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구, 『세모 네모 청설모』(현대문학, 2023)
곁에 있는 누군가와 함께
민구, 『세모 네모 청설모』(현대문학, 2023)
조용하지만, 고요하지 않은
당신의 세계가 흔들릴 때 믿고 쥘 수 있는
"좋은 징조"의 장면들
현대문학 출판사의 한국 문학 시리즈인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의 마흔아홉 번째 시집으로 민구의 『세모 네모 청설모』가 출간되었다. 『배가 산으로 간다』, 『여름이 오려면 당신이 필요해』에 이어 세 번째 시집을 출간한 민구의 『세모 네모 청설모』는 일상적 세계를 비트는 독특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집이다. 덤덤하고 조용하지만, 심심하지 않고 웃다가 웃을 수 있는 민구의 시를 통해 일상에서의 행복을 몸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주부터 총 네 번, 그러니까 한 달 가량 매주 시 한 편을 필사할 것이다. 매번 서평단만 신청하던 나는 필사까지 하게 되었다. 필사라는 것을 군대 이후에 해보지도 않았던 나라서, 글씨가 어긋나고 띄어쓰기를 애매하다. 하지만 필사는 필타처럼 시를 새긴다는 감각이 좋아 시도할 때마다 기쁜 마음으로 하게 되는 것 같다. 매주 목요일마다 민구 시인이 직접 골라주신 본인의 시를 필사하면 되는 듯하다. 그래서 미리 읽지 않았다. 마음먹으면 하루 만에 다 읽을 수도 있을 분량의 시집이지만, 조금이라도 천천히 맛을 보면서 읽고 싶었다. 그의 시에는 나도 모르게 나를 멈춰 세우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민구의 시는 언제 어디서나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그의 첫 시집과 아침달에서 출간된 두 번째 시집을 포함해서 말이다. 정갈하고 무난하다. 정갈하다는 말과 무난하다는 말은 시인에게 안 좋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것을 자신의 색으로 만든 시인은 많지 않다. 정갈하고 무난한 식사는 언제 어디서든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기도 하다. 그런 것 같다. 민구의 시는 읽을 때마다 맛이 좋다. 그의 비법으로 만들어진 정갈함과 무난함은 쉽지도, 가볍지도 않다.
이번 주에 내가 쓰게 된 시는 「평평지구」이다. 제목만 보면 래퍼 김상민그는감히전설이라고할수있다의 지구는 평평해 2가 떠오르기도 한다. 민구 시인에게 평평지구란 어떤 의미인가. 시에서는 “피켓을 든 사람”과 “비난하는 사람”들이 서로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함께 눈을 맞으면서 싸우는 내용이다. 그 장면을 화자는 녹색불이 켜지길 기다리며 보고 있다. 화자는 건너려는 와중에 “지구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다가/ 건너가도 좋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이러한 말을 한 사람은 신이다. 신은 “평평하지 않고 공평하다"라는 조건이 화자에게 있다면 세모로 건너가거나 네모로 혹은 청설모로 건너게 될 거라고 한다. 다만 “공허한 행성”이라면 “낭떠러지로 향하는 이정표” 혹은 물음만이 가득한 공간으로 건너게 될 것이라고 한다. 여기서 나는 공평과 공허를 믿음을 대하는 자세로 받아들였다. 다른 의견을 가진 자들을 공평하게 생각한다면 네모든 세모든 청설모든 각자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공간으로 건너갈 수 있지만, 그게 아니라면 공허한 물음표가 가득한 낭떠러지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 아닐까. 화자도 결국은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물음표가 쏟아지는 공간으로 넘어가겠지만, 엄마가 낫고 검은 머리가 났을 때는 평평지구일 것이라며 시는 끝난다. 이는 영원히 그럴 일이 없다는, 지구가 평평할 리 없다는 화자의 생각을 보여주는 동시에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지구가 평평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보여준다.
「평평 지구」는 사람에 따라서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를 것 같다. 나의 해석은 이러하지만, 다르게 생각해 본다면 신이라는 존재를 생각해 볼 수 있겠고, 비난하는 사람의 태도나 주장하는 사람의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민구의 시에는 이처럼 쉽게 읽히지만 다양한 지점을 건들면서도 깊게 생각할 수 있는 힘이 있는 듯하다.
당신의 지구는 어떤지, 그 지구는 평평한가요? 아니면 둥근가요. 혹은 다른 형태로 이루어져 있나요? 내가 사는 지구는 사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