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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의정원 Feb 11. 2019

연애담 1.

산울림과 날카로운 첫사랑의 추억

그러니까 열세 살 무렵이었다. 하고 싶은 게 없었고, 좋아하는 게 없었다. 산다는 건 그저 지루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지금 돌아봐도 좀 희한한 아이였다. 그러던 중에 부모님의 강요로 학원을 다니게 되었는데, 거기서 그녀를 처음 만났다. 머릿속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희고 고운 아이였다. 배꽃 같다고 해도 좋고, 백합 같다고 해도 좋았다. 의욕이란 것이 없던 소년은 처음으로 하고 싶은 게 생겼고 좋아하는 게 생겼다. 아! 사랑은 참, 위대하기도 하여라.

잠 못 이루던 어느 밤에 종종 라디오를 들었다. 이주노가 DJ를 하던 프로그램에 게스트로 나온 김동률이 선곡한 산울림의 “회상”은 불타는 가슴에 더할 나위 없는 기름이 되었다. 음악이란 것은 이렇게나 좋고, 이렇게나 슬픈 것이었구나. 전주도 없이 “길을 걸었지~ 누군가 곁에 있다고 느꼈을 때~ 나는 알아버렸네 이미 그대 떠나 버린 후라는 걸” 로 시작하는 노래와 김창완 아저씨의 목소리는 소년의 가슴을 찢었다. 바야흐로 열세 살이었고, 첫사랑이었다.

HOT와 젝스키스가 유행하던 시절에 나는 산울림을 비롯한 옛 가요들을 듣기 시작했다. 친구들과 선생님 사이에서 나는 "이상한 아이"로 통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세상이 온통 그녀였는데, 폼생폼사나 캔디로는 사무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없었으니까.

‘회상’을 들으면 그녀가 생각났고,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를 들으면 그녀가 그리웠고, ‘내게 사랑은 너무 써’를 들으면 그녀가 아팠다. 숱한 불면과 가슴앓이의 나날들을 보내다가 결심했다. 고백하자. 과감하게. 그리워 죽으나, 차여서 부끄러워 죽으나 마찬가지 아닌가. 문제는 "어떻게?" 였는데, 막 첫사랑에 빠진 열세 살 짜리 남자아이가 좋아하는 여자아이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지 알 리 없었다. 머리를 짜내고 짜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나는 비장의 고백을 준비했다. 결국, 준비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때는 몰랐지. 그게 인생에 길이길이 기억될 부끄러움의 시초가 될 줄은.

시간을 흘러 흘러 결심의 날이 다가왔다. 명량에서 적을 맞겠다던 이순신 장군의 심정으로 그녀에게 다가갔다. 쭈뼛대며 할 말이 있으니 잠깐만 얘기 좀 하자고 뒤뜰로 불러냈다. 그녀는 뭐지? 싶은 눈초리였지만 말없이 따라왔다. 여름이었고, 후덥지근했고, 떨렸고, 달이 유달리 밝았다. 가까이서 본 그녀의 눈은 반짝반짝 빛났다. 있는 용기 없는 용기를 다 짜내어 검고 깊은 눈동자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오래도록 고민하고 준비했던 고백을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입을 뗐다. '너의 그 한마디 말도~ 그 웃음도 나에겐 커다란 의미~~' 그랬다. 내가 준비했다는 고백은 바로, 산울림의 "너의 의미"를 불러주는 것이었다. 아무 말도 없이. 오직 노래만. (나중에 노래방을 몇 번 가보고 알았지만 나는 심지어 박치다!) '나 이제 뭉게구름 위에 성을 짓고~ 널 향해 창을 내리 바람 드는 창'을 지나, 다시 '너의 그 한마디 말도'로 돌아오는 동안 그녀의 표정은 ‘호기심’에서 ‘난감’을 지나 거의 ‘당혹’에 다다랐고, 겨우! 노래가 끝났다. 나는 생각했다. 이제, 다 이루었도다.

‘네가 대답할 차례야. 내가 방금 무려 너의 의미를 부르며 고백했잖아?’ 속으로 생각하며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의미를 알 수 없는 침묵이 흘렀다. 그때였다. 그녀는 천천히 뒤를 돌았다. 그리고 후다닥 하는 소리를 내며 저 멀리로 도망가는 것이 아닌가!! 수사로서가 아니라 정말로 빛의 속도였다. 이봐, 나는 헤치려는 게 아니야. 그저 사랑에 빠졌을 뿐이라고. 허공에 대며 외쳐보았지만 떠나는 그녀는 말이 없었다. 슬픈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그때부터 지금까지도 그렇게 빨리 뛰는 여자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그렇게 나의 첫사랑은 끝났다. (허무하고 허무하도다 인생이여!) 당시에 이렇게 생각했다. 선곡이 문제였어, 선곡이.

문제는 선곡이 아니라 ‘나’ 였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몇 년 후의 일이다.

처음엔 자다가도 이불을 걷어찰 만큼의 부끄러움이지만 지금은 그냥 추억이 됐다. 이제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지만 간혹 생각한다. 그녀도 혹시 너의 의미를 들으면 그때 그 지질했던 열세 살의 남자아이를 기억할까? 하고.

나는 지금도 산울림과 김창완 밴드를 좋아한다. "길"에서 '열세 살 이후로 젊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나는'도 꼭 나 같고, "E메이저를 치면” 같은 노래를 들으면, 나는 E메이저를 모르고 F샵을 모르지만 사랑은 알지.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들으면 생각나는 사람도 있지, 하고 생각한다. 좋은 음악이 대개 그렇다. 각자의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 속에서 세월이 지나도 바래지 않고 남아 아주 오래 전의 추억을 환기시키는 것이다.

지금 와 겨우 이 얘기를 할 수 있겠다. 한 시절, 당신 때문에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었던, 세상이 온통 당신으로 가득했던, 너의 의미를 몇 번이고 연습했던, 사랑이라는 말로 밖에 부를 수 없었던 어떤 소년이 있었다는 걸 알아주면 좋겠다고. 혹시 아는가, 그녀가 어쩌면 이 글을 보게 될지. 여기까지 쓰고 나는 또 생각한다. 이제, 정말로 다 이루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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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뭐라도 써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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