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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정원 Feb 11. 2019

밥상 이야기

지금처럼 혼자 밥 먹는 것이 아무렇지 않게 여겨지기 전부터 꽤 오랜 시간 동안 혼자 밥을 먹어왔다.

서울살이도 벌써 10년 차에 들어섰으니 나의 혼밥 역사도 어언 그 정도가 될 것이다. 아무렇지 않게 혼자 고깃집을 들어가 "일 인분 됩니까"를 묻기까지, 누구 말처럼 식당에서 "혼자 오셨어요?"라는 질문이 쟤는 친구도 없는 찐따라서 식당 같은데 혼자 오게 생겼네 라는 비아냥이 아니라 그냥 일 인분만 세팅하면 될지를 물어보는 것이라는 걸 알기까지는 쉽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오롯이 혼자임을 즐기고 싶어서가 아니라 함께 끼니를 나눌 사람이 없어 혼밥을 해야 했던 많은 시간들은 추억도 뭣도 아니고 그저 서글프고 팍팍한 서울살이의 단면일 뿐이지만 그래도 좋든 나쁘든 살아남았다는 것에 대한 증명일 테다.


자주 가던 홍대 근처 3500원짜리 밥집이 문을 닫아서 혼자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던 어느 밤에 나는 앞으로 밥을 사 먹지 말아야겠다는 원칙을 그야말로 뜬금없이 세웠다. 그 당시의 나에게 식사란 그저 하루를 견디기 위한 방편이었으며 또한 우울이었는데, 밥을 사 먹지 않겠다는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굶어 죽지는 않을 거라는 다짐 비슷한 것이었으며 나에게 할 수 있는 한 좋은 밥상을 차려 맛있는 음식을 먹게 하자는 마음이었다.


아쉽게도 그때는 집밥 백선생이 활동하기 전이라 내 요리는 거의 별로였는데 가끔은 정말 그럴듯한 음식을 만들어 냈던 때도 있었다. 그런 날엔 대게 비틀스를 들었다. 그때, 창전동의 어느 허름한 반지하 방에 "Sgt. Pepper's Lonely Hearts Club Band" 나 "Revolver" 같은 앨범을 걸어놓고 흥얼흥얼 거리며 두부김치 같은 걸 만들어 먹던 스물몇 살의 청년이 있었다. 아무것도 보장되어 있지 않았고, 모든 것이 낯설고, 하루하루는 온통 흐릿하기만 했던 서울에서 확실한 것이라곤 내가 만든 이 음식과 로큰롤 밴드의 아름답고 시끄러운 사운드뿐이었다.


그때 살던 빌라에는 나만 빼고는 모두 가족들이 거주했는데, 이 건물에선 그야말로 늘 집밥 냄새가 났다. 어떤 날은 된장찌개, 어떤 날은 김치찌개, 어떤 날은 해물탕, 어떤 날은 삼겹살 등등 종류도 다양하다. 그 냄새들은 따뜻하고, 다정하고, 단란하고, 풍족했지만 나의 것은 아니다. 그 음식 냄새를 뚫고 싸늘한 집으로 올라와서 음식을 만들다가 "집밥" 이란 결국 함께 밥상을 나눌 이, 그리고 누군가의 시간과 정성이겠구나 싶었다. 

  

"잔치는 끝이 났지만 인간은 다시 끼니를 챙긴다. 사실 밥상이란 마음이 혹하는 찬 하나만 있어도 만족스러운 것이다. 그리고 밥. 사람을 집으로 초대한다는 것. 내 식탁에 당신을 초대한다는 것. 밥을 나누는 것은, '나 이런 사람이요.' 나를 보여주고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밥상을 보면 사람이 보인다.

-권산. 지리산 닷컴 중-


그런 날들을 한참 지나서야 겨우, 권산 선생의 저 글을 공감하게 되었다. 그렇게 누군가를 나의 밥상에 초대하기까지 몇 년쯤 걸렸다. 나는 여전히 꽤 많은 날들을 혼자서 밥을 먹는다. 하지만 서럽거나 우울하지 않다. 

이제 요리를 꽤 잘하게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고, 마음먹는다면 함께 밥을 먹어줄 사람이 여럿 생겨서 일수도 있고, 그냥 시간이 많이 지나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당장 나를 위한 밥상을 차릴 줄 알면 "서러운" 혼밥의 날을 좀 덜 힘들게 맞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 "아무렇지 않은" 혼밥, 심지어 "즐거운"혼밥의 날이 오고야 마는 것이다. 하다못해 "지긋지긋한"혼밥도 "슬픈"혼밥보다는 낮지 않겠나.


자신의 끼니를 자신이 스스로 챙길 줄 알게 되는 순간 우리는 아주 조금 어른이 된다. 불쌍한 스스로와 불안한 하루하루가 아주 조금 안심이 된다.


나에게 세상은 여전히 수상한 질서로 가득 차 있고

아무것도 담보하지 못한 채로 오늘을 살아왔다.

그래서 나는 다만 내 앞에 놓인 내가 차린 한 끼의 힘을 믿는다. 

그게 오늘과 별다를 것 없는 내일을 살아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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