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곡우 穀雨

김성철

 1

봄 햇살들이 실리콘줄기 타고 위태롭게 거니네 

주공의 파란 마크 위 겹겹이 쳐 있는 거미의 집 

바람에 날릴 때마다 가재도구들이 고층사다리를 타고 내려왔네

갓 부화된 새끼들 미끄럼틀 위에서 우르르 내려오고, 구비서류 재촉하는 현수막

일요일 예배길 막고선 딴청이네


수건 뒤집어 쓴 늙은 거미, 아파트 텃밭 위로 엉덩이 들썩이네 

줄맞춰 오른 떡잎들, 거미는 엉덩이 사이로 고랑 뽑고 있네 

뿌리박힌 것들에 대한 애착

거미는 손 놀리며 밑둥치부터 단단히 조이네

이삿짐들 바퀴 구르며 텃밭 지나고

버려진 장롱 문 열어 일광욕 하고 있네

늙음과 무딤은 한통속이네



 2

사내는 종이꽃을 접는다

철심 위로 붉고 연한 색지

감아올리는 모양새가 거미의 생태를 닮았다 

기인 실 뽑아 친친 감는 

사내의 손끝엔 붉은 꽃물이 진하다 

꽃 속에 숨어 먹잇감 기다리는 거미

꽃들이 벌들을 불러 모으고 

아래층에선 주인 잃은 세간

콧바람을 흥얼거리고 있다


일요일 정오. 재건축대상 5층 아파트

카랑카랑 아파트단지 흔드는 TV 속 노래자랑

노래 따라 남자의 목소리가 거미단지를 흔드네

청명 지나 곡우로 가는 시간이네

매거진의 이전글 지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