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경희, 문학과지성사 2021
기억 속의 나는 혼자만의 공간을 갖고 싶었다. 혼자서 홀로 있을 수 있는 독립적이고 내밀한 공간.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욱여넣고 그것을 인테리어나 풍경이라 부르고 싶었다. 그런 욕망은 나를 혼자 살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고 물건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으로 성장시켜 왔다. 나는 혼자 살게 되었고 나의 작은 집에는 과거의 기억을 품은, 버리지 못한 나의 기억을 어느 상자에 숨겨두었다. 그곳엔 내가 아끼던 기타 피크, 지금은 연락하지 않는 누군가의 편지 등과 같은 건드리기만 해도 굴뚝을 벗어나는 연기처럼 이야기가 샘솟는 물건이 있다. 이것들은 순전히 나의 취향이며, 그것을 보관하는 박스는 나의 은신처이고 기억하지 않으면 꺼낼 일이 거의 없는 물건들이다.
윤경희는 ‘경이로운 방’이라는 뜻을 지닌 분더카머, 즉 근대 초기 유럽의 지배층과 학자들이 자신의 저택에 온갖 귀한 사물을 수집하여 진열했던 실내 공간의 개념을 중심으로 자신의 유년을 떠올린다. 이는 독자에게 각자 머릿속 내밀한 분더카머로 시선을 돌려 이미지와 기억을 소환해내고 그것들이 회고로 인해 어떻게 달라지는지까지 나아간다. 작가는 현재의 욕망과 불안의 근원에 다가가려는 욕망 속에서 그것을 둘러싼 이야기가 살아 숨 쉬는 것을 본다.
분더카머는 어떻게 보면 취향이 확고한 박물관 같다. 하지만 박물관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박물관은 모두에게 열려있고 수집하는 유물들이 공적인 가치가 있음과 동시에 어떤 기준을 통과한 물건만이 전시될 수 있다고 한다면, 분더카머는 정말 주방장 특선과 같다. 근데 그 주방장이 가게를 열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책에 등장한 예시로는 덴마크의 의학 교수 올레 보름의 분더카머에 있는 상어, 아르마딜로 등 동물 표본과 인형 등 도무지 용도를 짐작할 수 없는 물건들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이는 자신과 아주 내밀한 연관이 있는 물건들이며 “백과사전적 지식욕”을 고스란히 노출한 채 빼곡하게 채워둔 것이다.
어느 날 나의 혼란스러운 방을 본 엄마가 “너는 어떻게 물건을 찾니?”라고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나의 손길에 닿는 대로 체계적이고 합리적으로 물건을 정리했다. 그러나 나도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이 공간 자체가 혼돈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분더카머가 자신과 세계와의 상호작용에서 개인이 얻은 고유한 역사와 기억의 진열실이며 마음의 시공간의 상징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나의 마음에 있는 분더카머도 그러한 것일까. 지적이며 세련되고 아름다운 것들은 아무것도 없어 무가치해 보이고 누군가가 봤을 때 어지러운 방처럼 복잡하게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자신의 어지러운 분더카머를 열고 먼지 쌓인 기억을 하나씩 풀어헤친다. 이것을 해석이라 부를 수 있지만, 저자는 실패라고 말한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내밀한 분더카머의 이야기를 꺼내 공유한다는 것은 어쩌면 무모하고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것에 도전한다. 기꺼이 유혹에 몸에 맡겨 모험을 주저하지 않는다.
독창적이고 섬세한 언어로 문학과 예술을 그려내는 윤경희의 『분더카머』는 반짝이는 언어로 숨겨져 있던 마음의 진실을 끄집어낸다. 자신의 부족함과 상황을 전부 알면서도 말할 수밖에 없는 그의 분더카머로 독자는 빠져들어 어느새 자신의 분더카머를 정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현실의 무게를 잠시 잊고 자신을 돌아보며 관람하듯 스스로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