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인, 『당신의 죄는 내가 아닙니까』(아시아, 2023)
폭력의 세계에서 침묵하지 않는
한 사람의 쓸쓸한 분노
최지인의 『당신의 죄는 내가 아닙니까』가 아시아 K-POET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나는 벽에 붙어 잤다』, 『일하고 일하고 사랑을 하고』에서 보여주던 사회의 불합리함에 놓인 개인과 집단의 슬픔과 괴로움을, 이번 시집에서는 슬픔과 괴로움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 태도로 승화하며 연대의 사랑을 실천한다.
최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다. 학부모의 민원에 견디지 못한 초임 교사의 사망 사건, 실종자 수색 중 순직한 해병대 일병의 사망 사건, 신림역 칼부림 사건 등 비참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러한 사건들은 한국에서만 벌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홍콩의 민주화 운동이나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과 같은 경우도 존재한다. 우리는 아주 먼 사회의 참사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는 나의 주변이 확장되어 세계의 참사가 나의 일이라고도 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참사를 남의 일로 내버려 둘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는 말과 같다.
늘 사회는 불합리함으로 가득했고 이를 모르진 않았지만, 날이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는 것은 체감할 수 있는 듯하다. 노동, 기후 위기 등 재난이 일상인 세계에서 우리는 주변에 벌어지는 참사를 눈앞에서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사건을 알고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슬픔을 느끼고 죄책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어른으로 살아가는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개인으로서의 나는 얼마나 작고 무력한가. 그렇다면 점점 개인화가 되어가는 사회에서 우리는 무력함 속에서 극복하지 못한 채 슬픔에만 잠겨 끔찍한 미래를 맞이할 수밖에 없는 걸까? 그것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아직 참사에 슬퍼하고 분노하는 용기가 있기 때문이다.
최지인의 시집 『당신의 죄는 내가 아닙니까』는 불합리한 세계의 모습을 드러내면서 그곳에서 살아가는 개인이 현실을 회피하지 않으며 직시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러한 태도는 자신의 죄책감을 숨기지 않겠다는 다짐으로도 읽히지만, 차별과 폭력에 놓인 다른 이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의지로도 읽힌다. 그렇기에 최지인의 언어는 무력한 개인을 무력하도록 두지 않는다. 손을 거들고 곁을 지키며 한마디씩 말을 보탠다. 보탠 말은 그림자가 되고 군중이 된다.
“죄를 짓지 않을 아이와 같은 해에 태어난 나는 그에 비해 안온한 시절을 보냈다 그의 모국 : “독재자에게 죽음을” 외치는 거리를 걷다 보면 죽은 자들이 또렷하게 보였다
그에 비한다면 나는 태어나선 안 됐다 그러니 할 수 있는 것을 하자 후를 도모하자
분노하라”
「커브」 중에서
최지인은 태어난 순간부터 되돌아보며 자신과 동시대에 태어난 다른 나라의 ‘그’를 생각한다. “독재자에게 죽음을” 외치는 거리에서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을 비교하는 행위는 안온하게 자란 죄책감을 생각하게끔 한다. 운이 좋게 평안한 삶을 산 ‘나’와 ‘나’에 비해 불합리한 삶을 온몸으로 살아온 ‘그’를 생각하며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부정한다고 해서 존재가 부정되진 않는다. 이미 일어난 사건 앞에서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야만 한다. 최지인은 후를 도모하기 위해 분노한다. 분노가 의지를 낳고 의지가 실천에 이르는 투쟁의 방향은 어딘가 단단하면서도 처연하다. 개인이 불합리한 사회의 구조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들이 있다. 혼자서는 불가능하기에 우리는 분노한다. 분노하는 사람이 모이게 되고 군중이 되어 어떠한 일을 가능하게 한다. 그것을 우리는 이미 지나온 시대의 모습에서 여러 차례 보았고 목소리가 할 수 있는 일을 믿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렇기에 분노한다.
“지난날 당신은 꿈이 있었다 들끓는 개미 어쩔 수 없는 마음
당신의 죄는 내가 아닙니까
이해한다는 말은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을 닮았다”
「두더지」 중에서
타인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은 멀리서 타인이 불타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사실 이젠 이해가 뭔지도 모르겠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이 정말로 그의 모든 것을 알고 받아들인다는 말은 아닐 테니까. 최지인은 그렇기에 되묻는다. “당신의 죄는 내가 아닙니까”라는 질문은 당신의 죄 또한 나의 죄이며 당신의 죄에 내가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 당연한 게 아닌지 되묻는 것이다. 죄를 저지르는 사람만이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세상에서 소극적인 자세로 무력하게 지내는 것을 인지한 사람은 그 죄에 가담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최지인의 질문은 이 시를 읽는 모두의 마음에 말뚝을 박는다. 말뚝을 볼 때마다 당신은 세계의 폭력을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그 폭력을 보고 계속해서 죄책감을 느끼게 될 거라고. 그렇게 된다면 목소리를 내게 되고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환대하고 배려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최근 벌어진 끔찍한 일들을 생각한다. 자신만의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일부의 미꾸라지가 물을 흐리고 흐린 물에서 점점 모두가 미꾸라지가 되어가는 난장판을 생각한다. 계속해서 화가 난다. 그리고 죄책감이 든다. 나는 무엇을 하는가. 나는 왜 아무것도 하지 않는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