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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훈 Jul 12. 2023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

백신애, 최진영, 작가정신 2022


미지로 내달리는 사랑의 실험

백신애, 최진영,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작가정신, 2022)




마음을 찢어 확인하는 사랑의 형태

제도와 규범 바깥에서 갈구하는 사랑의 실험


백신애 작가와 최진영 작가의 소설집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가 작가정신 출판사 소설 잇다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백신애 작가는 식민지 조선의 구속된 여성들의 삶을 여성의 언어로 그려낸 작가이다. 백신애 작가의 세 편의 단편과 최진영 작가의 한 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책은 시대를 뛰어넘어 사랑의 연대가 어떤 방식으로 발화되는지를 보여준다.


억압은 잠재우는 것이 아닌 분출에 도움을 준다. 꾹 눌렀다가 튀어 오르는 스프링처럼 억압 또한 욕구를 더 키우기 마련이다. 인간의 뇌는 부정의 개념을 모른다. 만약, 컴퓨터를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면 누구나 컴퓨터를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생각조차 가로막질 못하는데 감정은 더 그렇지 않겠는가.


백신애 작가는 1930년대에 투병 중에도 많은 소설을 쓴 작가다. 차별이 기본적으로 깔린 세상에서 자신의 신념을 말하고 억압받은 현실을 과감하게 말했다. 그중 대표적인 작품이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광인수기」, 「혼명에서」, 「아름다운 노을」이다. 

「광인수기」는 제목에 나온 것처럼 미친 사람의 말이다. 주인공인 ‘나’는 열일곱에 결혼하여 남편을 유학 보내고 시집살이를 견뎠다. 시간이 지나 남편이 돌아왔지만, 남편은 사상운동한다고 애를 태우고 바람까지 피우는 것을 알게 된 부인인 ‘나’를 미친 사람 취급하며 방에 가둔다. 사람들은 ‘나’를 미쳤다며 손가락질하고 속이 터지는 ‘나’는 울다가 웃다가 혼자 넋두리한다.

「혼명에서」와 「아름다운 노을」은 위에서 보여주는 광기와는 조금 다른 광기를 보여준다. 사랑하는 대상을 향한 에너지 넘치고 활발한 사랑을 보여주는데 「광인수기」가 억울함을 기반으로 한다면 나머지 두 소설에서는 신념과 의지를 기반으로 한 정열을 사랑으로 발화한다. 이러한 방식은 시대상을 생각했을 때 감각적이고 용감한 사랑의 질주라고 할 수 있다. 사회가 요구하는 사랑과 삶의 형태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신념을 기반으로 한, 자신이 원하는 사랑만을 따르기 때문이다.

최진영 작가의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는 백신애 작가처럼 광기 넘치는 사랑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2020년대에 흔히 일어나는 경제적인 곤경과 불안을 여성 청년인 ‘정규’를 중심으로 보여주며 여성과 여성의 연대를 기반으로 한 시스터후드-사랑을 탐사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흐르는 물과 같아서 자꾸 변해진다고요?

참 잊어버렸군, 그런 것이 아니라 사랑이란 영원한 것이 아니고 찰나가 연장해가는 것이니까

이 순간 아무리 사랑하지마는 다음 순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라지요.

그러니까 그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게 아닙니까.


「광인수기」 중에서


사랑은 가만히 있는 것이고 사랑을 겪는 사람의 태도가 변하는 것이다. 태도는 자신의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바뀔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작가는 변하지 않는 신념을 가지고 있기에 변하지 않는 태도로 사랑을 향해 에너지를 발산한다. 표출할 수 없었던 감정을 글로 표현해 내며 그것이 어디를 거쳐 어디까지 가는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것을 사랑 실험이라 불러도 되지 않을까. 이러한 실험적 태도가 사랑을 둘러싼 인간의 견해의 폭을 넓히는 건 아닐까. 실패가 예견된 사랑이라 해도 스펙트럼이 넓어질 것은 분명하다. 사랑의 넓은 품은 후대의 사람이 이어받게 되고 그것은 또 미래로 향하게 되어있다. 최진영 작가는 백신애 작가의 소설을 비롯하여 「우리는 천천히 오래오래」를 썼는데 여기서도 사랑을 중심으로 한 실험적 태도가 있다. 사회가 반대하고 억압했던 사랑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채용함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실제로 겪지 못해도 체험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체험이 반복되고 쌓이면서 우리는 어떤 사랑을 말할 수 있게 될까. 커다란 억압에서 점차 작고 사소한, 보이지 않는 억압과 폭력까지 말하게 될 것이다. 그 몫은 작가가 할 일이 아닌 읽는 독자가 미래에 행해야 할 몫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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