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태훈 Jul 12. 2023

『아구아 비바』

민승남 옮김, 『아구아 비바』(을유문화사, 2023)

범람하는 순간의 말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민승남 옮김, 『아구아 비바』(을유문화사, 2023)



읽을수록 경계가 흐려지는 물의 문학

리스펙토르의 세계가 ‘당신’을 향해 쏟아진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아구아 비바』가 을유문화사의 암실문고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1920년에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난 작가는 내전을 피해 브라질로 이주하여 난소암으로 사망하기 전까지 소설을 썼다. 작가의 작품을 주도적으로 번역하고 편집했던 벤저민 모저는 작가를 카프카 이후 가장 중요한 유대인 작가로 꼽기도 했다.


고전적으로 시와 소설은 서사의 구체성과 범위를 중심으로 구분되었다. 순간의 이야기는 시, 길고 폭이 넓은 이야기는 소설. 하지만 순간의 이야기를 한다고 해서 소설이라 부를 수 없는 것은 아니고, 길고 폭이 넓은 이야기를 갖는다고 한들 시가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문학의 범주는 시간이 지날수록 넓어지고 있으며 이젠 무언가를 규정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며 그럴 필요조차 없게 되었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소설 『아구아 비바』는 어떤 점에서 시처럼 말을 쏟듯이 풀어내는가 하면 소설의 형식으로 내밀한 서사를 제시하기도 한다. 그러면서 『아구아 비바』의 화자는 자신의 말을 ‘피상적으로만 들으라’고 한다. 어떠한 해석을 통해 무언가를 도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 관찰자의 입장으로 풀이나 돌을 보고 색이나 소리를 느끼듯 감지하길 권한다. 이러한 방식의 독서는 '시'의 감각이라 생각한다. 감각을 감지하고 관찰하여 확장하는 읽기의 방식은 어떤 서사의 결말로 나아가는 것이 아닌 서사의 시작으로 가는 과정처럼 보인다.더군다나 클라리시 리스펙토르의 글은 대부분 기묘하고 규범을 벗어나는 글이기도 하다. 그중  『아구아 비바』는 가장 실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글이다. 앞서 말했듯 전개나 결론 없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욕구를 쏟아내고 확장하듯이 말하기 때문이다. 틀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말하는,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만 어느 것 하나 확실하지 않는, 제목에 충실한 글이다. 


"이 말을 해야겠다 : 나는 이 '지금-순간'의 사차원을 포착하려 하지만,

찰나에 불과한 이 순간은 이미 지나가 버렸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새로운 지금-순간이 되었으며,

그것 또한 이미 지나가 버렸기 때문이다."


'말을 해야겠다'라는 욕구가 이 책의 전부이다. 서사이며 세계다.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지금-순간'을 말하기 위해 그것과 관련된 모든 말을 한다. '말'을 전하는 방식은 편지의 방식처럼 보인다. 글의 도입에서 작가는 "당신에게 글을 쓰고" 있다는 말과 함께 자신의 순간에 관해 말한다. 반짝하고 사라지는 '지금-순간'을 반딧불이에 비유하며 은유적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자신이 무엇을 쓰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한탄하기도 한다.

'말'을 하겠다는 건 모든 작가의 욕구이기도 하며, 그것이 끝내 실패하리라는 것을 알지만 위험을 부담하면서까지 도전하려는 당찬 포부이기도 하다. 작가는 '지금-순간'을 말하지만 그것을 말한다는 것은 전부를 말하겠다는 것과 같다. 전부란 삶이자, 죽음을 포함한 모든 것. 그렇기에 작가는 처음 눈을 뜬 새처럼 느끼는 모든 것을 말한다. 그러나 다른 이가 그의 언어를 들었을 때에는 어떤 중얼거림과도 같게 느끼게 된다. 정확히는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동시적인 언어를 구사하기에 이 뜻이 저 뜻이 되고 저것이 이것이어도 좋을 말이 많다. 그래서 정말 감각적으로 읽게 되는 것 같다. 그만큼 작가가 각오하고 썼다는 게 아닐까.

처음 을유문화사에 서평을 신청했을 때 내가 이 서평을 다른 서평처럼 끝까지 완성도 있게 쓸 수 있을 순 없겠구나 싶었다. 그럼에도 읽겠다고 한 이유는 이 중얼거림이 내게 어떠한 감각을 쥐여줄 것 같아서였다. 다 읽고 난 뒤 나는 어떤 소용돌이 사이에 있는 기분을 느낀다. 벗어날 수 없으나 책의 '지금'에 내가 자리하고 있다는 감각. 이 감각이 이 책의 전부는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스스로 울타리를 벗어나며 어디로 나아간다는 자각 없이 폭력적으로 확장을 거듭하는 세계. 클라리시 리스펙토르는 그것을 가능케 한다. 

본 계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