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리, 『좋은 곳에서 만나요』(안온북스, 2023)
삶의 저편에서 바라보는
무너질 수 없는 사랑의 미래
202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부문으로 등단하여 『브로콜리 펀치』(문학과지성사, 2021)로 첫 소설집을 출간한 이유리 소설가의 첫 연작소설집 『좋은 곳에서 만나요』가 안온북스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죽음 이후의 세계를 따뜻한 상상력과 독특한 낙관적 태도를 통해 보여주었던 이유리는 이번 연작소설에서 긴 호흡으로 각각의 이야기를 관통하는 순간을 죽음이라는 현상을 통해 보여준다.
죽음 이후를 생각하지 않았다. 죽음의 이전을 삶이라 부르지만 이후는 무엇이라고 확실히 부를 만한 용어가 없었기 때문이다. 용어가 없다는 건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추상적인 현상에 어떤 생각을 더하거나 상상한 적은 딱히 없었다. 하지만 죽음과 삶을 생각해야만 하는 순간이 왔을 때 과연 죽음 이후의 나는 어떤 존재로 남아있을까, 나의 존재가 세계에 어떤 영향을 줄 수나 있을지 잠시 생각하기도 했다. 결론은 아무것도 남지 않았지만, 나를 제외한 나의 주변에 남은 나의 흔적이 나머지 사람들의 삶에 어떤 좋은 영향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귀결되곤 했다.
이유리의 『좋은 곳에서 만나요』는 여섯 편의 소설로 이루어져 있으며 모든 소설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은 이전에 수록된 소설에 등장한 화자와 아주 잠시 스쳤거나 얽힌 인물이다. 그들은 자신의 죽음 이후의 세계에서 스스로 생을 마무리하는 과정을 거친다. 죽음이라는 현상은 비통하고 슬픔으로만 읽힐 수밖에 없었을 텐데 이유리는 특유의 낙관으로 이러한 시선을 뒤엎는다. 슬픔은 더 세밀하게 묘사하면서도 그곳에서 발생하는 사랑과 기쁨, 스스로 발견하는 희망을 허투루 넘기지 않으며 그것을 확실히 바라본다. 그리고 기꺼이 희망의 곁으로 향한다. 희망의 옆으로 가는 길에 자신의 슬픔과 비통함을 모두 겪어야 해도 말이다.
그러나 수억만 분의 일의 확률로, 무작위로 내달리던 두 갈래의 빛이
어딘가에서 다시 겹쳐지는 찰나가 있다면,
나는 이제 알고 있었다.
그 찰나를 붙잡아두는 방법을,
그저 소중하고 소중하게 누리는 방법을.
「아홉 번의 생」 중에서
이유리의 소설은 뻔한 것을 뻔하지 않게 말하려고 한다. 죽음의 문턱을 넘은 화자들이 자신이 몸담았던 세계의 모습을 바라보며 어떤 희망과 사랑을 얻는 내용을 이유리의 시선으로 재해석한다. 마치 앞으로만 보면서 가던 길을 뒤를 돌아서 뒤로 걷는 기분이라고 해야 할까. 화자가 겪었던 찰나를 다시 돌아보며 급하지 않게 결론에 도달하려 한다. 심지어 결론에 도달하지 않아도 화자가 직접 두 눈으로 희망을 보게끔 하여 그 희망이 미래에 닿을 것이라는 확신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나는 이유리의 언어가 단언하지 않아서 좋았다. 확실한 건 없다고, 찰나와 과정이 합쳐져 복잡하고 다채로운 세계를 재현하는 능청스러움도 좋았다. 이러한 이유리만의 소설은 당혹스럽고 어두운 세계에 사라져 가는 희망과 사랑의 자리를 마련하고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미래를 낙관으로 확장한다.
그리고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 해답은 내버려두는 일,
다만 그것뿐이었다는 사실을.
세계에 일어나는 일들을 한발 물러나서 즐거운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
불완전함에서 완전해지려고 안간힘을 쓰는 이들을
다만 애정 어린 눈으로 끝까지 지켜보는 것.
「이 세계의 개발자」 중에서
이유리는 불완전한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 걸까. 그는 세계의 개발자가 되어 세계를 이해하려 한다. 어떻게 우리가 사는 세상을 짓고 부수며 사람을 살게 하는 걸까. 계속해서 오류가 발생하고 그것을 고치는 신의 입장을 게임 개발자인 화자의 모습을 통해 독자에게 보여준다. 완전함에 다다르는 길은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사건을 통해 보여주며 이유리가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안간힘을 쓰는 사람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는지 알려준다.
이는 나라는 인간을 어떻게 사랑하고 그 사랑을 삶의 먼 미래까지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지를 말하는 것과 같다. 조금 더 가벼워지기. 애를 쓰면 쓸수록 점점 더 깊은 방파제로 빠져드는 것처럼 가볍게 오르는 일만이 전부일 때는 그것을 행하기. 단순한 삶의 태도가 어쩌면 영원하지 않은 세계의 메커니즘을 설명할 수 있는 단서가 되지 않을까. 이유리는 자신만의 낙관적인 태도로 그것을 시도하려 한다.
유령의 모습이나 다른 존재의 모습으로 사랑을 직접 확인하려는 이유리의 태도는 현재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에게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냉소적이고 딱딱한 태도가 기저에 깔리게 되는 세계에서 영원을 쫓고 사랑을 하겠다는 고백은 낭만을 넘어 어떤 의지로도 읽힌다. 영원히 영원을 찾아 사랑을 멈추지 않는 사람들의 용기는 세상의 그 어떤 냉소보다 더 단단하고 깨지지 않을 것만 같다. 이러한 태도는 독자들에게도 영원과 사랑을 믿을 수 있게끔 도와줄 것이다. 적어도 나는 이유리가 행하고 입증하려는 사랑의 미래가 좋은 곳으로 갔으면 좋겠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