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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oema Feb 11. 2023

동화_풍선 날개

아이는 저녁을 먹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몸이 좀 더 가벼워지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왜 나만 몸이 뜨지 않는 거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심호흡을 하고 제자리에서 훌쩍 뛰어봤다. 곧바로 쿵 하고 땅으로 떨어졌다. 아무래도 저녁에 라자냐를 포기한 건 괜한 오기였던 거 같다. 굳이 먹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열심히 만든 엄마의 마음을 상하게 했는데, 보람도 없이 몸은 전혀 가벼워지지 않았으니.


이 마을 아이들은 사뿐사뿐 뛰듯이 날듯이 마을을 누비고 다녔다. 기분이 좋은 만큼 더욱 높이 떴다. 그래서 기분 좋은 아이는 저 멀리서 봐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날개가 달려 몸을 살짝 들어 올린 듯 보였으니까. 보통의 기분이거나 우울한 마음이 들면 여느 사람들이 그렇듯 땅에 발을 딛고 걸어 다녔다. 그렇지만 아주 작은 일에도 기분이 좋아지면 아이들의 몸은 서서히 두둥실 떠올랐다. 꼬꼬마 아이들은 몸이 뜰 때 균형을 잡는 훈련을 하는 게 통과의례가 될 정도였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성인식을 마치고 나면 그런 마법 같은 일은 일어나지 않아서, 어른들은 그렇게 둥둥 떠다니는 아이를 보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슬며시 웃음을 짓곤 했다. 그래 좋을 때지, 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아이는 처음 이 마을에 이사를 올 때만 해도 그 경고랄까 충고랄까 마을 이장님이 에헴 하면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전혀 귀담아 듣지 않았다. “우리 마을 아이들은 기분이 좋으면 몸이 둥둥 뜬단다. 혹시 모르지. 너도 여기 살면 그렇게 될 수 있을지.” 아이는 이장님의 베베 꼬인 수염이 하늘을 향해 솟아있는 걸 보느라 대화에는 관심도 없었다. 신기한 수염이네. 하늘을 향해 솟아있어. 속으로 킥킥 웃으며 그런 생각만 했을 뿐이었다.  


아이는 다음날 학교를 갔을 때에야 전날의 이장님 말씀을 새겨듣지 않았음을 후회했다. 좀 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왔어야 하는데. 생일 맞은 아이, 친구를 봐서 기분 좋은 아이, 아침에 맛있는 걸 먹고 온 아이들이 땅에서 살짝 둥둥 떠 다녔다. 자기소개를 해 보라는 담임선생님의 말씀에 교단으로 나가는데도 땅을 딛고 한 걸음씩 걸어 나가자 반 아이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쟤는 우리 반에 온 게 기분 좋지 않은가 봐.” “왜 몸이 둥둥 뜨지 않는 거지.” “난 쟤랑 친구하고 싶은데, 쟤가 싫다고 하면 어쩌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가면서도 아이들이 하는 말이 가슴이 와 콕콕 박혔다. 장미 화단에서 놀다가 가시에 찔린 듯, 아이는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움찔했다. 

“나…나는 새로 전학 왔어…. 너희들을 만나서 너무 기뻐. 모두랑 친하게 지내고 싶어……. 저, 저, 정말인데…….” 아이는 곧 울음을 터트릴 듯 얼굴을 찌푸리고 자리로 돌아왔다. 반 아이들은 기쁘다는 말을 믿어야 할지, 뜨지 않는 몸을 믿어야 할지, 아니면 찌푸린 얼굴을 믿어야 할지 모르는 채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이어진 수업은 어쩐지 침울한 기분이 들 정도였다. 아이들은 누구 하나 장난을 치지도 않고 어쩔 줄 모르는 눈치로 조용히 수업에만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니 엄마가 만들어준 라자냐를 보자마자 한숨이 나온 건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도 몸이 뜨지 않는데 라자냐까지 먹으면 몸이 더 무거워져 절대로 몸이 뜨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태어나서 한 번도 몸이 둥둥 떠보지 않은 아이는, 도대체 어떻게 하면 몸이 뜰까 고민하며 밥을 줄이고, 통통 뛰어다니고, 때로는 하늘 높이 점프를 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매번 결과는 똑같았다. 아이는 눈 깜짝할 새 쿵 소리를 내며 땅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원래 자주 웃고, 농담도 하고, 장난도 치던 아이는 어느새 조용하고 말이 없는 아이로 변하고 말았다. 반 친구들도 이 아이의 표정에서 문득 보이는 장난기를 발견하곤 했지만, 그게 장난으로 이어지기 직전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표정을 바꾸고 책에 얼굴을 묻는 모습을 보며 아이의 성격이 변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모두가 조금은 슬픈 나날이었다. 


이 모든 모습을 지켜보던 마을 이장님은 신부님을 찾아가 대책을 논의했다. 우리 마을에 그렇게 혼자가 되는 아이가 있으면 안 되니까요, 라는 게 이장님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멀리서 마을로 부임해온 신부님이라면 아주 좋은 돌파구를 마련하실 거라는 생각을 했다. 신부님 역시 멀리서 이 마을까지 와서 적응을 하신 분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어른의 몸은 떠오를 일 없어 적응하는 게 그리 어렵진 않았었지만 말이다. (신부님이 가장 적응하기 힘들었던 건 성당이 없는 마을에 부임했다는 사실이었다.) 마을 이장님과 신부님은 마들렌과 홍차를 나눠 먹으며 대책을 논의했다. 몇 시간이나 이어진 회의였다. 그리고 둘은 왠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며칠 뒤에 있을 아이의 생일을 작전 타임으로 잡았다. 


이장님과 신부님은 마을의 집을 반으로 나눠 시간이 날 때마다 가정 방문을 했다. 그리고 상황을 자세히 설명하고 그들의 손에 무언가를 쥐어주고 헤어졌다. 설명을 같이 들은 그 집 아이들은 설명이 이어질수록 기분이 좋아져 몸이 두둥실 뜨는 게 느껴졌다. 이번 작전은 왠지 잘 될 것만 같았다. 


그리고 대망 그날 아침. 아이의 생일이었다. 아침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아이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콩콩 뛰어보았다. 그렇지만 역시 똑같았다. 아이는 평소처럼 땅바닥으로 곧장 떨어졌다. 생일이라 기쁜 마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떠오르지 않자 모든 걸 포기하는 마음이 들었다. 학교 가기 전 블루베리 머핀에 초를 꼽아 간단하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준 엄마가 이따 저녁에 더 큰 케이크로 축하파티를 하자고 할 때도 아이는 두 손을 곱게 모으고 오늘만은 몸이 두둥실 떠오를 수 있게 해달라고 빌 뿐이었다. 오늘은 생일이니까요!라고 마음속으로 소리치면서.


깜짝 놀랄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아이가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가자 반 아이들 모두가 집 앞에 와 있었다. 모두가 빵빵하게 분 풍선을 몇 개나 들고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생일 축하해! 아이들은 한 목소리로 소리를 친 후 아이의 가방에 풍선을 묶었다. 백 개나 되는 풍선을 가방 끈에 묶자 아이의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아이는 미소를 짓다가, 곧 활짝 웃었다. 내 몸이 뜨고 있어! 반 친구들이 대답했다. 오늘은 풍선 덕에 몸이 뜨겠지만 내일은 또다시 평소처럼 돌아갈 거야. 그렇지만 너무 슬퍼하지 마. 우리가 있잖아. 우리 앞으로 친하게 지내자. 

아이는 두둥실 뜬 몸을 보며 웃었다가, 친구들의 마음에 감동해 눈시울을 붉혔다가, 뭔지 모를 마음의 소용돌이에 정신이 없을 지경이었다. 반 친구들은 아이의 표정을 보며 어쩐지 안심이 되었다. 그리하여 모두 기분이 좋아진 아이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공중으로 두둥실 떠올랐고, 아이와 반 친구들 모두는 그렇게 둥실 둥실 뜬 채로 기분 좋게 학교로 향했다. 아이는 풍선 날개야말로 블루베리 머핀보다, 저녁에 먹을 커다란 케이크보다, 그때 받을 엄마아빠의 생일선물보다 더 멋지고 잊지 못할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풍선 날개를 멘 아이는 그렇게 공중에 떠서 한없는 자유와 기쁨을 맛보았다. 두둥실 두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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