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민석, 한은형, 성해령, 성해나, 『여름기담:매운맛』(읻다, 2023)
읻다 출판사의 여름 앤솔로지 소설집 『여름기담:매운맛』이 『여름기담:순한맛』와 함께 출간되었다. 『여름기담:매운맛』에는 백민석, 한은형, 성해령, 성해나가 참여했다. 이들의 작품은 사람에 의한 무서움이나 기계, 미래와 같은 현실에서 직면할 수 있는 공포를 독자에게 선사하며 한여름의 더위를 잊을 수 있게끔 한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학교에서 어떤 공포영화를 본 적이 있다. 그때는 정말로 귀신이 있다면서 학교의 괴담을 이야기하거나 구전으로 이어지던 유명한 괴담을 나누는 것이 재밌기도 했다. 빨간 마스크나 학교의 동상이 움직인다거나……. 무서운 이야기가 끝이 나면 아이들은 무서워 서로의 손을 잡고 지는 해를 뒤로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지금 생각하면 귀신이 있다고 믿을 수 있던 시절은 어떤 낭만이 존재하던 시절이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2020년 이후로 개봉된 영화 중 귀신이 등장하는 영화는 과거 00년대보다 훨씬 줄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만이 등장하는 공포영화와 비교하였을 때 관객 수, 별점 등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낮다. 이제는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던 옛말이 정말 현실로 이루어진 것이다. 사람은 어떻게 해서 귀신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될 수 있었을까. 화들짝 놀라고 사라지는 단순한 감정의 발화는 시대가 흘러가고 고차원적으로 발전함에 따라 다방면으로 변화되는 듯하다. 처음에 정말 무섭다고 느끼는 반응은 이제 더는 사라지지 않고 표현할 수 없는 끝까지 남아있게 된다. 기묘하면서도 계속 곱씹을수록 기분 나쁘고 서늘한 감정을 사람이 사람에게 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감정의 발전은 발전이라 불러야 하는지 퇴화라고 불러야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여름기담:매운맛』에서는 제목의 “매운맛”에 가깝게 조금 더 무섭고 찝찝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물론 사람이 저지르거나, 미래, 기계의 영향으로 발현하는 공포이다. 저자들은 “매운맛”을 각자의 시각에서 해석한 듯하다. 백민석은 나무의 입장에서 바라본 인간이라는 종의 기괴함을 말하는가 하면, 한은형은 어린 시절 만난 스님과 20년 후에 만나 과거와 미래를 살펴보고, 성해령은 별장에서 타인에 의해 발생하는 찜찜한 이야기를 선보이고, 성해나는 인간이 아닌 AI를 등장시켜 기계를 보며 느낄 수 있는 공포에 관해 말한다. 이렇게 다양하게 준비된 “매운맛” 소설들은 어딘가에서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일이면서도 절대 만나고 싶지 않은 일들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인간적으로 ‘매운’ 느낌을 준다. 무섭게도 말이다.
이곳엔 인간이 몇이나 될까.
「아미고」 중에서
성해나의 「아미고」는 네 편의 소설 중에서 조금 더 미래에 가까운, 훗날의 공포를 담고 있다. 고도로 발달한 AI가 한 개인의 미래까지 완벽히 예측한다면, 인간이 신이라 불리는 존재에 가까운 대상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공포를 무엇이라 설명하면 좋을까.
주인공 ‘조’는 스턴트맨이며 촬영 중 사고를 겪고 쉬었다가 다시 현장에 복귀하게 된다. ‘조’가 사는 시대는 인공지능 스피커가 비서의 역할을 하며 스턴트를 맡아서 하는 로봇 ‘아키마H1’까지 있다. 처음에는 딥러닝을 하지 못해 기능이 떨어졌지만, ‘조’가 쉬고 온 뒤 ‘아키마H1’은 자신이 ‘아미고(친구)’라고 부르는 사람들을 모두 대체할 만큼 성장하여 디렉터스 체어에 앉을 수 있는 로봇이 된다. ‘아키마H1’은 자신이 ‘조’와의 스파링에서 졌을 때 ‘조’에게 “저 얼굴들을 잘 기억해 둬요. 그리울지도 모르잖아요.”라고 말했고 그 말이 실제화되었을 때 ‘조’는 기이하면서도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예측이 계속되고 들어맞게 되는 현상을 작가는 독자들에게 보여주면서 어떤 것을 말하려 하는 것일까.
성해나는 작가의 말에서 “미끈하고 잡음 없는 삶”에 관해 말한다. 자신이 챗GPT를 이용했던 이야기를 전하면서 미래를 예측하는 기계에 대한 실체 없는 공포를 소설에 적용한 듯하다. 사람도 아닌(점성술사라면 모를까) 기계가 점치는 미래에 인간이 있을 때 그는 기계의 손바닥 안에서 움직이는 말과 같은 기분을 느낄 것이다. 인간 중심적인 생각이긴 하지만, 인간이 만든 기계에 인간이 휘둘릴 수도 있다는 공포는 쉽게 지울 수 없는 듯하다. 먼 미래에는 이러한 이야기가 정말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까. 그땐 이미 감정이라 부르는 것이 쓸모의 유무를 따져 느낄 수 없게끔 설계되어버릴 수도 있다. 어떤 조작이나, 더 커다랗고 무서운 기계의 손에 의해서 말이다. 이것은 정말 공포다. 현실에 가까워서 공포다.
현실에 가까울수록 공포라고 부르게 된다면, 미래는 공포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을 믿는 사람이 있어 공포는 설렘으로 바뀌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미래의 설렘이 점점 공포에 가까워지는 것을 부인할 수 없어서 애써 웃는 얼굴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미래가 있다. 나는 이런 미래가 무섭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