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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ema Dec 30. 2022

동화_구름 쫓던 아이

아이는 새소리에 잠을 깨자마자 창문을 열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는 우유거품 같은 구름이 듬성듬성 늘어져 있었다. 하나, 둘, 셋. 마음속으로 천천히 숫자를 세어보았다. 산꼭대기에 걸려 있는 구름이 그대로인 걸 보니 오늘은 바람이 세지 않은 것 같았다. 이 정도 속도라면 구름을 따라잡을 수 있겠는 걸, 오늘은 왠지 예감이 좋았다.


마을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 제일 먼저 창문을 열고 구름을 확인하곤 했다. 기분이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각자의 이유로 그날의 구름을 살폈다. 구름의 모양은 상관없었다. 오직 관심의 대상은 구름의 색깔이었다. 보통의 흰 구름 사이사이, 파스텔 톤의 구름을 만나면 모두가 구름 아래로 뛰어들었다. 가장 좋아하는 노래의 후렴을 한 번 부를 만큼의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기분은 어느새 구름 색깔과 같아져 있었다. 옅은 분홍빛이 도는 구름 아래에선 감동적인, 방금이라도 가슴 벅찬 오페라를 본 듯한 기분이 되어 금방이라도 감동의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 레몬 속살 같은 옅은 노란색 구름 아래에선 약간 졸린 기분이, 그리고 제비꽃보다도 옅은 보라색 구름 안에선 굉장한 환희를 느낄 수 있었다. 옆집 아저씨가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레몬 속살 같은 노란 구름에 걸려 자전거를 팽개치고 땅바닥에 꾸벅꾸벅 졸았다는 건 모두가 아는 이야기였다. 그래서 불면증에 걸린 사람들은 일부러 노란 구름만 찾아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제일 좋아하는 것은 이제 막 땅을 뚫고 나온 새싹보다 옅은 녹색의 구름이었다. 구름 아래에 서 있기만 해도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으니까. 모두가 그날 하루 녹색의 구름을 만나길 소원하며 창문을 열곤 했다. 그런데 문제가 딱 하나 있었다. 바로 이 파스텔 톤의 구름은 색이 너무 맑아서, 멀리서 보면 다 하얗게 보인다는 것이었다. 


너무 멀어서 점처럼 보이는 산등성이 오두막 지붕에 까치가 앉아 있는지 까마귀가 앉아 있는지를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앞집 아저씨도 그보다 몇 배나 가까이 있는 구름의 색을 맞추지는 못했다. 모두가 희망을 안고 대문을 뛰쳐나가 구름이 있는 곳까지 달려가도 허무하게도 아무런 느낌도 주지 못하는 흰 구름이 대부분이었다. 아니면 레몬 속살 같은 노란 구름이어서, 숨이 턱에 차도록 뛰어서 구름을 만난 사람들은 막다른 골목 끝에서 어깨가 닿도록 나란히 누워 까무룩 잠이 들곤 했다. 그나마 이것도 바람이 세지 않은 날에만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보통은 세찬 바람에 구름이 빠르게 밀려가서, 설사 녹색 구름이 있다고 해도 그걸 따라잡는다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차를 타고 따라가려고 해도 차키를 꼽고 시동을 거는 동안 어느새 사라져 버려, 나는 시동 거는 동안 너는 구름이 어디로 가는지 보지도 않은 거냐며 싸우기 일쑤였다. 이만큼 옅은 녹색의 구름을 만나는 것은 너무 어렵고 번거로운 일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행복하고 싶었고, 그래서 가장 좋아하는 색을 녹색이라고 믿으며 살았다. 지붕을 녹색으로 칠하면 구름에 색이 번질 거야. 사람들은 이상한 믿음으로 자기 집 지붕을 녹색으로 칠하기 시작했다. 아니야, 대문을 녹색으로 칠하면 녹색구름을 만나게 될 거야. 무슨 소리, 녹색 자동차가 마을을 누비면 온 마을에 녹색의 기운이 가득 찰 거야. 사람들은 행복하고 싶었다. 그래서 마을은 점차 녹색으로 물들어갔다.


아이도 어른들의 믿음에 물들어갔다. 초록색 신발을 신고 다니고 초록색 치마를 제일 좋아했다. 심심하면 초록색 물감을 물에 풀어 옅은 색으로 만들어놓고는 몇 시간이고 들여다보았다. 이 물이 구름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세요. 아이는 마음으로 소원을 빌고 초록색 물감을 떨어트린 물을 뒷마당에 뿌리곤 했다. 땅에 있는 물이 하늘로 올라가면 구름이 된다고 배웠으니, 조만간 우리 집 위에 녹색 구름이 찾아오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원이 이뤄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 전설 같은 초록빛 구름을 만난 사람은 딱 한 사람뿐이라고 했다. 아주 옛날, 마을 사람 중 하나가 이 구름을 만난 적이 있다는 것이었다. 주인공은 다름 아닌 아내의 부탁으로 장을 보러 가던 아저씨였다. 건망증이 심해 매번 깜빡깜빡하지만 자신이 무언가를 잊었다는 사실조차 잊어서 늘 만사태평인 사람이었다. 내가 지금 어딜 가는 중이었더라? 그날은 아내가 준 구매목록을 깜빡하고 집에 두고 나온 탓에 장터로 가던 중간에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를 까먹고야 말았다고 했다. 길 한가운데에 서서 장바구니만 든 채 곰곰이 기억을 더듬던 아저씨는 마침 그 자리를 잠시 머물다 간 초록구름을 만났고, 갑자기 환해진 얼굴로 빈 장바구니를 휘날리며 집으로 뛰어갔다고 했다. 초록구름! 초록구름! 동네가 떠나가라 외치는 소리에 마을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밖으로 뛰어나왔지만 이미 그 구름은 자취를 감춘 뒤였다. 마을 사람들은 행복에 가득 찬 아저씨의 얼굴을 부러움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다가 다들 낙심하여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갔다. 들었수? 깜빡이 아저씨가 초록구름을 만났다던데? 뒤늦게 이 소식을 들은 몇몇은 궁금증에 아저씨 집을 찾아갔지만 아저씨네 가족은 모두 짐을 싸 마을을 떠나고 없었다. 그래서 초록구름을 만난 사람이 어떤 마음인지 제대로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였다. 네모반듯한 가방을 어깨에 메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는 고개를 뒤로 젖히고 열심히 구름을 따라가다가 뭔가에 쿵 하고 부딪쳤다. 놀랄 일은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에게 부딪침이란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아주 사소한 사건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때로는 나무에, 때로는 돌담에, 그리고 아주 자주 사람들과 부딪치고는 서로 어색하게 웃으며 별 다른 말도 없이 툭툭 털고 일어나 저 멀리 달아난 구름을 쫓아가는 걸 안 해본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이 틈을 타 충돌방지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정치인도 있었다. 물론 마을 사람 중 그 누구도 동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는 모두 행복하고 싶은 것뿐인 걸요. 서로가 행복을 원한다는 이유로 생긴 이 충돌을 원망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이마에, 팔뚝에, 그리고 어깨에는 크고 작은 멍자국이 늘어났지만 다들 개의치 않았다. 그러다 머리 다칠라, 엄마는 이럴 때를 대비해 챙 달린 두꺼운 모자를 쓰고 다니라고 했지만 아이는 모자가 싫었다. 시야가 좁아져 구름을 놓칠까 겁이 났기 때문이었다. 

아이쿠, 하고 엉덩방아를 찧은 아이는 엄마 말을 들을 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생각보다 크게 부딪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작은 손 하나가 불쑥 눈앞에 나타났다.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또 다른 아이였다. 많이 아프니? 내 손 잡고 일어나. 아이는 망설이다가 작고 따스한 손을 맞잡았다. 엄마 아빠를 따라 막 이사 왔어. 여기에는 행복을 가져다주는 구름이 있다면서? 아이는 옷을 털며 뭐라고 대답을 할까 망설였다. 너는 원래 말이 없니? 우리 엄마가 보면 아주 좋아하시겠다. 울 엄마는 내가 잠시도 입을 가만히 두지 못한다고 늘 불평하시거든. 너 혹시 시간 좀 있니? 나도 초록구름을 좀 보고 싶은데! 아이는 유리구슬처럼 도로록 도로록 쏟아지는 말을 흘려들으며 멍하니 서 있었다. 발아래에는 쏟아진 유리구슬이 가득할 것만 같았다. 그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야 라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했다. 그렇지만 싫다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환하게 웃는 유리구슬 같은 아이를 따라서, 오던 길을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아이의 일상은 조금씩 바뀌어 갔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고 하늘부터 확인하던 습관은 점차 사라졌다. 그 대신 문밖에서 기다리는 유리구슬 같은 친구에게 손을 흔들어주는 것이 하루의 첫 일과가 되었다. 그리고 저 친구에게 꼭 초록구름을 찾아주고 싶다는 소망을 품게 되었다. 그래서 둘은 방과 후에 별다른 일이 없는 한 같이 다니며 초록구름을 찾아다녔다. 물론 성과는 없었다. 어떤 날은 노란 구름에 걸려 이웃집 처마 밑에서 사이좋게 잠이 들었다가 창문으로 새어 나오는 저녁밥 냄새에 잠이 깨 부리나케 각자 집으로 뛰어간 적도 있었다. 학교에서 선생님께 호되게 꾸중을 들어 울적한 기분으로 나온 날에는 공교롭게도 주황색 웃음구름에 걸려 길거리에서 둘이 깔깔대고 정신없이 웃은 적도 있었다. 마침 퇴근하시는 선생님도 그쪽을 지나다가 웃음구름에 걸렸는데, 품위를 지키겠다고 웃음을 억지로 참느라 듣도 보도 못한 이상한 웃음소리를 내며 허겁지겁 뛰어가 오히려 체면을 구긴 적도 있었다. 웃음구름을 벗어난 아이들은 오늘의 이 재미있는 순간을 기억하자며 솜사탕 아저씨를 찾아가 주황색 솜사탕을 사 먹었다. 아이들은 모든 날이 재밌고 기뻤다.


그러게 맞은 방학의 첫날, 아이는 새소리에 잠을 깨자마자 창문을 열었다. 늘 그렇듯 친구가 손을 흔들고 있었다. 반가운 얼굴로 손을 흔들어주고는 재빨리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얗게 보이는 수많은 구름이 온 하늘을 덮고 있었다. 저 속에는 꼭 초록구름이 있을 것만 같았다. 오늘은 왠지 예감이 좋았다.

아이는 재빨리 준비하고 뛰어나가 친구에게 다가갔다. 초록구름을 꼭 찾아주고 싶었다. 하늘을 가리키며 말했다. 오늘은 정말 있을 것 같아. 그렇지 않니? 유리구슬 같은 아이는 그 말에 이렇게 답했다. 나는 벌써 나만의 초록구름을 만났는 걸. 친구의 유리구슬 같은 말이 도로록 도로록 아이의 마음으로 굴러들어 왔다. 두 아이는 손을 맞잡았다. 아이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깨달았다. 이것이 바로 초록구름에 걸렸을 때의 기분이라는 것을. 더 이상은 구름을 쫓아다니지 않아도 되는 거구나. 둘은 마주 보고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치마를 펄럭이며 신나게 내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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