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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태훈 Dec 25. 2023

[핀사단] 『세모 네모 청설모』
민구 / 「한 사람

민구, 『세모 네모 청설모』(현대문학, 2023)


곁에 있는 누군가와 함께

민구, 『세모 네모 청설모』(현대문학, 2023)




조용하지만, 고요하지 않은


당신의 세계가 흔들릴 때 믿고 쥘 수 있는

"좋은 징조"의 장면들


현대문학 출판사의 한국 문학 시리즈인 <현대문학 핀 시리즈> 시인선의 마흔아홉 번째 시집으로 민구의 『세모 네모 청설모』가 출간되었다. 『배가 산으로 간다』, 『여름이 오려면 당신이 필요해』에 이어 세 번째 시집을 출간한 민구의 『세모 네모 청설모』는 일상적 세계를 비트는 독특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시집이다. 덤덤하고 조용하지만, 심심하지 않고 웃다가 웃을 수 있는 민구의 시를 통해 일상에서의 행복을 몸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주부터 총 네 번, 그러니까 한 달 가량 매주 시 한 편을 필사할 것이다. 매번 서평단만 신청하던 나는 필사까지 하게 되었다. 필사라는 것을 군대 이후에 해보지도 않았던 나라서, 글씨가 어긋나고 띄어쓰기를 애매하다. 하지만 필사는 필타처럼 시를 새긴다는 감각이 좋아 시도할 때마다 기쁜 마음으로 하게 되는 것 같다. 매주 목요일마다 민구 시인이 직접 골라주신 본인의 시를 필사하면 되는 듯하다. 그래서 미리 읽지 않았다. 마음먹으면 하루 만에 다 읽을 수도 있을 분량의 시집이지만, 조금이라도 천천히 맛을 보면서 읽고 싶었다. 그의 시에는 나도 모르게 나를 멈춰 세우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민구의 시는 언제 어디서나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문학동네에서 출간된 그의 첫 시집과 아침달에서 출간된 두 번째 시집을 포함해서 말이다. 정갈하고 무난하다. 정갈하다는 말과 무난하다는 말은 시인에게 안 좋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다만 이것을 자신의 색으로 만든 시인은 많지 않다. 정갈하고 무난한 식사는 언제 어디서든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기도 하다. 그런 것 같다. 민구의 시는 읽을 때마다 맛이 좋다. 그의 비법으로 만들어진 정갈함과 무난함은 쉽지도, 가볍지도 않다.


이번 주에 내가 쓰게 된 시는 「한 사람」이다. 시집의 첫 시에 들어가는 만큼, 시집이 보여주려는 세계의 느낌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시라고 생각된다. 화자는 "사람들과/ 원탁에 둘러앉아" 대화를 나누지만 심드렁하다. 함께 있던 이들이 모두 돌아가고 바닥을 닦으면서 아주 작고 사소한 이야기를 생각한다. 그것은 "고장 난 라디오에서" 음악이 나온다는 불가능한 현상처럼 아득한 일 같기도 하다. 다만 모두가 돌아가고 파티가 끝난 자리에서 "한 사람이 잠에서 깨기만을" 기다리는 화자의 모습은 그 불가능한 현상을 직접 보고야 말겠다는 어떤 의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에겐 각자만의 한 사람이 있다. 그가 오기를 기다리며, 잠에서 깨어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픈 사람이 마음 한편에 존재할 것이다. 민구는 자신만의 한 사람을 기다린다. 그 사람은 독자일 수도 있지만, 독자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그저 "사소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필요한 것일지도 모른다.

「한 사람」이라는 시를 통해 시집의 초입에 들어선 우리는 민구의 시를 사소하지만, 한 사람을 기다리고 그 사람과 나눌 이야기를 소분해서 포장한 듯한 느낌으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나는 종이를 넘기며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한 사람을 생각하고, 그 사람의 이야기를 궁금해한다. 민구의 시는 다음을 생각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리하여 한 사람은 언제 일어날까. 그때까지 우리는 민구의 시를 더 들여다봐도 좋을 것이다.

본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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