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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정원 Feb 11. 2019

누구나 쓰고, 아무도 읽지 않는

오랜만에 서점에 갔다. 누구는 서점에 놓인 수많은 책들 속에서 설렐 수도 있을 것이고, 누구는 책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는 이 책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누군가의 선택을 책등 빠져라 기다리고 있는 것만 같다. 누군가의 선택을 받아야만 살아남는 것은 자본주의 사회의 당연한 이치겠지만 이상하게 서점만 가면 특히 그런 생각이 많이 든다. 소리 없는 아우성, 침묵의 절규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지금 "누워"있는 책들은 언젠가 서기 마련인데 서점에서 책이 "섰다"라는 것은 자연 판매의 가능성이 제로라는 것을 의미하고, 그렇게 오래도록 서 있는 책은 종내에는 다시 어두컴컴한 어느 출판사의 물류 창고로 들어가는 운명을 맞을 것이다. 이것은 일부 베스트셀러를 제외한 거의 모든 책이 겪어야만 하는 비극적 서사다.


누구나 자기의 생각을 말하고, 쓸 수 있게 되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글쓰기 책은 이제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아무도 읽지 않는 시대에, 쓰기 위한 책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것은 조금 쓸쓸한 일이다. 


나는 최근 몇 달간 허송세월을 보내다가 문득,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때 등단이라는 길을 걸어서 글로 이름을 떨치고 싶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좋은 글을 쓸 수 없다면 쓰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수많은 밤과 낮 동안 인물을 만들고, 상황을 던져놓고, 사건을 구성하며 거대한 세계를 직조하고 그것을 깎고 다듬고 부수고 재조립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상을 들여다보고 나는 이내 절망했다.


좋은 글이 아니라는 것을, 좋은 서사가 아니라는 것을, 재미있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어렵지는 않았지만 아팠다. 볼 줄 아는 눈은 있어서 다행이다,라고 자조적으로 읊조리면서 내가 만든 세계를 영원히 묻었다. 오래전 이야기다.


그리고, 다시 무언가를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꾸준함을 이길 그 무엇도 없다는 말을, 1만 시간의 법칙 같은 말을 나는 믿지 않는다. 글쓰기의 힘 같은 것이 있다고 딱히 생각하지 않는다. 반 고흐가 했다는 "만약 가슴 안에서 나는 그림에 재능이 없다는 음성이 들려오면 반드시 그림을 그려보아야 한다. 그 소리는 당신이 그림을 그릴 때 잠잠해진다."는 말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그 말의 화자가 반 고흐라는 것 말고는 어떤 것도 없다. 아쉽게도 나는 반 고흐가 아니다. 


내가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쓰지 않는 것보다 쓰는 것이 낫기 때문이라는 단 하나의 이유다. 나는 매일 쓸 것이다. 쓰기 위해 세상과 사람과 사물을 관찰할 것이다. 경향을 파악하지 않고, 나와 타인을 들여다볼 것이다. 쓰기의 목적은 없다. 가치 없고 의미 없고 쓸모없는 것을 매일 한다는 것은 즐거울 지도 모른다.(모든 글쓰기가 그렇다는 말은 아니다, 나의 글이 그렇다는 말일 뿐) 쓰려는 사람은 많고, 읽으려 하는 사람은 적어서 슬프고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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