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SF 어워드 대상 수상 작가인 최의택의 첫 소설집 『비인간』이 읻다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비인간’을 자처하며 비인간의 자리에서 인간은 무엇인지 질문하고 ‘정상’이라는 일그러진 울타리를 세우는 태도의 기괴한 모습을 소설에 담아냈다. 동시에 울타리 안으로 직접 들어가 ‘보통’의 세계에서 보통이라 불릴 수 없는 대상들의 삶을 조망한다.
사람은 다수의 인간이 살아가는 방식에서 어긋나면 그것을 교정하려 하거나 없애려 하고 배척하려는 경향이 있다. 초등학교에는 특수반이 있었고 중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는 아예 장애인을 학교에서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알게 모르게 집단과 집단이 나뉘고 그들과의 거리가 아주 멀어지게 되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나와 비슷한 사람들과 지냈고 경쟁했으며 삶을 살아왔다. 이러한 집단의 분리는 나의 삶에 있어야 할 다른 집단의 자리를 점점 좁게 만들고 결국 다양성 자체를 목격하기 어렵게 하여 서로를 불편하게 느끼도록 사회가 설계한 것은 아닐까.
소외된 집단에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포함하여 더 많은 집단이 있다. 젠더, 장애, 노동, 동식물 등 찾아보면 더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약자라고 불리는 집단을 소외한 이후의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 부직포가 떠오른다. 바닥을 닦는 부직포는 어느 정도 닦으면 교체를 해줘야 한다. 기능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상’의 사회가 정말 만들어진다면 ‘정상’ 속에서 발생하는 또 다른 ‘비정상’을 교체하고 또 발생하면 교체하는 기이한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마지막에는 ‘정상’이라는 타이틀을 지킬 사람조차 남아나지 않을 것이다. 이제는 다시 의미를 정해야 한다. 인간은 무엇이며, 인간다움은 무엇인가.
최의택의 『비인간』에서는 세상이 나쁘고 차별을 자행한다는 단순한 약자의 외침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처음부터 ‘정상’이라고 불리는 냉혹한 인간의 사회를 ‘비인간’의 모습으로 체험하며 사회를 바라본다. 이러한 접속의 방식은 당위를 만든다. 어쩌면 너무나도 차가울 정도로 세계의 폭력을 적나라하게 내놓으면서 사회가 정한 울타리에서 벗어났을 때 겪을 수 있는 경험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독자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사회가 정한 정상의 울타리에 몸이 걸려 불편함을 겪게 되고 소수의 입장을 알 수 있게 된다. 최의택은 이러한 의도를 SF를 통해 마련한다. 그리고 그저 ‘극복’이 아닌 ‘나’일 수 있도록 살아가고 싶은 ‘비인간’의 삶을 열 편의 단편소설로 말한다.
아라, 나예요, 나무.
이렇게 멋대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배포한 것 미안해요.
하지만 이 장치는 내가 사는 집이고 나의 세계니까 이해해주리라 믿어요.
만약 이해받을 수 없다면, 이건 어떨까요.
마지막이니까.
그럼 안녕, 아라.
안녕, 나의 세상.
「나무의 손」 중에서
‘비인간’이라고 하면 차별받는 ‘사람’에 초점이 맞춰질 수도 있지만, 동식물을 포함하여 AI 등과 같은 기계 또한 ‘비인간’ 중 하나다. 최의택은 여러 비인간의 모습을 통해 현실에서의 비인간의 자리를 비춘다. 「나무의 손」 또한 마찬가지이다. 자세한 서사를 전부 말할 순 없지만, 주인공인 아라는 교수의 AI를 넘겨받고 AI의 이름을 나무라고 지으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AI는 인간의 지시만을 따르고 을의 존재로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나무의 손」에서의 나무는 AI이지만 아라에게 부담을 주기 싫어 스스로 지워지길 선택한다. 사람이 자살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아라의 의도는 나무가 있길 바랐기에 다시 나무를 작동시키고 처음부터 관계를 맺으려 한다. 이러한 서사는 무엇을 비추는 것일까.
이 둘의 관계를 해석하는 것보다 아라가 나무를 대하는 방식 등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아라는 다시 나무를 작동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고 나무는 자신이 미안함을 느끼고 스스로 사라질 때마다 다시 기억이 사라진 채로 깨어날 것이다. 그러나 이 나무를 단순한 나무로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나무1, 나무2…… 무한으로 발생하는 나무는 각각 다른 나무로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계속해서 교체되는 소수의 약자로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나의 입장에서는 일방적으로 사용되고 버려지는 소수자의 느낌을 받기도 했다. 재생산되는 이러한 불평등이 기이하게 느껴졌다. 최의택은 이러한 소설들을 통해 무작정 약자의 불편만을 말하는 것이 아닌 다양한 ‘비인간’의 모습으로 ‘다수’의 입장이 우선시되는 세계를 살아가면서 볼 수 있는 다방면의 현상을 비춘다. 이를 통해 독자는 ‘비인간’이 살아가는 울타리를 경험해 볼 수 있고 울타리를 직접 부수고 싶다는 마음까지 품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요즘 나는 다수의 이해 방식을 이해할 수 없고 어렵다고도 느낀다. 인터넷의 댓글과 사회적으로 벌어지는 사건들. 약자를 더욱 약자로 대상화하면서도 서로를 비방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사람들. 하지만 어려운 것을 어렵다고 그대로 둘 순 없을 것이다. 계속해서 고민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존재로서 다른 소수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같은 존재라는 측면에서 우리는 모두 같다. 여기서 우리는 모든 존재이다. 그 기이한 인간다움을 지키기 위해 인간다움을 포기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시대의 새로운 인간다움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두고 배척하지 않는 존중이 아닐까. 무관심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존재가 존재를 존중하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