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노 루리코, 『헨젤과 그레텔의 섬』(읻다, 2022)
동화의 미로 속으로
미즈노 루리코, 『헨젤과 그레텔의 섬』(읻다, 2022)
유년의 기억이 가득한 외딴섬으로
이어지다가 기어이 멀어지는 기억을 말하다
읻다 출판사 시인선에서 출간된 일본의 시인 미즈노 루리코의 『헨젤과 그레텔의 섬』이 2022년에 출간되었다. 시인은 1932년 도쿄에서 태어나 세계대전을 유년에 겪고 오랜 시간이 흘러 쉰이 될 무렵에 자신이 감당해야 했던 공포와 슬픔을 「헨젤과 그레텔의 섬」으로 형상화했다. 그렇게 탄생한 시집 『헨젤과 그레텔의 섬』은 어딘가 쓸쓸하면서도 두려움이 기저에 깔려있고 화자의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길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길에서 독자는 미즈노 루리코가 마련한 판타지적인 세계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부터 “작고 투명한 유리잔 같은 여름”(「헨젤과 그레텔의 섬」 중에서)이 환하게 열리는 세계를 사랑하게 될 것이다.
나에게 외국 시는 한국 시보다 조금 더 직관적이고 크고 어딘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내겐 영미 시가 그랬고 한동안 멀리했다가 제임스 테이트의 『흰 당나귀들의 도시로 돌아가다』(창비, 2019)를 읽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 뒤로 외국 시를 종종 보았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이것도 어쩌다 보니 읻다에서 출간된 것이긴 하지만) 사가와 치카의 『계절의 모노클』(읻다, 2022)이었다. 맑고 투명한 모노클을 엿보는 느낌이었고 원래 일본 문학을 좋아하긴 했지만, 일본 시의 매력도 있다는 걸 이때 알게 되었다.
이번 서포터즈 활동 도서 중 하나인 『헨젤과 그레텔의 섬』은 『계절의 모노클』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조금 더 판타지적인 느낌이 강했고 시인이 유년의 기억을 기반으로 시를 쌓은 만큼 감각적인 요소가 많았다. 기억으로 만든 동화를 읽은 느낌. 하지만 유년의 기억은 다 자란 지금에서 찾으려고 해도 찢겨 있거나 사라져 찾을 수 없다. 일부의 기억으로 잠시 엿보았다가 바로 사라지는 것을 눈앞에서 스스로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시인은 이러한 행위를 반복해서 하지 않았을까. 신비로운 세계를 만나기 위해 자신의 아픈 기억을 꺼내 남은 것들이라도 제대로 보려고 상처에 상처를 더 낸 건 아닐까. 상처에서 가지가 돋는다는 건 이후의 이야기. 독자인 나는 그 경로를 따라 걸어본다. 예측할 수 없는 동화의 미로 속으로.
어두운 그림이구나 어머니가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회색빛 나무」 중에서
시집에 나오는 화자는 유년 시절의 시인처럼 보인다. 화자는 죽은 자신의 오빠와 함께 어머니나 아버지를 기다리면서 어디론가 떠나기도 하고, 도라를 찾기도 하고(「도라의 섬」), 거대한 새인 모아가 있던 하늘을 생각하기도 하면서(「모아가 있던 하늘」) 무언가가 있던 자리를 계속해서 생각하거나 찾으러 간다. 훼손되었거나 이미 사라진 것들을 생각한다는 점에서 시인은 자신의 유년에 잃어버렸던 기억을 찾으려는 행위를 거듭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판타지적인 세계를 기억하려는 시인의 행위는 자신이 돌아갈 수밖에 없는 유년의 기억에 두고 온 무언가를 다시 한번 만나기 위함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추억을 되새기며 “번역도 통역도 할 수 없는 침묵의 세계”(「시인의 말」)를 들여다본다. 동화적인 요소는 어쩌면 자신이 겪었던 전쟁과 끔찍한 기억을 자신도 모르게 순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너무 아픈 기억은 떠올릴 때마다 힘들어 자신이 경험하지 못한, 혹은 경험한 감각적인 현상을 아름다운 이미지로 치환하여 스스로 계속 들여다볼 수 있게 치장한 것일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기억의 알맹이를 찾기 위해, 여러 생명을 화자와 동등한 위치에 두며 망가진 기억을 선명하게 바라보기 위함이다.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두렵고 힘든 기억 앞에서 한 사람은 지극히 작아진다. 하지만 기억을 바라보고 어떤 것으로든 표현하려 한다면 두려움은 뜻이 되고 무언가가 된다. 그 무언가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 독자의 입장으로 이번 시집에서는 시인의 귀한 어떤 기억을 잠시 관람한 것 같다. 어쩌면 나에게 시인이 가진 기억의 거리감이 스며들었을지도 모른다. 사랑이라 부르는 작고 투명한 여름이 『헨젤과 그레텔의 섬』을 펼치는 순간 독자를 환하게 비추고 조금 따가울지도 모른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