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가장 힘들 때
그는 취하면 늘 손을 잡아 달라 했었다.
커다랗고 하얀, 누구는 그의 손이 고생 한 번 안해본 예쁜 손이라고 했지만 그와는 반대의 삶을 산 사람, 그래도 하얀 손을 가지고 있는 사람. 그의 마음결이 그랬다. 착했고 바른 사람이었다.
취하면 내게 손을 잡아달라 했지만 그는 평소 내 손은 잡아주지 않았다 따듯한 포옹이나 손 잡기 등을 기대해서는 안되는 사람. 참 이상한 사람. 가슴에 큰 구멍이 있지만 무엇으로도 채우려 하지 않던 사람, 인상 좋다 사람 좋아보인다 소리를 늘 듣고 내게 자랑처럼 얘기하지만 정작 스스로를 너무나도 혐오하던 사람.
술로 자신을 괴롭히고 그래야만 그나마 숨을 쉬는 사람이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그는 건강했고 열심히 부지런히 누구보다 성실히 살았고
가족을 위해 희생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누리기만 할 뿐 그의 노력을 이해하려 하지도, 공감하려 하지도 않았다
절망, 허무, 분노 여러 감정들을 도무지 버리지 못한 그는
자신을 괴롭히는 걸 택했다
종일 마시는 술, 불면, 계속되는 생각들...
눈이 노랗게 변하고 살이 무섭게 빠져갔지만
그는 그래야만 자신이 산다고 했다
누구든 그를 보았다면 어떻게 해서든 병원에 데려가려고 했겠지만
그는 누구의 말로도 움직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내 말도 내 부탁도 내 애원도 절대 들어주지 않는 사람
꿈을 꾸고 미래를 얘기하며 웃지만 금세 다시 가라앉아버리는 사람
언제 그렇게 웃었냐는 듯이 고통 속으로 잠겨버리는 사람
기꺼이 언제든 침잠해서 도저히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런 세월이 몇 년이 이어졌다
나는 너무 지쳤고 그를 더는 감당할 수 없었다
술에 취해 희망을 얘기하다가 30분도 안되어 다시 고통 속으로 가라앉아버리는
그 감정의 널뜀을 나는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괴로웠다
그는 나를 붙잡고 같이 이겨내야 한다 했다
나는 너 힘들 때 다 해줬는데, 나는 하는데 넌 왜 못해!
나는 그만큼이야 더는 못해!
나는 그만큼의 사람이었다
그가 싫어하는 ‘그만큼’의 사람.
그가 바라는 무한한 희생은 하지 못한 사람.
마지막이라는 말의 마지막을 수없이 반복하고
정말 '마지막'이라는 그의 말을 또 믿었다가
결코 그게 마지막이 아니란 걸 알았을 때
그 마지막이 언제까지고 계속될 거라는 걸 알았을 때
나는 그를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