 진상들을 만나는 특훈이 있지만... 버틸만하지... 말만 섞지 않으면...


 “그 남미 아르헨티나에서는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이랑 탱고를 춘다나?... 선우 너한텐 최악 중에 최악이겠다...”

 “모르는 사람이랑요? 춤을?”


 부에노스 아이레스...

 아르헨티나의 수도, 인구 1,300만 명

 대략 서울의 땅을 파고 들어가 지구 반대편으로 나오면 만나는

 남미에서 세 번째로 큰 인구 밀집지역.

 남미에서 만나는 세련된 유럽.

 가끔은 혼란스럽고 가난한 남미.

 악다구니하며 죽이지 못해 살아가는 여기 서울의 정 반대... 모든 게...


 도시 이름 Buenos Aires는

 ‘착한 공기’ 혹은 ‘순풍’이라는 뜻.

 멀리 스페인에서 지구의 남쪽까지

 배를 타고 처음 온 스페인 사람의 바람이 담긴 이름일까?


 낯선 자의 방문과 침략에  속절없이 전염병을 앓다가 죽은 원주민에겐

 ‘나쁜 공기’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겠다.


 “점장님... 저 오늘 근무도 해뜨기 전에 좀 나가볼게요..."

 "야 드라큘라도 아니고.. 아침 7시 교대까진 좀 채워주라... 나 너 때문에 새벽잠 못 자서

  피부가 뒤집어졌어..."

 "해 뜨고 사람 다니면 힘들어요. 아님 자르시던가요..."

 "저... 성질... 알았어..."


 청개구리...

 공부 좀 해라 그러면 놀고

 아침 일찍 일어나라 하면 아침 일찍 잠들어버리고

 처음엔 그러지 않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가장 소중하고 아픈 시간이 수시로 방문을 두드리고

 가슴을 두드리는 것 같아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하지만 청개구리...

 물과 공기가 맑아야 살 수 있는 여린 살이

 여리고 부드러워서 아무도 해칠 수 없을 것 같은 존재

 눈에도 안 보이는 날벌레나 먹고살까?

 손가락으로 살짝 눌러도 죽을 수 있고

 조금만 건조해도 죽을 수 있고

 동물인데... 곤충 한데도 먹혀 죽을 수 있고

 참... 까다롭게 약해서 죽기 쉬운...


 정말. 나랑 닮았네. 내 마음이랑 닮았네...

 예찬이가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고 텅 빈 서울에서는 나는 정말

 청개구리.


 맘껏...

 울지도 못하는...


 캄캄한 밤이 되어야

 환한 낮에 있을 네가 보인다.

 환한 낮에 있는 너는

 캄캄한 밤에 내가 비추는 등대 불빛이 보이지 않겠지?

 들리지 않을 등대 빛으로 눈물만 흘리는 청개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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