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을 사랑한 꽃-3화

달을 사랑한 꽃

by 김도화

[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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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가슴에는 서러움의 감정이 치닫는다. 눈물을 흘려야 할 순간이 찾아왔다는 것은, 위로가 필요하다는 역설의 논리를 반증한다. 하지만 동시에 나는 눈물을 꾹 참고 있다. 내게 눈물이 필요한 순간임을 그들도 알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위로에 인색하고 무지하다. 그것은 내가 아름답지 못한 까닭이다.

그렇다고 그 조롱에 아픈 척을 해서도 안 된다. 내가 아픈 것을 보이는 순간, 나는 참았던 눈물보다 더 많은 눈물을 쏟게 될 것이다. 나약함은 대상의 약점이며, 따돌림의 원인이다. 눈물보다 더 큰 상처는 사탕 같은 우박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것처럼 비극적인 결과를 낳게 마련이다.

흔히들, 우리가 겪는 일상의 모든 일들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일어난다고들 하지만, 내가 경험한 바로는, 모든 일들은 부자연스럽기 그지없다. 삶은 하나의 진실만을 갖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양면성을 띤다. 그 양면성조차 갈등과 삶의 의미를 동시에 부여하는 부조리한 양면성을 갖기 때문이다.

삶은 자연스러움을 가장한 희로애락일 뿐, 좋은 것과 싫은 것, 행복한 것과 불행한 것, 사랑과 미움을 동시에 갖는 이 마음은 틀림없이 불편한 진실이다. 내가 불편한 진실을 이해하는 순간, 나의 기대는 부질없는 물거품이 된다. 특별히 나에겐 희로애락 중에 노여움과 슬픔에 더 많은 지배를 받는다.

나는 그 어린 아이의 모습을 보지 않으려 했으나, 내 속의 양면성이 여전히 요동치는 바람에 그 빈자리를 차지한 아이의 모습을 보고 만다. 나무랄 수 없는 호기심이다. 노랑꽃 로비비아 철화의 자리를 차지한 아이는 부용 다육이다.


주홍빛의 봉오리를 맺었던 부용이 얼마 전 노란 속살을 환히 비추며 꽃을 피웠기 때문이다. 그 아이는 누가 보아도 사랑스럽다. 아름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는 아이다.

그 아이를 에워싼 또 다른 꽃들이 서로 축하를 한다. 아니, 축하를 하는 척 했을 것이다. 나의 추측엔 충분한 근거가 있다. 그들은 지금 서로 적대적 감정으로 격렬하게 토론을 벌이고 있다. 목소리가 크고 잘 뻐기는 자가 이긴다는 논리를 작용이라도 하듯 모두 소리를 높인다. 축하는 짧고 오만은 길다!

누가 더 붉은지, 누가 더 아름다운지, 누가 더 사랑받는지, 누가 더 정열적인 꽃인지, 모두 자신에게 타당할 듯한 이유들을 들이대며 자신이 더 훌륭하다고 주장하는 무의미한 토론은 어느덧 자정을 향해 간다. 그 꼴을 보자니 한숨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토론은, 아니 그들의 오만은, 수많은 백설공주와 신데렐라들이 제각기 아름다움을 뽐내며 왕자를 기다리는 것만큼이나 혐오스럽다. 구역질이 날 것 같다. 그러나 다행히 먹은 것이 없어 헛구역질로 그친다.

자존심은 어딜 가고, 자만심으로 가득 찬 허상을 쫓는 것들이라니!

쯧쯧, 내가 고개를 돌리는 것과 동시에 나이 많은 수국의 포악질이 시작된다. 인내의 바닥이다.

“그만해! 감히 어린 것들이, 어디서 까부는 거야?”

수국의 패악에 어리석은 오만의 축제는 멈춘다. 이번 토론의 진실은 세상을 얼마나 오래 살았는가, 하는 세월의 나이로 결정되는 찰나다. 아름다움이 외모가 아닌 나이순으로 지배되는 순간이다. 그것은 우스운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편리한 일이기도 하다. 생산적이지 못한 일로 시간을 허비하는 것보다는 편리함을 선택한 것도 나쁘지 않다. 그렇다고 오만의 전쟁이 종료되는 것은 아니지만.

꽃은 아름다움만으로 채워진 산물이 아니다. 아름다움 속에 숨겨진 패악과, 비난과 부조리한 진리에 가담을 하지 않았던 스스로에게 나는 깊이 안도한다.

꽃들의 토론은 늪에 빠진 어리석은 어린 새의 발버둥과 같은 것!


‘어떻게 저 구제 불능의 어린 새를 구할까?’하고 나는 생각한다.

“흣!”

나의 너덜너덜한 웃음은 그들에게로 향한 비난이 아니다. 나를 향한 위로다. 충분히, 완벽하게 나를 위로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영문을 모르는 꽃들은 어느새 하나가 되어 나에게 대항한다. 나의 웃음은 그들의 결속력을 옹호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당분간 나는 그들의 단결에 통제를 받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들이 대적하기 용이한 공격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어머, 쟤 봐, 결국 정신을 놓았어. 가엾어라!”

나는 그 말에 쾌감을 느낀다. 나에겐 나만의 꿈과 진실이 존재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그들의 적개심에 맞설 용기가 있다는 걸 그들은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

이 진열대를 벗어나는 순간, 나는 불빛을 벗어나 태양으로 달려갈 것이다. 그렇게 되는 날, 나는 너희보다 훨씬 더 위대한 꽃을 피울 것이다.

내가 이를 악물자 달팽이 점액질처럼 진득한 그리움이 두꺼운 피부를 뚫고 붉은 가시 사이로 터진다. 그것은 아직 나의 생명이 존재하는 이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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