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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철공소

김성철

어릴 적 채널권을 쥐고 있는 사촌누이는 거대해 보였지

테레비 앞에 날 고정시키고 ‘돌리라’는 말 한마디

대여섯 살의 나는 채널이었고 볼륨이었다

하지만 나는 

소리 낼 수 없는 볼륨 그러니, 쉿

상영되지 않는 채널이니 새까만 손톱 같은 암전

채널조정시간이 지나면 

일 나간 엄마도 일찍 귀가하겠지

그러니 나는 

잘 눌러지는 리모컨


방한가운데 사촌누이는 요리를 하지

도마 소리는 그녀의 칼질에 움푹움푹 펄럭이지

그리곤 한 숟갈 사촌누이도 한 숟갈

‘여보 출근하셔야죠’ 물으면

내 손을 이끌고 집 나서는 종이인형

갱지 속 사내의 입술은 빨간 볼펜

엄마는 어디에서 보험을 팔고 계실까

나는 간난아이 울음

엄마행색에 바쁜 사촌누이


악몽에 눌려 화들짝 깨어보면

엄마의 가늘한 숨소리

달빛은 왜 그리 푸르렀을까

옥상 안테나에 걸린 보름달이 뜬 눈을 비비고

나는 엄마의 자궁 속으로 들어간다

무릎을 모아 둥글게 말아 올리면

엄마의 고단한 무릎에서 

따라 울리는 쇳소리

걸음소리 가득한 한 밤의 철공소

내 귀 밝히는 쩌렁쩌렁 

쇳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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